지난 겨울,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 이후 시민사회 일각에는 '14년 간 7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사회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았다. 문 기수의 죽음을 둘러싼 100일여의 싸움이 한국사회에 '마사회의 구조적 개혁'이라는 과제를 남긴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한국마사회 적폐 청산을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가 출범했다. 이들은 △ 기수와 말관리사의 노동권·인권 보장 및 공공성 강화를 위한 마사회법 개정 △ 온라인 경마 합법화 저지 △ 경주마의 동물권 보장을 위한 동물권 단체와의 연대 등 활동을 벌여왔다.
문 기수 1주기를 맞아 대책위는 물론 대책위와 활동을 함께해 온 동물권 단체의 활동가들이 <프레시안>에 마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세 편의 글을 보내왔다.
셋째 편은 도박 중동 확대를 막고 마사회의 경쟁 중심 운영 강화를 막기 위해 온라인 마권 발매 저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글이다. 필자인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대책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죽음으로부터 얻은 교훈으로부터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은에 중독된 문송면의 죽음과 이황화탄소로 중독된 230여명의 원진레이온 노동자의 죽음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1990년 개정됐다. 음주 운전자에게 치여 갑자기 세상을 떠난 윤창호 씨의 죽음으로 음주운전자처벌기준을 강화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특가법)과 음주운전기준을 강화하는 '도로교통법'이 개정됐다. 최근에는 산재사망과 시민재해를 줄이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한다는 국민여론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으로부터 최소한의 교훈도 얻지 못하는 집단이 있다. 막강한 수익을 창조했던 한국마사회와 손쉽게 마사회의 돈에 의지하려는 정치인들이다. 죽음으로부터 돈과 이득을 얻는 자들의 힘이 강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9월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5명의 의원이 온라인 마권 발매를 허용하는 '한국마사회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들은 작년 11월 29일 마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으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듯하다. 문중원 기수는 장장 3쪽에 걸쳐 마사회의 부조리, 무한경쟁과 부당행위를 부추기는 마사회의 권한 등에 대해 썼다.
온라인 중독이 없던 시절에도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부당행위와 무한경쟁을 부추겼는데 온라인마권까지 발매된다면 기수들의 인권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이전에도 마사회는 돈을 벌기 위해 눈이 내려도 태풍이 불어도 기수들을 출전시켰다. 화상경마장이 있으니 화면으로 경마 승리자만 가릴 수 있는 날씨면 경주를 강행했다. 기수가 다치거나 말이 다치거나 죽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기수에게 기승 거부권이 없어 부상의 위험이 있어도, 생명을 걸고 출전해야 했다. 마사회는 경주를 강행해서 얻어질 막대한 수익에만 신경 썼다. 한마디로 기수나 말을 도박장의 패로만 여겼다.
코로나19로 도박 중독 심해지는데, 온라인경마라니
게다가 온라인마권 발매는 기수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인권도 침해한다. 시민들의 도박 중독을 높여 건강권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마사회는 공공기관임에도 수익 중심의 경마 운영으로 시민들의 건전한 스포츠 참여를 고취시키지 못해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서 2012년에는 '경마=도박'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승마를 중심으로 한 '말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화상경마장을 늘리려고 해서 지역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화상경마보다 더 쉽게 중독되는 온라인마권 발매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더구나 지금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제보건기구 등에서는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디지털 중독과 도박 중독으로 인한 정신 및 신체 건강의 훼손을 우려하고 있는 시점이다. 온라인마권 발매는 거꾸로 가도 한참을 거꾸로 가는 퇴행적인 법안이다.
온라인마권 발매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코로나19를 근거로 내세운다. 코로나19 때문에 경주가 줄어 수익도 줄었으니, 온라인마권 발행으로 수익을 보전하자는 법안이다. 이는 전형적인 '국민의 건강보다는 이윤이 우선'이라는 논리다. 이미 불법 온라인 도박이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라 이를 단속하는 법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를 양성화하겠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불법 온라인 도박 단속법을 만들자는 시민사회의 요구에는 국회는 입도 벙끗하지 않고 있다.
2020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듯이,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온라인 도박으로 중독 상담을 받을 사람이 총 7248명(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실)으로 지난 5년간 최고 수치다. 2011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도 도박문제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중독자 치유와 재활)이 78조 원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도박 산업은 계속 확장중이고 불법 온라인 도박도 늘어나고 있는 한국의 추세다. 사실 도박 중독을 예방하는 확실한 방법은 도박시설에 대한 접근성을 낮추는 것이다. 온라인 도박을 비롯해 도박 사업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경마'를 온라인 도박시장에 더 끼워 넣는 법안 발의는 국민 건강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더구나 그것도 마사회가 공공기관인 점을 고려하면 어불성설이다.
마사회의 경쟁 중심 운영 부추기는 온라인 마권 법안 폐기해야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어느 때보다 생명의 소중함과 일상의 소중함을 배우고 있다. 잘 알다시피 도박 중독은 일상을 무너뜨리고 관계를 파괴시키고 사람들을 비참한 상태로 몰아넣는다. 또한 우리는 1년 전 문중원 기수의 죽음으로부터 공공기관은 '수익보다는 기수의 생명'을 중시해야 하고, 부당행위를 부추기는 '경쟁중심의 운영보다는 국민건강'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마사회와 정치인들이 이 교훈을 상기한다면, 온라인마권 발매 법안은 당장 폐기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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