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색을 새기는 삶, 자연과 살어리랏다
단풍과 함께 낙엽이 지는 초겨울이다. 한 낮 교실 창밖에는 뜨거운 햇빛이 가득하다. 폐교(廢校) 언덕바지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이는 마을에는 가을 낙엽들이 한창이다. 봄, 가을에 마을은 온통 꽃동산이다. 그 사이로 질박한 모양의 집들이 둥지를 틀고 있고, 여기저기서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11월 초겨울 어느 폐교의 교실 창밖에는 햇살이 따사로이 내리쬐고, 학교를 둘러싼 나무에서는 연실 낙엽이 떨어지고 있다. 그 사이로 군데군데 널찍하게 자리 잡은 집들과 그 앞 텃밭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
폐교의 풍경이라기에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인생 대부분을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려온 최인선 교수(56·홍익대학교 미대)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곳이다.
시골 폐교의 풍경이 아름다웠던 까닭은 서양화가이자 교육자인 최 교수가 마치 미술관 또는 갤러리가 연상되는 작업실을 꾸몄기 때문이었다.
15일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한때 학교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깔끔하면서도 모던하다. 교장 선생님이 사용했던 교장실은 관장실로 이름이 바뀌었고, 교사들이 머물렀던 교무실은 학예실로 간판을 달았다.
최 교수가 강원 춘천시 오탄리 마을 산자락에 위치한 단층짜리 폐교에 자리 잡은 건 지난 5월 초. “어릴 적 고향의 모습과 소스라치게 닮아 있는 오탄리를 보고 ‘여기다’싶어” 매료됐다고 한다.
학교 안에 들어서니 바닥에는 물감과 아크릴·색연필 등이 널브러져 있고, 실내 한가운데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최 교수가 책상 위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색칠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 곳에서 제자와 함께 인근 마을에서 먹고 자며 작업을 하고 있다.
최 교수는 주로 반짝거리는 도시 등 팝 요소가 있는 작업을 주로 해왔던 화가다. 이곳에 와서는 풍경도 그리고 이것저것 붓 가는 대로 그린다고 한다.
추워진 날씨에 아침에 일어나면 작업실 난로의 불을 지피고, 작업실과 마당 앞 길 등을 청소하며 지내는 마치 안빈낙도의 ‘삶’ 같은 생활에 매료된 듯하다.
최 교수는 “아시다 시피 젊은이들은 학교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남은 주민은 65세 이상 노인이 대다수”라며, “그들이 예술 작품이나 공연 등을 볼 기회는 더더구나 드물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작업 공간 뿐 아니라 주민들이 함께 와서 쉬고 즐기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 폐교의 지금 이름은 ‘오탄 갤러리’.
평범한 폐교는 ‘미니 갤러리’로 변신했다. 교실이며 칠판이며 벽마다 그린 풍경화와 인물화 등이 빼곡히 걸렸다. 모두 오탄마을에 와서 완성한 작품이다.
최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쉼 없이 건강한 삶이란 주제를 생각하게 된다”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애정이 결핍되는 이런 시대에 자신을 조금더 생각해 보는 삶을 권해 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와 만나고 나오는 길 앞 마당에 최 교수가 산책할 때 이용하는 자전거 두 대마저도 한 폭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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