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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백신 '논란'을 멈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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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백신 '논란'을 멈추라

[서리풀 논평] 백신의 '좋은 정치화'가 필요하다

독감 백신을 맞지 말아야 할 과학적 근거는 아직 없으니, 지금 무엇을 기준으로 행동할지는 분명하다. 온갖 가짜 뉴스를 믿을 것인가, 질병관리청과 백신 전문가를 믿을 것인가? 단언하건대,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지금 다른 대안이 없다.

안전성이 논란이라고? 이젠 '가짜 뉴스'란 말을 모르는 사람이 드물지만, 때로 이보다 더 해로운 것이 '논란'이라는 이름의 선정적 뉴스들이다. 논란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표현과 논란 만들기가 문제임을 강조한다.

상상해 보자, 무슨 일에 모든 사람이 완전히(!) 동의하는 일이 있을까? 원칙적으로 모든 결정과 의견, 방향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논란은 전부가 아니라 일부 사안에만, 저절로 그렇게 되기보다 때로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부풀려진다.

논란 만들기는 의도하거나 또는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부른다. 서로 다른 의견이나 행동을 선명하게 대조시키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효과는 논란을 만들면 논란거리가 '평평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중요성이나 진리 수준이 다른 주장이나 의견, 방향들이 오십보백보 또는 도토리 키재기로 바뀐다. 지식의 권력 관계가 변하면 오류나 소수 의견이 힘을 얻고 위상이 달라지고, 결과적으로 다시 더 큰 논란 구조가 만들어진다. 일종의 악순환 고리에 들어가면 결과적으로 양비론이나 양시론, 불확실함으로 결판나기에 십상이다. 과거 담배회사들이 '논란화' 전략을 쓴 것도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여러 전문가의 판단을 종합해도 지금 독감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 또 맞아도 되는지 논란거리가 아니다. 예년의 사망자 수가 어떠니 하는 통계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죽음인들 안타깝지 않을까만, 지금까지 인류가 성취한 최신, 최고, 최선의 과학적 지식을 근거로 잘잘못을 가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학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과학보다 소문에 더 솔깃하고 방역 당국보다 끼리끼리 문자 메시지를 더 믿는 현상 또한 과학적 탐구와 실천의 대상이 아닌가? 백신과 예방접종에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사회과학도 활용해야 하며, 그래야 가장 좋은 사회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 하나로, 우리는 먼저 한국 언론이 좀 더 실력을 키울 것을 주문한다. 사람들의 걱정과 공포를 중계하는 것이 언론의 본업이 아니라면, 분석, 해석, 설명, 처방이 있어야 하며 이는 정확한 지식에 기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예방접종과 관련이 있는 통계나 역학을 최소한 수준이라도 알고 보도해야 사람들에게 사건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인과관계'라는 개념에 익숙해야 정부 발표를 판단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지금 언론 환경, 예를 들어 인터넷판 뉴스의 클릭 수에 따라 언론사의 수입이 결정되는 형편에서 이런 실력 기르기가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속보' '단독' '특종'을 주장하며 선정성 경쟁을 해야 하는 환경이 계속되는 한, 과거 통계를 찾고 인과관계를 생각할 여유도 이유도 없을 것이다. 현실의 사건을 '안전성 논란' 식으로 처리하는 쪽이 쉽고 빠르다. 다들 말하는 '언론 개혁'은 아마도 이런 영역부터 다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럴 일이 아닌데 논란이 커진 데는 감염병과 그 대응이 정쟁 대상이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방역과 예방은 끊임없이 현실 정치를 불러냈고 지금도 여러 축으로 얽혀 있다. 독감 백신이 자연스럽게 정치화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 정치의 이해관계는 흔히 '비과학적'이거나 '반(反)과학적'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나쁜 정치가 보는 눈과 생각의 틀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정치 이념을 무조건 지지하거나 반대하기로 하면, 현실은 그 자체로 발언권을 잃고 비틀어진 모습으로 발명되기 마련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잘못인지, 왜 그런지, 어떻게 바꿀지가 모두 이에 따른다.

이 때문에 방역이나 예방이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넓은 의미의 모든 정치와 절연하는 것, 즉 '탈정치화'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탈정치화가 바람직하지 않을 때도 있다고 본다. 가령 어떤 감염병을 먼저 예방해야 하는지, 다른 예방 방법은 없는지, 백신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쓸 수 있는지, 누구부터 접종해야 하는지 등은 한 나라의 정치 환경과 조건에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묻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백신의 '좋은 정치화'에는 다시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시민사회, 언론, 정당을 포함하는 시민 정치도 중요하다. 왜 지금 독감 백신 접종을 계속해야 하는지,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지, 누가 먼저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 정확한 정보를 확산하고 공론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아닌 듯하지만, 독감 백신에는 다른 걱정거리도 있다. 한 가지는 이번 일이 백신 '만능주의'를 강화하는 쪽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코로나19의 개인 예방수칙을 잘 지키면 독감 유행도 같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여러 나라에서 밝혀졌다. 독감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개인 예방과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전통적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백신이 전부가 아니다. 겉보기는 백신이라는 기술이 더 미더울 수 있으나,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는 과학은 그런 감각에만 의존할 수 없다. 현재까지 확립된 과학적 지식으로는 백신과 함께 개인 예방수칙을 잘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또 한가지, 어떤 백신이든 배분과 우선순위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백신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예방의 불평등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 다 정의의 문제이며 또한 공정성의 과제이다.

평등-불평등의 축은 복합적이다. 경제적 부담 능력뿐 아니라 지리적 여건, 사회적 관계, 지식과 정보 능력에 따라 모든 예방 능력에 차이가 난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생각해보라. 가장 많이 필요한 사람들이 가장 소외되기 쉽다는 '반비례의 법칙'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관련 기사 : '서리풀 논평' 2012년 9월 17일 자 '병원도 약국도 없는 그 동네, 바로 당신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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