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채용에서 '금융감독원 임원 카드'는 거의 '프리패스'였다.
금융감독원은 은행법에 의해 시중은행을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다. 우리은행은 금융감독원 임원 이상구를 위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채용비리를 저질렀다. 이상구의 딸, 조카, 지인 등 총 3명이 3년에 거쳐 우리은행에 부정채용됐다.
이들은 서류 혹은 1차 면접 전형에서 탈락자였지만, 합격자로 조작했다. 그 과정에서 합격권에 있던 다른 지원자가 탈락하기도 했다.
이 부정채용은 이광구 은행장-인사부장-인사팀장 등의 조직적인 공모로 이뤄졌다.
대법원은 우리은행 책임자들의 채용비리 혐의에 대해 올해 2월 유죄를 확정했다. 그럼에도 금융감독원 임원 이상구의 조카, 지인은 여전히 우리은행에 다니고 있다.
우리은행 '합격자 바꿔치기'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금융감독원 임원 이상구의 조카 신OO 씨는 2015년 8월, 우리은행 신입행원 채용에 지원했다.
이상구는 2015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금융감독원에서 은행·비은행 검사담당 부원장보를 맡았다. 그는 우리은행을 포함해 시중은행에 대한 검사·감독 등을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해 우리은행 신입 사원 지원자는 약 1만4500여명. 채용과정은 서류전형-1차 면접-2차 면접 총 3단계였다. 지원자의 학력, 전공 및 연령 제한은 없었다. 당시 우리은행은 '탈스펙, 열린 채용'을 내세웠다.
이상구는 2015년 9월께, 대학 후배인 우리은행 이OO 부장에게 연락했다.
이 부장은 후임 홍OO 인사부장에게 이상구의 말을 전했다.
홍 부장은 '청탁명부'를 작성해 이광구 우리은행장에게 보고했다. 우리은행은 그동안 두 가지 버전의 '청탁명부'를 작성-관리했다.
이광구 은행장이 청탁한 지원자들 명부와, 외부 청탁자-은행 직원 친인척 명부를 별도로 구분해 작성했다. 이광구 은행장과 인사팀은 이 명부를 내밀하게 공유하고, 채용 절차 직후 파기했다.
이상구 조카 신OO은 청탁명부에는 들어갔지만, 서류전형에서 점수가 미달돼 불합격 대상으로 분류됐다. 그의 학점은 2.58점. 우리은행 자체 학점 필터링 기준(3.0점)에 미달했다.
우리은행은 학점, 나이, 자기소개서 글자 수 등을 기준으로 자체 '필터링'을 설정해 서류전형 단계에서 지원자를 걸러냈다.
홍 인사부장은 신 씨의 불합격 사실을 이광구 은행장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이 행장은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이 행장은 청탁명부상 신OO의 합격안 부분에 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우리은행 인사팀은 서류전형 중 기존에 합격권 안에 있던 지원자를 탈락시키고, 신 씨를 합격자로 조작했다. '합격자 바꿔치기'였다.
인사팀은 2015년 10월 7일께 신OO을 서류전형 합격으로 작성한 '합격자 품의서'를 작성하고 결재를 받았다. 이상구의 조카 신OO 씨는 2015년 신입행원 채용에서 최종 합격했다.
금융감독원 임원 이상구의 딸 이OO도 2017년 우리은행 개인서비스 직군(은행텔러) 채용 과정에서 부정한 혜택을 받았다. 이 씨는 1차 면접 점수 미달로 불합격 대상이었지만, 점수 조작을 거쳐 합격했다.
이때도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직접 지시를 했다.
이 행장은 청탁명부상 지원자 이OO의 합격안 부분을 펜으로 동그라미 쳤다. 이걸로 끝, 이상구의 딸은 우리은행 직원이 됐다.
2016년 신입행원 채용 지원자 감OO 씨도 이상구 덕을 봤다. 당시 감 씨는 서류전형 점수미달로 불합격 대상이었다.
또 이광구 은행장이 나서 감 씨 합격을 지시했다. 감OO 씨는 2016년 신입행원 채용에서 최종 합격했다.
서울북부지방법원(재판장 이재희)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광구 전 행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올해 1월 선고했다. 이 전 행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8월로 감형됐지만,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대법원은 이 전 행장의 채용비리 혐의가 인정된다며, 2심과 똑같은 형을 올해 3월에 확정했다.
1심 판결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3심 확정 판결 이후 7개월이 지난 현재, 부정입사자들은 어떻게 지낼까? 이상구 조카 신OO과 감OO은 아직 우리은행에 다니고 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부정입사 채용 취소' 계획 여부를 우리은행에 물었다. 우리은행은 이렇게 답했다.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 제31조에 따르면, 지원자가 부정한 채용청탁을 통해 합격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 은행은 해당 합격자의 채용을 취소 또는 면직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피해자 구제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 및 법원 판결에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피해자 구제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부정한 청탁으로 강원랜드에 채용된 사실이 드러난 직원의 해고 처분이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다"면서 "이는 현행법상으로도 충분히 부정입사자를 퇴사시킬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채용비리 관련 1심 판결문에도 "우리은행은 은행이 부실화되거나 금융위기가 발생할 시 공적자금이 투입되기도 하는 등 국가로부터의 감독과 보호를 동시에 받는 금융기관"이라고 명시하며 우리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피해자 구제에 대해 "우리은행 측이 자료를 폐기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면, 공고를 내서라도 피해자를 알아내 시험 기회를 줘야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피해자 구제가 현행법상 배임 등의 문제가 되는 일도 아닌데, 피해자 특정이 안 된다는 이유로 손 놓고 있는 건 해결 의지가 없는 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형을 마치고 나온 이광구 전 은행장은 현재 우리은행 관련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2017년 은행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광구 전 행장은 '윈피앤에스'라는 회사에서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KBS 보도에 따르면, 이 전 행장의 연봉은 2억8000만 원. 회사에서 차량과 운전기사도 제공받는다. '원피앤에스'는 경비 용역, 사무기기 관리 등을 중점으로 하는 회사로, 우리은행 행우회가 지분 100%를 출자한 업체다.
채용비리 핵심 청탁자 이상구 금감원 전 부원장보도 여전히 은행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이상구는 '사내 변호사 채용비리'에 연루돼 2016년께 금감원을 퇴사했다.
그는 현재 은행 전담 고용알선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신한은행에도 아들의 채용을 청탁한 이력이 있다. 그 아들은 현재 신한은행 직원이다.
기자는 반론을 듣기 위해 8월 13일 이 씨의 근무지를 찾아갔다. 외근을 나간 이 씨를 기다렸지만, 만날 수 없었다. 그에게 문자로 "금감원 검사담당 부원장보로서 우리은행에 조카와 딸 등을 채용청탁한 게 정당한 행위냐"고 물었다. 그는 이런 답장을 보냈다.
그의 조카, 부정 입사자 신OO에게도 전화를 했다. 그는 "이상구의 채용 청탁 사실을 알고 우리은행을 입사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이상구를 알지 못하고, 지금은 업무 중이다"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이상구를 배경으로 입사한 감OO에게도 전화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답할 의무가 없다"면서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채용비리로 교도소에 다녀온 사람, 부정하게 입사한 사람 모두 우리은행 혹은 관련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2020년 10월 현재, 우리은행은 신입사원 공개 채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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