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제주도는 화산섬이라서 아름답다. 자연 현상이 빚어낸 환상적인 작품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는 다른 자연환경이라서 관광지가 되었다. 김수열 시인은 ‘관광(觀光)’이라는 말은 빛을 보는 것이기에 제주가 제주의 빛을 유지해야 관광할 가치가 있는 섬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적 있다. 제주의 풍경화는 제주다울 때 아름답다. 지금 제주의 빛은 어떠한가.
고등학교 때 친구 중에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서려고 하는 성산이 고향인 친구가 있다. 그는 꿈이 만화가였고, 지금은 서울에서 책에 삽화를 그리며 산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나러 갔다. 동창회에서 부고가 와서 장례식장에 갔을 때였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많이 반가웠다. 고등학생 시절, 내가 시를 쓰겠다고 했을 때 친구는 만화를 그리겠다고 해서 우리 둘은 마음이 잘 맞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 나는 다시 성산을 찾았다. 친구의 어머니는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밭에서 유채 농사를 지었다. 여행객들은 유채꽃이 코스모스처럼 관상용으로 들녘에 심어놓은 줄 알지만 유채는 유채기름을 생산하는 농작물이다.
우리는 다시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유채밭 사이를 지나 성산 일출봉 쪽으로 걸었다. 그때 친구가 4·3 얘기를 꺼냈다. 네가 시를 쓰니 4·3에 대한 시를 써야 하지 않겠느냐며. 친구의 안내에 따라간 곳은 성산읍 광치기 해변이었다.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아름다운 바닷가에도 4·3의 아픔이 흐르고 있다. 광치기 해변은 올레 1코스의 끝이기도 하다.
근처 터진목에는 4·3 위령비가 세워졌다. 당시 학살을 당한 사람들이 파도 따라 흩어져버리기도 했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곳에서 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빛깔이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비극이다.
온평리, 난산리, 수산리, 고성리 등 성산면 일대의 마을에서 붙잡혀 온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곳에서 총살되거나 죽창에 찔려 죽었다. 총에 맞아 죽어가는 사람에게 죽창 찌르는 연습도 했다는 증언도 있다. 친구는 친척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 그 이야기들이 성산 바닷가에 잠들어 있다.
제주가 제주답지 못할 때 제주 사람들은 항쟁한다. 제주민란이 그렇고, 4·3이 그렇다. 아무래도 제주에 또 하나의 공항이 세워지는 건 제주답지 못하다. 제주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것은 제주다움을 유지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고층 빌딩이 올라가고, 카지노가 개설되고……. 제주는 제주다운 풍경을 잃고 있다.
이윽고 그가 나를 이끈 곳은 섭지코지로 가기 전 어느 풀숲 우거진 장소였다. 친구는 그곳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함께 앉아보니 탁 트인 바다와 성산 일출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가끔 그곳에 앉아 스케치북 펼치고 그림을 그렸다는 것. 친구는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추억에 젖어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자연스레 제2공항 얘기가 나왔다. 서울 생활을 하는 친구는 자신의 고향 마을에 제2공항을 건설한다는 계획이 뉴스가 보도된 뒤부터 자주 악몽을 꾼다고 내게 말했다. 비행기가 일출봉 위를 날다 주위의 오름에 부딪치는 꿈, 유채밭에 여객기가 곤두박질을 해 불타는 모습 등.
21세기에 4·3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일어나겠느냐만 이런 말도 안 되는 공항 건설 얘기가 우리 시대에 일어났다며 친구가 한숨을 쉬었다. 친구의 삼촌은 공항이 건설되면 땅값도 오를 테니 이 기회에 성산 지역도 개발 좀 하자며 장례식장에 와서 말했다고 한다. 그때 어느 정도 술에 취한 다른 친척과 언쟁이 붙었다.
친구가 그림을 그리던 그곳에 앉아 나는 고등학생 때 문학부 얘기를 했다. 그때 강정천으로 문학 소풍을 간 일에 대해서 말했다. 그곳에서 헤엄도 치고, 수박도 먹고, 그늘에 앉아 시낭송을 했던 강정천. 맑은 강정천에 띄어 보낸 시는 어디쯤 흘러가고 있을까. 그런데 지금은 강정천 옆으로 제주해군기지가 토벌대처럼 주둔해 있다.
이제는 다른 사람한테 팔린 유채밭 옆을 걸으며 친구는 고개를 숙였다. 친구는 다음 날 서울로 간다고 말했다. 언제 다시 제주에 올 거냐고 물으니 점점 오는 횟수가 줄어들 것 같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가 몇 해 전에 계간 <제주작가>에 만화를 발표한 적 있다. 엄마가 물질을 간 사이엄마를 기다리며 뭉게(‘문어’의 제주어. ‘물꾸럭’이라고도 함.)와 함께 노는 이야기였다. 그 그림의 배경으로 비행기가 나는 장면은 참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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