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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으로 포장된 불법, 제약사와 의사 간 리베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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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으로 포장된 불법, 제약사와 의사 간 리베이트

[박병일의 Flash Talk]

"양의사(조선의 의료관청)의 노비 등이 약고(藥庫)의 약재를 훔쳐 다시 환납(관아에 다시 납부)하고 약값을 받는 경우가 있으므로 약재는 날로 궁핍해지고 민생은 날로 궁색해지니 진실로 작은 폐단이 아닙니다. 엄하게 다스린다면, 그러한 습속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조선조 중종 34년, 1539년)

조선시대에도 백성들을 배부르게 해줄 농경과 아프지 않게 해줄 의료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정갈한 약재의 생산과 비축은 의료의 핵심이었고, 이에 각 관아에서는 의생(공공 약재상)을 시켜 해당하는 달에 약초를 채취하고는 약방문(약을 짓기 위하여 약 이름과 약의 분량을 적은 종이)을 작성한 뒤 손질해 관아에 납부토록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약재는 관아 약 창고에 보관되었다. 그런데 양의사의 노비들이 약재를 몰래 빼돌려 관청에 되파는 일이 벌어지자 약 창고의 약재는 늘지 않고 오히려 가격만 올랐다.

이 같은 '의약 폐단'을 보다 못한 사헌부가 왕에게 간언해 이들을 일벌백계로 다스릴 것을 간언했다. 중종은 사헌부의 주청을 수용하여 '약재 농간'을 벌인 자들을 엄히 다스렸다. 양의사 또는 양의사의 노비가 약재를 이용해 부당 이윤을 취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약가(藥價) 인상으로 이어져 백성이 피해를 보는 형국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제약사의 리베이트와 유사하다.

지난 7월 7일 서울경찰청이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 수수 혐의로 JW중외제약(이하 중외제약)의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보도에 의하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에 걸쳐 연간 100억 원대씩, 무려 총 400억 원대의 리베이트가 의사들에게 제공되었다. 제약사 임직원은 물론,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과 같은 대형병원과 원자력병원, 경찰병원과 같은 공공의료기관 등이 수사선에 올라있다. 이에 금품 수수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의사들만 600∼700여 명에 이른다. 앞으로 수사는 중외제약이 리베이트에 조직적으로 관여했는지 여부와 병원 및 의료진의 실제 수수액을 규명하는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중외제약이 리베이트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7년에도 동아제약, 한미약품 등 10개 제약사들이 병·의원에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약값 인하 금지 등의 불공정 행위를 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약 2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이 중 중외제약을 포함한 국내 매출 상위 5개 제약사들은 검찰에 고발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의료계 리베이트가 얼마나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제약회사가 병원과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하면, 의사는 해당 제약회사의 약품으로 처방할 것이고 제약회사는 리베이트 비용을 약값에 전가함으로써 건강보험료의 상승을 야기한다. 피해는 결국 소비자 몫이 된다.

불공정하고 비윤리적인 제약업체의 리베이트 관행은 오랜 악습이라는 점에서 근절이 어렵다. 정부 대책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악습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은밀하고 정교해지고 있다.

이를 뿌리째 뽑기 위해서는 첫째,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리베이트를 통한 이익보다 처벌의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크고 강할 때 로비를 제공하는 제약사도 이를 부도덕하게 챙기는 의사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독일에서는 관련 형법과 보건의료 분야 광고에 관한 법(HWG) 제정을 통해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6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둘째, 리베이트 제공을 통해 경쟁을 불공정하게 진행하려는 유혹은 흔히 과도한 경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국내 의약계의 과도한 경쟁은 복제약의 난립에 기인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복제약 공화국'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임과 동시에, 정부의 지원을 '신약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만일 악습을 근절할 수 없다면 투명하게 드러나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2014년 9월부터 일명 '선샤인 액트(sunshine act)'를 시행해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 및 구매대행회사들이 컨설팅 수수료나 휴양지 여행 등 경제적 이익(건당 10달러 이상)을 의사나 병원에게 제공할 경우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전년도에 집행된 상세 내역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하며 누구나 조회할 수 있다. 프랑스 역시 비슷한 법을 2013년 5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2018년 1월 1일부터 제약회사(의약품 도매상을 포함한 의약품공급자)는 의료인에게 제공한 경제적 이익 등에 관한 지출보고서를 작성토록 의무화했으나 관건은 투명한 생태계 조성에 있다. 제약사가 지출보고서 작성을 소극적으로 하거나 일정 부분을 허위로 작성하지 못 하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법으로 강제하고 규정으로 강요받기 전에, 의료인 스스로 윤리적 행위를 관리하고 투명성을 높이려고 애씀으로써 정부와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가 기대하는 도덕성을 충족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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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한국외대 경영학과에서 국제경영을 가르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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