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제주도 최고령 래퍼입니다.”라고 내 자신을 소개하며, 제주에서 9년을 살았다. 제주에 처음 온 건 순전히 일 때문이었다. 2011년 겨울. 내가 살게 될 마을의 풍경은 온통 눈밭이었다. 지도 위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무작정 짐을 꾸려 쫓아온 곳. 내가 살게 될 마을의 이름은 ‘송당리’였다. 눈 이불을 두텁게 뒤집어 쓴 송당리는 키 큰 삼나무들이 양쪽으로 늘어선 2차선 도로를 한참 지나야 모습을 드러냈다.
딱히 제주의 자연이 좋아서 이주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송당리를 둘러싼 풍경은 보면 볼수록 신비했다. 오름 위에 올라가면 중산간의 실루엣이 360도로 겹겹이 펼쳐졌다. 태고의 기운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마을 안에만 오름이 여럿이었다. 혼자서 이름 모를 오름 위에 올라가 소떼들 앞에서 프리스타일 랩을 한 적도 있고, ‘다랑쉬’라는 오름의 이름이 재밌어서 다랑쉬에 대한 랩을 쓰고 여기저기 부르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름은 단연코 마을 근처의 ‘용눈이’였다. 그때만 해도, 용눈이는 아는 사람만 가끔씩 찾아오는 인적 드문 곳이었다. 화가 나거나 기분이 상했을 때, 용눈이 오름을 오르면, 기분이 풀리곤 했다.
몇 년이 지나, 나는 애써 용눈이 오름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오름 곳곳이 거칠게 파헤쳐진 꼴은 보기 괴로웠다. 내 발걸음 하나라도 줄이는 게 용눈이를 위한 거였다. 아무리 여행객이 많아졌다고 한들, 저렇게 하루가 다르게 망가질 수 있을까. 보존 방안이 없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별 다른 대책도 없이, 제주도 곳곳은 여행객을 환영하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성수기에는 평범한 민박집 하나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소박한 어촌마을 월정리는 순식간에 드라마 세트장 같은 카페 촌이 되었다. 그런 변화가 꼭 싫다는 건 아니다. 싫은 건, 악취미와 같은 사람들의 자취였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본 사람들의 자리에는 반드시 썩지 않는 쓰레기가 한 움큼씩 남겨졌다. 사람의 손이 아니라, 5미터 거인의 손으로 한 움큼씩.
비행기 예약도 점점 까다로워졌다. 운이 좋아 제주에서 연달아 청소년 교양 책을 쓰게 된 나는 육지 강연 일정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었는데, 자칫 비행기를 잘못 예약했다가는 낭패를 볼 위험이 있었다. 연 관광객 수가 1천만 명을 넘어 1천 5백만 명까지 치솟자, 항공편 매진이 속출했다. 어느 날은 대구에 갈 항공권을 구하지 못해 반나절 동안 발을 동동 구르다, 자정이 되서야 가까스로 표를 구한적도 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지금도 그때 느꼈던 안도감이 생생하다. 두 번째 공항이 빨리 지어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의 귀에도 솔깃했다. 하지만, 그런 조바심은 기우였다. 저가 항공사들의 운항 수가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창 바쁠 때는 한 주에 2번씩이나 육지와 제주를 오고가야했다. 그런데도, 비행기 예약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더 저렴한 항공권을 구매하기 위해 품을 들이는 시간이 늘어났을 뿐이었다. 항공권 구입에 쓰는 돈은 오히려 줄어들었고, 10번 타면 1번 공짜로 타는 항공사까지 생겨서 어렸을 때 문방구 스티커 모으듯 도장 찍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도 되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소의 량이 어마어마하다는 환경론자의 걱정이 나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어차피 뜨고 내리는 비행기에 내 몸 하나 보탤 뿐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처치곤란한 제주도의 쓰레기 1800톤이 필리핀 시골마을에 불법으로 투척되어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뉴스 앞에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마음 놓고 분리수거해서 버린 쓰레기가 그곳에 있었다. 올해 1월, 육지로 떠나기 위해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내다버린 나의 쓰레기 더미는 또 어디 있을까. 아마도 매립장 어딘가에 그대로 묶여있겠지.
지난 주 오랜만에 제주를 방문했더니, 제주시내 벤처마루 빌딩 앞에는 귀엽고 깔끔한 무인카페가 생겼다. 마침 약속까지 시간이 30분이나 남아서 그곳에 들어가 최신형 자동판매기를 작동시켰다. 한 뼘 높이 종이컵에 향긋한 차 한 잔이 공을 들여 뽑혀져 나온다. 종이의 재질은 두껍고, 촉감이 고급스럽다. 그런데, 다 쓴 컵을 버리자니 재활용 분리함에 종이를 위한 곳이 없다. 눈을 부릅뜨고 다시 읽어봐도 페트와 캔만 구분되어 있다. 내 가방에는 튼튼한 텀블러가 있었지만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무인카페에서도 쓸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제주의 환경정책이 종합적으로 갖춰지고 제대로 작동할 때, 나는 비로소 제주로 돌아오고 싶을 것 같다. 물론, 마음은 자주 제주에 있다. 그래서, 오늘은 성산주민 김경배 님의 계좌에 5만원을 송금했다. 제2공항 추진을 막기 위해 환경부 울타리를 넘었다는 이유로 선고된 500만원 벌금에 보태는, 십시일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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