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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으로 수렁에 빠진 영국 철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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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으로 수렁에 빠진 영국 철도 이야기

기로에 서 있는 한국의 공공철도

지난 9월 20일, 영국 정부는 민영철도회사들과 맺은 철도운영권 프랜차이즈 계약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그랜트 샾스(Grant Shapps) 교통부 장관은 25년전 채택된 민영화 모델로 승객수가 증가했지만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는 더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밝히며 위기 탈출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시민사회와 야당, 노조의 강력한 요구에도 꿈쩍 않던 영국 민영철도체제가 코로나 한 방으로 무너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모양새다. 몰락한 민영체제 이후의 영국철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 찾기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정부는 민영화 실패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과 투자유치라는 민간 부분의 요소들을 지켜 내겠다고 공언했다. 철도운영권 종료를 대체할 프로그램은 응급복구관리계약(ERMA;Emergency Recovery Management Agreements)이다. 지난 3월 코로나 확산으로 승객수가 급감하자 민영 여객철도회사들은 정부에 긴급구조요청을 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도입한 6개월 짜리 긴급수혈 프로그램이 비상수단협정(EMA; Emergency Measures Agreenments)이다. 정부는 EMA조치에도 철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프랜차이즈 계약 자체를 종료했다. EMA를 대체하는 것이 ERMA이다.

교통부가 밝힌 ERMA의 내용에는 민영철도회사의 수익감소, 자본 위험, 고정관리 비용 등에 대한 지원을 담고 있으나 기존 EMA보다 정부의 부담을 줄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당연히 민영철도회사들의 불만과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다.

4개의 여객 철도 운영권을 가지고 있는 FirstGroup(퍼스트그룹)의 최고 경영자인 매트 그레고리(Mattew Gregory)는 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모든 분야의 위험에 따른 적당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도회사는 손실을 볼 생각이 없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다국적 민영철도 그룹인 Arriva UK Trains(아리바 유케이 트레인스)의 전무 이사인 크리스 브르첼(chris Burchell)은 ERMA는 철도운영자가 더 혁신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권한 뿐이 아니라 더 큰 투자와 효율성을 가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새로운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제안했다. 공공 재정이 바탕이 되고 민간 운영이 지렛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와 손실 보상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하고 수익은 민영철도회사가 가져가겠다는 내용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말이다.

영국 정부는 철도 민영화의 문제를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공영체제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만들어낸 허상 속에 공공철도와 민영철도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유토피아를 찾는 듯하다. 영국정부가 추진하는 방안은 한국의 버스 준공영제와 유사한 방식이다. 한국철도 연장의 4배에 가까운 철도 종주국 영국의 철도산업 규모를 볼 때, 새로운 철도 체제에서 민간 사업자들에게 돌아갈 재정부담은 천문학적이다. 미련 때문에 붕괴한 민영철도의 잔해조차 치우지 못하고 있다. 물론 "미련"의 정치경제학적 배경에는 사업자들의 이해관계와 자유주의를 신념화한 관료들이 있다. 이들은 "손실은 사회가 수익은 소수가"라는 민영화의 유산을 어떻게든 보존하려한다.

▲레일웨이 가제트 인터내셔널 기사 갈무리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철도 정책을 질타하고 있다. 하원 교통위원장 휴 메리맨(Huw Merriman)은 "상세한 개혁이 보이지 않는 정부 발표는 단순히 한세트의 임시 계약을 다른 세트의 임시 계약으로 대체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 했다. 노동당의 집권 대비 철도 장관 탄 드헤시 엠피(Tan Dhesi MP)는 "정부가 민영화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철도에 더 많은 공공영역을 포함시켜야 한다, 완전한 공공체제가 아닌 ERMA라는 종이 조각이 붕괴한 철도 시스템을 덮고 있다"고 비판했다. 런던 의회 운송위원회 위원장인 앨리슨 무어(Alison Moore)박사도 "복잡하고 조각난 철도 프랜차이즈 모델은 분명 효과가 없었다."며 시민을 위한 철도서비스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도 방향을 못 잡고 있는 영국 정부의 철도 정책에 일침을 날렸다. 영국 철도해양운송노동조합(RMT)은 중간 거간꾼을 배제하고 모든 영국 철도를 공공소유로 가져오라고 촉구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ERMA는 이익과 배당금이 민영철도회사와 주주의 주머니로 계속 흘러들어간다고 비난했다. 믹 캐시(Mick Cash) RMT 사무총장은 "정부는 이제 자유 시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철도 민영화의 시신을 되돌리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영국철도에 대해 정부, 민간철도회사, 야당, 노조, 시민들이 대립하면서 영국철도는 어디로 달려야 할지 목적지를 못 찾고 있다. 분명한 것은 철도를 회생시키겠다는 처방으로 도입된 경쟁체제나 민영화 정책은 파탄이 났다는 사실이다.

영국이 당면한 이 같은 현실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토부는 경쟁체제 도입이 한국철도를 살리는 길이라며 고속철도 운영을 코레일과 SR로 분리시켰다. 고속철도 분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신규노선이나 지방적자 노선 경쟁 입찰제를 통해 운영사를 선정하겠다는 것이 정부가 추진한 제3차 철도발전기본계획의 주요 목표였다. 영국식 프랜차이즈의 한국화를 실현하겠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공공성이 강조되면서 이 같은 철도 정책은 곧 바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관료들의 저항은 교묘하고 끈질겼다. 철도개혁을 위한 연구용역을 강제로 중단시켰고 새로운 대안 마련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시간을 끌었다.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르면 5년마다 철도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21년부터 적용되는 제4차 철도발전기본계획은 진즉에 연구용역절차에 돌입해 계획을 내놓아야 했다. 그런데 이제야 용역사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직무유기인데 누구라도 책임을 지기는커녕 해명조차 없다. 최종안은 21년 말에나 나올 예정이다. 문재인 정권 임기 말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끌며 철도개혁 동력을 소진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철도와 같은 사회적 인프라는 배당과 수익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기능해야 함을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 위기 시대가 보여주고 있다. 영국철도와 같은 미로로 빠져들 것인가? 든든한 공공철도로 위기의 시대를 헤쳐나갈 것인가? 한국철도는 기로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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