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노동자신가요? 당신이 노동자시라면 저를 가엾게 여겨 답장을 주십시오. 이 통 안의 시멘트는 무슨 용도로 쓰였는지요? 저는 그것이 알고 싶답니다." <시멘트 포대 속의 편지>,하야마 요시키
발전소 건설 현장 노동자로 일하는 마쓰도 요조는 콘크리트 믹서에서 나오는 시멘트를 포대에 부어 담는 일을 한다. 믹서와 동작을 같이 하다 보면, 콧구멍을 후빌 시간조차도 없다. 그의 콧털에는 늘 딱딱히 굳은 콘크리트 가루가 묻어있다.
그렇게 일상적인 하루 일을 마무리할 무렵, 믹서에서 나온 시멘트 속에서 자그마한 나무상자가 나왔다. 뭔가 싶어 상자를 깨부수니, 그 안에는 헝겊 조각에 똘똘 말린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편지를 쓴 사람은 시멘트 공장에서 포대를 꿰매는 여공이었다. 그녀가 편지를 쓴 사연은 이렇다.
제 애인은 몇 통의 시멘트가 되었나요?
여공의 애인은 조쇄기(돌 깨는 기계)에 돌을 집어넣는 일을 했다. 어느날 아침, 돌을 집어넣던 애인이 그 돌과 함께 조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죽고 말았다. 시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쇄기를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애인의 시신은 함께 빠진 돌과 함께 섞이고 부서져버렸다. 그리고는 부서진 돌가루와 함께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진 뒤, 분쇄통으로 들어가 달궈진 뒤 완전한 시멘트가 되고 말았다.
여공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넝마 같은 애인의 작업복 조각 뿐. 애인을 그렇게 처참하게 떠나보냈지만, 여공은 시멘트가 된 '애인'을 넣을 포대를 꿰매는 일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가 작업복 조각 속에 이 편지를 싸서 시멘트 통 속에 몰래 집어넣은 이유다.
편지에서 여공은 묻는다. 이 통 안의 시멘트는 무슨 용도로 쓰였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고 했다.
여공은 애인이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제 막 스물여섯 살이 되었다. 그 사람이 자신을 얼마나 안아 줬는지, 귀여워해 주었는지를 회상했다. 그런데 자신이 그 사람에게 수의 대신, 시멘트 포대를 입히고 있다고, 그 사람은 관이 아니라 회전 가마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이러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받은 노동자 마쓰도 요조는 "술에 떡이 되도록 취하고 싶다. 그리곤 죄다 때려 부수고 싶다구"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인 뱃속에 있는 일곱 번째 아이를 바라보며 소설은 끝이 난다.
하림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부르기 캠페인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작가인 하야마 요시키가 1926년 발표한 '시멘트 포대 속의 편지'라는 작품 내용이다. 하야마 요시키가 토목 공사 현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쓴 짧은 단편이다.
이 오래된 소설을 2020년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게 노동자의 현실 때문이다. 하루 5명이 일하다 사망하는 곳이 한국이다. 일하던 중 끼어서, 떨어져서, 맞아서 죽는다.
그나마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죽음을 멈춰야 한다는 사회적 움직임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최근 가수 하림 씨가 시인 제페토의 '그 쇳물 쓰지 마라' 시에 작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프로젝트퀘스천의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노래하기 챌린지의 일환이다.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시와 '시멘트 포대 속의 편지'의 내용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시인 제페토 씨는 2010년 한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섭씨 1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긴 전기로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연을 모티브로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시를 만들었다.
'그 쇳물 쓰지마라'의 작곡자인 가수 하림 씨는 지난 8일 자신의 SNS에 "노동환경에서 발생하는 사고들에 대해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고 또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또 다른 단계로 움직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며 캠페인 참여를 독려했다.
언제쯤 우리는 일하다 죽는, 그리고 시신조차도 찾을 수 없는 죽음의 현실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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