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학년도 1학기 생전 처음 온라인 강의를 해보았다. 원래 온라인 강좌는 학교의 이러닝(e-learning) 담당부서에서 교수의 강의를 녹화, 편집해서 제작해 준다. 그런데 사상 초유의 팬데믹 상황에 갑자기 모든 강좌가 온라인으로 진행되어야 하다 보니 아무도 학교의 강의촬영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교수자의 자체 녹화로 수업 영상을 제작했다.
‘문송’한 나는 오피스365를 설치, 사용하는 데에도 며칠이 걸렸다. 웹캠 앞에서 어색함에 입이 잘 안 떨어져서 일일이 스크립트를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학기...”로 시작되는 인사말을 몇 번이나 다시 녹화했는지 모른다. 생전 처음 해보는 동영상 편집, 인코딩도 하루 종일 걸리는 작업이었다. 한나절 걸려 녹화한 파일을 프로그램 오류로 날려버리는 경험도 물론 해봤다.
강의영상을 업로드 했다고 끝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괴로움을 호소했던 “과제 지옥”은, 그 과제들을 받아 평가, 피드백 해야 하는 우리에게도 펼쳐졌다. 또 학생들은 대면 강의 때보다 집중을 안 하는지, 강의동영상에서 실컷 설명한 내용을 다시 묻는 메일이 쇄도했다. 공지사항, 질의응답, 쪽지 등에 글과 답변을 쓰느라 하루 종일 분주했다. 강의시간 직전에 강의실에 들어가 강의 끝나고 나오면 바로 종료되는 대면수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노동 강도였다.
그나마 나에겐 내 연구실과 컴퓨터, 인터넷 회선 등이 갖춰져 있었고, 아직은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여력이 있었지만, 아마 어떤 교수, 강사들에겐 ‘멘붕’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연세 많으신 교수님들 중에 온라인 수업이 힘들어 명예퇴직을 고려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강사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학교에서 강의실을 개방하지도 않으니 온라인 강의를 진행할 조용한 공간을 급히 구해야했고, 인터넷 환경을 갖추는 것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모든 강사가 미리 노트북이나 웹캠을 구비하고 있었을 리도 없으며, 컴퓨터나 디지털 강의자료 제작에 서툰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학교가 한 학기를 그럭저럭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교강사들 각자의 절박한 적응노력, 초과노동, 비용지출 덕분이었다.
그러나 교강사들의 이런 사정에 대해 걱정해주는 교육당국, 대학들, 언론들은 별로 못 봤다. 2학기에도 교강사들의 열악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1학기에 한 번 해봤으니 이젠 알아서 잘 하려니 하며 교강사들을 더더욱 방치할 것이다. 그리고 전임들에게 수강정원이나 책임시수를 늘리도록 하여 강사들 인건비 지출을 절감하려는 학교도 있다. 그런 속에서 어떤 노교수는 조기은퇴를 결심하고 어떤 비정규교수는 강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교육당국과 대학들이 비대면 강의의 지속 상황 속에서 그나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대학생들의 등록금반환 요구 문제뿐이다. 학생들이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거나 휴학률이 높아지는 것은 무섭지만, 교강사들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이 없다. 심지어 교강사들은 비대면 강의를 하게 되어 더 편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교육당국과 학교는 그저 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울 미봉책을 찾기에 급급하고, 비대면 강의의 질 개선은 그저 교강사를 압박하는 방법으로만 해결하고 있다.
어쩌다 언론에 노출되는 교수의 모습은 온라인 강의에서 막말, 실수를 했거나 비대면 상황에서 파행적으로 수업을 운영한 ‘적폐교수’들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직군, 영역이 그러하듯이 교수들이 모두 적폐는 아니다. 요즘은 그런 식의 사고를 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철밥통’ 교수들은 별로 없기 때문에 사실 대부분의 교강사들은 학교의 지침이나 교육의 기본원칙을 충실히 따른다. 물론 대면 강의보다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을 수는 있지만, 그게 꼭 교강사들만의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 교강사들도 갑작스런 온라인 강의에 겨우겨우 적응해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학생들은 원격 강의로 인해 학교 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고, 학습과 강의의 질이 저하되었다는 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학교 시설 이용비는 그렇다 쳐도, 강의의 질 향상을 위한 해결책은 다른 곳에 있다. 즉, 더 좋은 강의가 가능한 환경을 교강사들에게 제공해 주는 것이다. 직접 만나지 못하는 만큼 학생들과 더 친밀하게 연락하고 피드백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강의 콘텐츠 개발을 위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형 강의가 아닌 소규모 강좌로 진행되어야 하고, 강의콘텐츠 제작과 편집, 실시간 화상수업 등에 더 많은 장비와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
코로나19의 시대가 여러 전문가들의 말대로 앞으로 최소 1년 이상 지속된다면 앞으로도 두세 학기는 계속 원격강의가 진행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대학들은 예전부터 온라인 강좌의 확대를 추진해왔다. 그렇다면 강의가 단지 mp4파일로 바뀌는 것만이 아니라 온라인 강좌가 오프라인 강좌 못지않은 체계적 시스템과 완성도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기존과 같이 강의는 온전히 담당교수의 몫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선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비대면 강의의 질이 개선되기 어렵다.
(사족)이 글을 쓰고 난 직후 교육부와 대학교육협의회에서 주관하는 강의제작 운영 지원을 위한 원격도우미 지원사업 ‘수요조사’를 시행한다는 공문을 받았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은 수요조사 차원이며, 어느 정도의 도움이 가능한지 불분명하다. 앞으로 교육당국과 대학의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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