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반중언론의 상징인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를 시작으로 홍콩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홍콩보안법의 '체포 광풍'이 속도전으로 불어닥치고 있다. 10일 새벽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의 창업주이기도 한 지미 라이가 체포된 데 이어, 이날 밤 아그네스 차우(周庭)도 체포됐다. 차우는 조슈아 웡(黃之鋒)과 함께 ‘우산 혁명’의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홍콩 <명보(明報)>에 따르면, 차우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체포 사실을 외부에 알렸다. 이날 밤 9시 35분께 10여 명의 홍콩 경찰이 차우가 거주하는 타이푸(大浦) 지역의 자택으로 들이닥쳤다. 차우는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집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이 교대로 지키고 있다"면서 "좀 겁이 나긴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며 체포를 각오하면서도 굳은 의지를 밝혔다.
라이의 빈과일보, 부수 5배 늘리며 결사항전 의지...시민들은 매진 행렬
라이와 차우 모두 홍콩보안법에서 최고 종신형에 처할 수 있는 외세와의 결탁, 국가분열 행위 등의 혐의로 체포됐으며, 다른 민주화 인사들도 이미 여러 명 체포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날 ITV뉴스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윌슨 리도 홍콩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됐다. 신문은 "윌슨 리는 보도활동이 아니라 이날 체포된 활동가 앤디 리처럼 반중운동과 관련해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1996년에 태어난 차우는 영국 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2017년 홍콩 입법회 출마를 위해 영국 국적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는 2014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79일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벌어진 ‘우산 혁명’ 당시 '학민여신(學民女神)’으로 불리며 홍콩 학생운동의 구심점이 되어왔다. 차우는 이후 조슈아 웡, 네이선 로(羅冠聰) 등과 함께 2016년 데모시스토(香港衆志)당을 창당해 홍콩민주진영의 주역으로 활동해왔다. 하지만 홍콩보안법 시행과 함께 데모시스토당와 홍콩독립을 주장해온 ‘홍콩민족전선’ 등 무려 7개 정당과 단체가 순식간에 해체되는 등 홍콩 민주진영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차우가 체포됨에 따라 현재 홍콩에 남아 투쟁하고 있는 조슈아 웡이 조만간 체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빈과일보>는 11일자 1면을 지미 라이 소식으로 가득 채우며 라이의 체포 사진과 함께 "계속 싸울 것"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통해 중국과 홍콩 정부에 대한 결사 항전 의지를 나타냈다. 이날 <빈과일보>는 평소보다 5배 가량 부수를 늘린 50만 부가 발행됐지만,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빈과일보>와 라이에 대한 지지의 뜻으로 이미 오전 일찍 매진시켰다.
또한 <빈과일보>를 발행하는 넥스트미디어그룹의 주식은 라이의 체포 당시 오전장에 주가가 17% 정도 하락했지만, 오후장 한 때 340%나 급등했다.
지미 라이 체포에 대해 서방권을 중심으로 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라이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와 심히 곤혹스럽다"며 "이는 중국 공산당이 보안법을 통해 홍콩의 자유를 침해하고 홍콩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썼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언론의 자유는 영국-중국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과 기본법에 따라 보장돼야 하고, 보안법 제4조에도 언론의 자유는 명시돼 있다"면서 "홍콩 당국은 자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터 스타노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라이와 홍콩 내 6명의 민주화 인사들의 체포와 홍콩 경찰의 <빈과일보>사무실 습격은 홍콩에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보안법이 이용되고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면서 "홍콩 시민들의 기존 권리와 자유는 물론 언론과 출판의 자유, 결사 및 집회의 자유 등이 완전히 보호되는 것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로이터통신>인터뷰에서 "국제법과 홍콩기본법이 보장하는 인권을 제한하는 홍콩보안법이 오용되지 않도록 필요하다면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트럼프 미국 정부는 내년 말까지 회계 기준을 따르지 않는 외국 기업을 미국 증시에서 퇴출하겠다고 경고했다. 사실상 미국에서 회계 부정 논란이 잇따르고 있는 중국 기업을 겨냥한 발언이다. 그동안 미국은 2013년 중국과 체결한 양해각서를 토대로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중국 기업들에 회계를 더 유연하게 운용할 여지를 줬는데, 이를 폐지하겠다고 경고한 것이다.
반면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1일 사설을 통해 1979년 대만과 단교 후 미국 최고위급 인사로서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만을 방문한 데 대해 강력히 비판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권의 압박에 반격했다. 신문은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을 뿐이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며 "하나의 중국 원칙은 국제 사회가 모두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구시보>도 미국이 홍콩·중국 고위 관리 11명을 제재한 것에 맞서 중국이 보복 조치에 나선 것을 거론하면서 "이번 미국의 제재에 대해 중국은 미국 인사 11명과 홍콩보안법 혐의를 적용해 홍콩 내 반중 인사 10명을 체포했다"면서 "이는 미국의 도발에 중국이 강하게 맞서고 있다는 의미"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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