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알파벳(구글의 모기업) 등 미국의 4대 정보기술(IT) 기업 수장들이 29일(현지시간 사상 처음으로 동시에 미 하원 법사위원회 반독점소위 청문회에 불려 나왔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록 화상으로 연결된 출석이지만, 아마존 창립 26년만에 제프 베조스 회장까지 청문회에 처음으로 나와 단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경쟁을 제한하고 지나친 독과점으로 소비자 후생까지 망치고 있다면서 "해체해야 한다"는 데이비드 시슬린 반독점소위원장의 경고는 곧바로 "허풍"이라고 조롱을 받는 맹탕 청문회로 끝났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반독점 청문회가 '봉숭아 학당'처럼 진행된 탓에 일제히 상승했다.
시실린 위원장이 4대 IT 기업들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며 포문을 열었을 때는 시선을 끌었지만, 특히 공화당 의원들이 이들 기업들이 트럼프 정부에 비협조적이라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면서 '정치편향 청문회'로 전락했다.
예를 들어 공화당의 그레고리 스튜브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기적의 치료제'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홍보하는 동영상을 구글이 삭제한 것을 두고 "의사의 의견을 잠재우려 하고 있다"고 질타하면서, "나의 선거캠프에서 보낸 이메일이 왜 스팸 폴더로 가는냐"는 청문회 성격과 동떨어진 질문을 던졌다. 역시 공화당의 짐 조던 의원은 이들 기업들이 보수진영을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마존에 대해서는 반독점으로 몰아세울 준비가 덜 됐는지, 청문회가 시작하고 한 시간이 넘게 베조스 회장에게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베조스가 벙어리인 줄 알았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반독점은 초당적인 문제이지만, 공화당과 민주당은 이들 IT공룡들이 제기하는 위협의 성격에 대한 진단이 달랐다"면서 "공화당은 IT 기업들이 제공하는 플랫폼이 반보수적인 편향을 가졌다고 몰아부칠 기회로 삼았다"고 꼬집었다. 공화당의 짐 조던 의원은 "IT공룡들은 우익의 의견들을 검열하고 있다"면서 "보수진영을 못살게 군다"고 맹비난했다.
공화당 의원들이 반독점 현안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질문 사례들은 끝이 없었다. 켄 버크 의원은 구글이 중국을 돕고 있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짐 센센브레너 의원은 "미국의 반독점법들은 이미 잘 기능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5시간 넘는 지루한 청문회 질문을 견뎌내고 있는 IT기업 수장들을 옹호했다. 센센브레너 의원은 "이들 기업은 거대하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이들 기업은 성공적이다. 그것도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청문회에 불려나온 4대 IT 기업 중 애플의 제임스 쿡 회장은 불편한 질문은 거의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나마 반독점 청문회에 가장 어울린 질문을 받은 곳은 페이스북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2012년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하는 동기에 대해 저커버그 회장이 내부 이메일을 통해 "잠재적 경쟁자를 무력화(neutralizing)시키고"라고 말했다고 추궁했다. 하지만 위력은 없었다. 저커버그 회장의 이 이메일에는 인스타그램을 인수 동기에 대해 "결합을 통해 서비스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는 대목이 함께 있었다. 또한 저커버그 회장은 당시 한 시간도 안돼 추가 이메일을 통해 "경쟁을 못하게 하려고 인스타그램을 인수하려는 것을 의미하는 답변이 아니다"라고 보충설명까지 했기 때문이다.
청문회가 끝난 뒤 다시 화제가 된 것은 아마존의 베조스 회장이 의회에 보낸 자신의 사전 서면답변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한 입지전적 개인적 스토리다.
답변서를 통해 베이조스는 자신이 17살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무일푼으로 미국에 건너온 쿠바 난민 출신 남성과 어머니가 결혼하면서 4살 때 새 아버지가 생겼다고 밝혔다. 자수성가한 새 아버지가 26년전 아마존을 창립할 때 많이 도와줬으며, 원자력위원회(AEC)에서 봉직한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아마존이 미국에서 창업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면서 "미국은 지구상의 어떤 다른 곳보다 새로운 기업들이 출발하고, 성장하고, 번창할 수 있는 곳"이라고 아마존의 성공을 조국 덕분이라고 강조하며 의원들의 예봉을 사전에 누그려 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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