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에서 지도(指導)를 구실삼아 반복된 폭력을 견디다 못한 젊은 트라이애슬론 선수가 희생됐다.
지난달 26일 트라이애슬론 유망주였던 최숙현 선수가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마지막 호소를 남기고 세상을 등지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을 합친 종목인 트라이애슬론 선수로 고등학생인 지난 2015년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을 정도로 유능한 철인이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스스로 기뻐 했을까.
그런 그녀가 오랫동안 지도자들로부터 폭행과 폭력에 시달렸고 무기력 해져버린 동료들의 외면 속에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지난 2월 폭력을 견디다 못한 그녀가 경주시청 감독과 팀닥터, 일부 선배를 폭행혐의로 고소했고 4월에는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에 신고하거나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청문회에 참석한 최 선수의 부친은 “열악한 환경에도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지도자와 선수에게 또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대한체육회에서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제2, 제3의 최숙현이 생기지 않도록 해 달라는 절절한 절규로 전해졌다.
운동선수들이 흘린 땀방울에 지도자의 리더십이 더해져야 했지만 최숙현 선수와 동료들이 있던 공간과 장소에서는 황망한 지도자의 폭력이 행해졌다.
고 최숙현 선수는 스포츠 정신이 사라진 성적 위주 엘리트 체육의 희생양이 되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국정조사로 이어지고 관련 청와대 청원만 12건이 올려졌다. 급기야 국회에서는 체육계를 비롯해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각종 일상적 폭력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최숙현법’(국민체육진흥법,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 발의 됐다.
공부는 뒷 전이 되고 오직 운동에만 매달려 이 악물고 달려온 선수들이 지도자의 폭력에 저항하기 어렵다.
폭력이 행해지는 순간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는 사라진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무기력한 방관자만 남게 된다. 폭력은 어떤 방식으로든 금지되어야 한다.
‘트라이애슬론 유망주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은 지난 7월 2일 시작됐다.
이 청원에는 “최숙현 선수는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피와 땀,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 정신을 동경하였습니다. 그러나 참되고 바르게 지도해야할 감독과, 함께 성장하고 이끌어 주어야할 선배, 선수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팀닥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슬리퍼로 얼굴을 치고 갈비뼈에 실금이 갈 정도로 구타하였고 식고문까지 자행했습니다. 참다 못해 고소와 고발을 하자, 잘못을 빌며 용서해달라는 사람이 정작 경찰조사가 시작되니 모르쇠로 일관하며 부정하였습니다. 최숙현 선수는 이런 고통과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고 했다.
청원인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관계자들을 일벌백계 하고 최숙현 선수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고 있는 폭언과 폭력을 근절하고, 고통받고 있는 젊고 유능한 선수들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청원을 맺었다.
운동선수에게 안전을 담보해달라고 요청하는 이 청원에 현재 17만7000명의 국민이 서명했다. 답변을 얻으려면 8월 1일까지 20만 이상 추천 청원이 있어야 한다.
'트라이애슬론 유망주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목의 청원에 아직도 2만 명 이상이 부족하다.
이 청원자의 호소가 체육계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는 갑질과 괴롭힘, 학대와 가정폭력 등 다양한 폭력을 알고도 둔감해져 가기만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