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을 사랑한 사람,
미래를 위한 역사에 헌신한 사람, 박원순
다녀왔습니다.
빈소의 영정사진으로 그를 마주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새벽, 그의 소식을 듣고
나도 모르게 저절로 통곡이 쏟아지는데
머리가 깨지고
심장이 피를 쏟는 줄 알았습니다.
무수한 이들과 함께 애도하면서
이제 조금이나마 진정이 됩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들여다 봅니다.
박원순,
그의 빈 자리가 이리도 큽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곳곳에 일상으로 담겨졌는지
돌아볼수록 놀라울 따름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에게 조언합니다.
큰 거 하나 해,
그래야 정치적으로 딱 각인이 되지.
그런데 그는
소소한 일상의 풍경을 바꾸는 일에 진력합니다.
버스와 전철의 손잡이가 키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 것이나
비오는 날 우산 빗물 털개가 설치되는 것이나
공공자전거 서비스 서울 자전거 따릉이가 대기하고 있는 것이나
모두, 일상을 사랑하는 그의 철학의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어디 그뿐이었습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운동의 거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적폐정권 하에서 경찰들의 물대포 작업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촛불시민혁명의 현장 광화문, 그곳을 그는 지켜주었습니다.
그는 청년의 때에 살았던 모습을
시장이 된 뒤로도 그대로 실현해나갔습니다.
아니 더욱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시민의식, 그 권리를 위해
<서울자유시민대학>을 출발시킨 것은
박원순 시장의 모든 업적 가운데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정신의 힘을 기르는 긴 안목의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운영위원장을 맡아
그와 함께 시민대학의 고비 고비를 넘어온 과정이 참으로 감사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시장의 뜻을 받들어 정성을 다한 서울시 공무원들과
운영위원을 맡아 시민대학의 뼈대를 세워온 교수진들 모두
이 일이 얼마나 귀중한지 절감해왔습니다.
평생교육의 거점을 세워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기쁘게 새로운 평생학습권을 누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서울 도서관> 설립은
책 읽는 도시 서울을 위한 박원순의 기여입니다.
서울 시내 여러 유형의 도서관 정책, 그 골간을 짜는 본부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을 지내고 있는
당시 이용훈 서울도서관 관장과 함께
서울 도서관의 정책기능을 설계했던 날들은 두고두고 자랑스러운 추억입니다.
지금은 이정수 서울도서관 관장이
더욱 담대한 계획을 맡아 현실에 옮기고 있는 중입니다.
많이 힘들겠지만 잘 해나가리라 믿고 성원을 보냅니다.
서울의 브랜드 “I-Seoul-U”,
누구나 다 압니다.
젊은 세대의 작품이었습니다.
시청의 김동경 도시브랜드 책임자와
이 브랜드에 도달하기까지의 논의, 행사, 홍보정책 등에 대한 일을 했던 것도
언제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여러 개의 후보 가운데
시장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선택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브랜드의 출현에
사방에서 비판이 일었습니다.
자신도 그 후보작에 표를 던지지 않았던 그는
시민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일관해서
자신의 입장을 지켰습니다.
현장 투표에서 시장의 표도 당연히 한표였을 따름이었습니다.
이 도시 브랜드는
이제 세계적으로도 명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시대의 내면을 본능으로 읽고 있는 세대의 힘을 아꼈던 것입니다.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일한 것 가운데
중랑구 망우동의 일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서울의 변두리,
낙후한 지역에서 마을 운동을 일으켜
혁신교육과 공동체 성장에 힘을 쏟고
협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는 주민들에게
그는 뜨거운 사랑을 쏟고 지원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시장실에 초대하여
소탈한 할아버지가 되어주었습니다.
현장에 직접 찾아와
숲이 있는 마을로 가꾸어 나가고
녹색벨트와 사회적 경제, 그리고 인문학적 사유가 하나가 된
서울의 새로운 거점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도시 재생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헌신을 다하는 마을 운동가를 끊임없이 격려하면서
난제를 푸는 일에 조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성장한그 마을 활동가는
지금 국회로 가서 새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숱한 일을 매일 감당하는 그가
그 작고 이름없는 마을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인 애정은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 이인지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실종소식을 듣고 마을 아이들이
우리도 찾아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는 그런 따뜻한 추억을 아이들에게 남기고 떠났습니다.
서울시장, 하면 박원순.
이제 다른 이름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 명명한 “영원한 서울시장”, 이라는 직함이
그의 일생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가 치열하게 펼쳐졌던 때,
TV 방송 토론의 마무리에서 진행자가 이렇게 묻습니다.
“서울시장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어떤 후보여야 하는가를 물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질문은 토론자들에게
서울시장으로 적합한 인격과 능력을 압축해달라는 요지였습니다.
저는 또박 또박, 세 개의 발음을 답으로 대신했습니다.
“박. 원. 순.”
그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있지만
지금은 온전히 추모의 예를 다해야 할 때라고 여깁니다.
도리라는 것은 그토록 중요합니다.
박원순,
그와 동시대를 살아온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에 대한 기억이
우리 역사의 힘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박원순.
이 한도 많고 말도 많은 사바세계의 짐을 모두 내려놓으시고
다시 초연히 산행(山行)을 떠나소서.
때로 별이 바람에 스치는 날이 있거든,
우리에게도 기별 전해주소서.
사랑하는 벗이여!
정다운 임이시여!
보내는 일이 이리도 힘이 드는군요.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