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선생은, 김수영 시인의 말을 빌리면 '제 정신을 갖고 산 사람'이었다. 제 정신으로 살기 위해 분투한 사람이었다. 제 정신으로 살기 위해 분투하던 그에게는 근대 산업사회의 앞날이 명확하게 보였다. 2002년에 쓴 '땅의 옹호'라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라는 현재의 전 세계적 위기는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본질에 대한 그의 통찰이 전적으로 옳았음을 웅변한다. 즉 "자본과 기술의 힘으로 얼마든지 자연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교만심이" "스스로의 생존의 발판을 제거"해 왔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향했던 것은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삶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인간과 인간이 우애롭게 지내며, 각 개인이 내면의 평화를 누리는 그런 삶이었다. 그는 공생공락을 위한 이상적인 사회로 농(農)의 세계와 촌락 자치를 주장했지만 이는 결코 복고 취미가 아니었다. 공생공락을 위한 세계 각지의 여러 움직임들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연구하면서 이끌어낸 통찰이었다.
신문‧잡지의 칼럼을 모아 2016년 발간한 <발언 1,2>의 머리말에서 그는 "칼럼을 쓰는 동안 매일매일 발간되는 국내외 신문, 뉴스 매체들을 훑어보는 일이 어느덧 내 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왜냐하면 '발언'을 위해서는 우선 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주목('경청')하는 게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상사에 대해서 끊임없이 귀를 열어 경청한다는 것은 '발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 윤리"이며 "농민, 노동자, 생활인들의 '현장'이 논밭과 공장 혹은 시장인 것처럼, 지식인에게 가장 중요한 '현장'은 뉴스매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하루 4시간 이상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한국에서 최초 또는 유일한 정기구독자인 외국 간행물이 여럿 된다고 자랑(?) 삼아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는 그가 탁월한 생태사상가인 동시에 뛰어난 저널리스트였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처럼 폭넓은 탐색과 치열한 고민 끝에 지역화폐, 기본소득, 시민의회에 이르기까지 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현실적 대안들을 제시했다. 나아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 최초의 녹색당 창립에 참여하는 등 그는 근래 보기 드문 전 방위적 지식인이자 실천적 사상가였다.
사실 김종철 선생이 걸은 길은 외로운 길이었다. 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벗들이 있었다. 1999년 펴낸 <간디의 물레> 머리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또한 2008년 펴낸 <땅의 옹호>에서는 2004년 대학 교수직을 떠난 이후 4년간 계속된 '이반 일리치 읽기모임'을 통해 "대학생활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우정'이야말로 지금 세계를 황폐화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아무리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희망'을 제공하는 원천이 바로 '우정'"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자본주의 문명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김종철의 사상과 통찰이 절실한 이때, 그는 돌연 세상을 떠났다. 이제 살아남은 자의 몫은 그가 말한 우정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삶의 원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김종철 선생의 저서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땅의 옹호-共生共樂의 삶의 위하여> <발언 1,2>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중에서 9편의 글을 추려 소개한다. 편집자
연재 순서
1. '시대를 바꾸고자 한 예언자이자 실천적 사상가, 김종철' (박승옥 글)
2. 왜 녹색평론을 시작하였는가(1995년,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3. 거짓언어와 '성장'논리 속에서-나의 한국 현대사(2012년, <발언 1>)
4. 땅의 옹호(2002년, <땅의 옹호-共生共樂의 삶의 위하여>)
5. 필요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開眼이다(2006년, <땅의 옹호>)
6. 지역통화-삶과 공동체를 살리는 기술(1998년, <간디의 물레>)
7.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책머리에(2019년)
8. 협동적 자치의 공동체를 향하여(2008년,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9. 촛불시위와 시민권력(2017년,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10. 태어남과 삶과 죽음의 순환(1998년, <간디의 물레>)
땅의 옹호
세계의 가장 원시적인 인간들은 소유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다. 가난은 적은 양의 재화도, 단순한 수단과 목적 사이의 관계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가난은 문명의 산물이다.
― 마셜 살린즈 《석기시대의 경제학》
나는 그다지 여행을 즐기는 체질이 아니다. 이것은 타고난 성격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오랫동안 건강문제를 가진 채 살아오면서 굳어진 습관에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하여튼 무슨 나들이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반갑기보다도 먼저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앞서는 것을 보면, 이건 확실히 뿌리깊이 체질화된 반응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도 포함해서 많은 한국인들이 차례차례 자동차 운전을 배우고, 자유로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새롭고 낯선 풍물에 접하는 경험을 통해서, 말하자면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기 시작하던 무렵과 그 이후에도, 내가 자동차를 아예 거들떠보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따져보면, 내게 남달리 예민한 환경의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자동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녀야 할 필요도, 그런 생활스타일을 즐기고 싶은 심리적인 욕구도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동차 운전을 배우러 다니고 어쩌고 한다는 게 나로서는 지극히 성가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나는 내가 정말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의 정신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자기보호 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도 사회적인 삶이 있기 때문에 때때로 자동차를 타고 낯선 도시나 농촌을 방문해야 할 경우가 있고, 그때마다 반드시 마주치는 파괴와 오염의 풍경 앞에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상하기 때문이다.
일단 길을 떠나면,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다잡아도 허사다. 수십년이 넘게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되어온 개발이라는 이름의 이 광란의 잔치 ― 어머니 대지(大地)의 젖가슴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짓밟고 파헤치는 패륜행위가 걷잡을 수 없이 자행되고 있는 현장은 내가 어디를 향해 가든 한반도 남쪽 구석구석에 널려 있는 것이다.
둘러보면, 이 땅에는 손상되지 않은 산과 구릉, 오염되지 않은 강과 호수가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기후풍토에 맞지도 않는 골프장이니 스키장이니 하는 것들을 위해서 오로지 돈이 된다는 이유 때문에 아까운 삼림이 없어지고, 산과 계곡이 기형화되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볼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는다. 소중한 농토가 고속철도와 도로와 아파트와 공장부지를 위하여 멋대로 잘려 콘크리트가 무지하게 퍼부어졌거나 퍼부어지고 있는 것도 참을 수 없는 광경이다. 그럴 듯한 이름과 괴상한 몰골로 주변의 경관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무수한 러브호텔들과 '가든'들 …. 그런가 하면, 여름날 시골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창을 열어놓을 수가 없을 지경으로 풍겨오는 농약냄새, 썰렁한 농촌마을의 분위기, 게다가, 곳곳에서 마주치는 폐교 조처된 시골학교의 황량한 모습들 ….
그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금 남한 천지에서 도로건설과 도로확장이라는 명분으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토지훼손과 환경파괴 행위이다. 간교하게도, 대대적인 파괴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공사 현장일수록 "우리는 환경친화적 도로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따위의 터무니없는 슬로건이 유행처럼 팻말에 크게 적혀 있다. '환경'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니 고마워해야 할 것인가. 주의해서 살펴보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도로공사는 실제로 불필요한 공사일 뿐만 아니라 심히 자원낭비적인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미 한반도 남쪽은 자동차로 접근 불가능한 오지(奧地)라고 할 만한 곳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게 되었을 만큼 도로망은 조밀하게 건설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운 땅을 대규모로 망가뜨리는 도로공사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사를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현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자동차 관련 산업과 건설관계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중앙 내지는 지방정부들이 은밀히 협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로서밖에 이러한 공사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하기는 도로공사뿐이겠는가. 예를 들어, 무수한 생명의 서식지이자 건강한 생태계의 유지에 관건적인 구실을 하는 거대한 갯벌을 가차없이 죽이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어떤가. 북한산 관통도로 공사는? 무지와 만용에 뿌리를 둔 이러한 극단적인 야만주의는 언제, 어떻게 중지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역동적인’ 경제가 이 모양대로 간다면 이러한 기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 틀림없고, 그 결과 이 산천은 죄다 콘크리트로 뒤덮여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비통한 심정으로 나는 종종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다. 하루빨리 이 경제가 망하게 하소서.
땅을 망가뜨리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의 근본토대를 파괴하는 이 범죄적인 행위가 버젓이 경제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이토록 기막힌 사태는, 말할 것도 없이, 자본과 국가의 책임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자본과 국가체제에 반대하고, 심지어 환경보호 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는 활동가들까지도 포함한 이 나라의 수많은 지식인들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과연 지금 이 나라의 지식인 사회에서 단순한 환경보호 차원을 넘어서, 인간생존의 자연적 토대가 급속히 파괴, 오염되어 가는 사태에 직면하여, 이 문제를 무엇보다도 농경문화의 쇠퇴라는 비극적 재난에 결부하여 이해하려는 지적, 도덕적 노력을 얼마나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오늘날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지식인들은 근대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농경의 의미를 단순히 산업의 일부로 파악하는 데 길들여져 있고, 그 결과 언론, 교육, 문화, 과학, 종교, 의학, 예술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지적, 도덕적 체계는 사실상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데 유효한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지식사회에 만연한 농업 및 농촌사회에 대한 뿌리깊은 몰이해와 무관심을 설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환경문제에 대해서, 혹은 근대주의를 넘어서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탈근대론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 근대주의라는 토대를 더욱더 강화하는 기능 이외에 좀더 근원적인 도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내재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탈근대론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근대주의라는 토양에서 태어나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하여 자랄 수밖에 없는 논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근대주의와 함께 명백히 도시 중심의 감수성과 세계관을 뿌리깊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적어도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탈근대론이, 지금 갈수록 생태적, 사회적 위기가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오히려 퇴조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그것은 관념적인 지식인의 담론 세계를 넘어서 참으로 현실적인 힘이 되기에는 뿌리가 허약한 논리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환경문제에 대해서 지식인들이 보여주는 관심도 뿌리가 허약하기는 마찬가지다. 가령, 지금 환경운동에 헌신하고 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왜 우리가 땅을 지키고, 농민과 농촌공동체를 되살리는 것이 긴급하고 중대한 문제인지에 대하여 명확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실제로 예외적일 만큼 드물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예를 들어, 지난 봄 대구 근교의 어느 대학에서 열린 대규모 환경관계 토론모임에서, 하루종일 수십명이 발표를 하고 토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농민과 농촌이 멸종될 위기에 처한 현실에 대해서 언급하는 지식인이나 환경운동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 모임의 결과로 수백쪽이 넘는 두툼한 자료집이 나왔지만, 그 속에서 농촌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하고 있는 글은 단 한편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면에서는 꽤 비판적인 의식의 개진을 보여주곤 하는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 그룹에서도 마찬가지다. 몇년 전 <창작과 비평>에 기고한 한 사회과학 전공자는 앞으로 농업은 농민이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고 있음이 분명한 어조를 숨기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찍이 맑스가 농촌 사람들에 언급하여 ‘촌뜨기들의 어리석음(rural idiocy)’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그 맥락에 따라서 농민은 역사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존재라는 관념이 ‘진보적’ 경향의 지식인들의 마음속에 뿌리깊이 박혀있는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농민과 농촌문제 혹은 좀더 근원적으로 인간생존의 토대에 대하여 지식인들의 편견 혹은 무관심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암시하는 조그마한 에피소드가 있다. 몇해 전 나는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최한 한 문학 심포지엄에 발제자의 하나로 초대받아 간단한 발표를 하고 토론자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심포지엄은 '문학과 환경'이라는 큰 주제 밑에서, 여러 사람이 발제와 토론에 참가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중 한 부분의 발제용으로〈왜 땅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내가 미리 쓴 간단한 글도 당일 행사장에서 배포된 자료집에 실려 있었다. 그런데, 정작 자료집을 펴보니 그 글의 제목은 〈왜 이 땅을 지켜야 하는가〉라고 고쳐져 있었다. 심포지엄을 주관하고 있던 작가회의의 실무진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고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실제로 두 제목 사이에는 미묘하나마 의미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제목이 고쳐진 것이다. 아마도 그때 작가회의 담당자의 감수성으로는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 듯한 '이 땅'이 아니라 굳이 그냥 ‘땅’이라고 할 때의 막연하고 싱거운 어감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오늘날 인류사회가 직면한 근본적인 위기가 본질적으로 ― 국방의 개념이 아니라 문명의 개념으로서 ― 땅을 대하는 방식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 현재 이 사회의 많은 다른 지식인들과 다름없는 이해력의 결핍을 드러냈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른다.
이 조그마한 에피소드가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예외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이야기는 아마 오늘날 비교적 사회의식이 예민하다고 알려진 대부분의 작가와 시인, 문필가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한때 문단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던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작품경향에 관련해서 어떤 평론가가 썼던 용어를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 무렵까지의 박노해의 문학적 성과를 논하는 평문의 한 대목에서 이 시인의 작품에 드러나는 몇가지 약점 내지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 한계는 부분적으로 '농경적 상상력'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이미 농경시대는 지나갔고, 농경은 이제 기껏해야 주변적 문제에 지나지 않게 된 시대에 농경사회에 뿌리를 둔 상상력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발언이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흥미롭게도, 최근에 나는 이와 흡사한 발언에 또다시 마주치는 경험을 하였다. 최근에 〈한겨레〉 신문의 한 짧은 시사 논평에서 어느 문학평론가는 신동엽의 유명한 시 〈껍데기는 가라〉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때 지난 농경적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그 시가 지금 상황에서 감동을 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농적(農的) 세계를 본질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는 관점이 당연한 것으로 얘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신동엽의 시가 '농경적 상상력' 때문이 아니라, '농경적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가치가 있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농사 또는 농촌적 가치에 대한 이러한 지식인들의 편견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적인 현상이다. 모더니즘은 단순한 문학적 경향이나 예술적 유파라기보다 현대세계에서 교육받은 지식인들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기본적 교양인지 모른다. 결국 같은 이야기지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그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근대적 제도와 관습의 확립을 통해서 비로소 문명화된 삶이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나마 가능해졌다는 것을 믿도록 교육받아왔다. 실제로, 근대적 문화와 예술이 성립하고 발전하는 데 필요한 여러 전제조건은 본질적으로 산업사회와 도시의 발달이라는 보다 큰 테두리 속에서 가능해진 것들이기도 했다. 따라서, 근대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이 진전됨에 따라 가차없이 붕괴, 해체될 수밖에 없었던 농민과 농촌의 의미가 주변적인 것으로 비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초현대식 교통수단이 발달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이동수단으로서 가장 초보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수단, 즉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다닌다고 하는 보행의 중요성이 조금도 줄어들 수 없듯이, 아무리 컴퓨터와 생명공학의 시대라 하더라도 인간사회에서 농경의 중요성은 결코 줄어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농사나 농경은, 구석기 시대의 상황을 제외하고, 인간이 이 지상에서 비폭력적인 평화의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형태의 삶의 방식으로서 오랜 세월을 통해서 충분히 검증되어온 방식이다. 흔히 근대주의 프로젝트에 마음을 빼앗긴 지식인들은 이러한 기초적인 사실을 망각한 채, 역사를 직선적인 진보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데 순응해왔고, 그 결과 쉽사리 농민과 농사의 세계가 갖는 중심적인 가치에 둔감하거나 때로는 노골적으로 폄하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아마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문학비평가 중의 한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F. R. 리비스는 가령 T. S. 엘리어트와 같은 동시대의 뛰어난 모더니스트 시인에게서 옛 영국의 농민들을 은근히 내려다보는 듯한 어조가 있음을 주목하고, 그러한 태도가 얼마나 근거 없는 편견의 소산인가를 신랄하게 지적한 바 있다. 리비스에 의하면, 엘리어트가 은근한 경멸감을 품고 대하는 그 ‘촌뜨기들’이야말로 바로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문학이 태어날 수 있는 언어적 토양을 근원적으로 일구어온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삶에 익숙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진정한 문화와 예술과 철학의 근본 전제는 언제나 농경문화였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전통사회에서 대부분의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역사의 어느 시기에서나 조금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문학이나 예술의 창조는 반드시 흙의 문화에 뿌리를 둔 감수성과 세계관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우리가 쓰는 일상어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적 은유와 상징과 수사들이 거의 대부분 농경사회에서 성장해온 말들이라는 것은 누구든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인간다운 삶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옹호하거나 옹호하려고 하는 가치들은 본질적으로 거의 예외 없이 농경문화라는 근본 토양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 평등한 관계와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욕구, 노동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의식, 개인적 자율성, 자치와 자립, 비폭력주의, 협동과 연대, 상호부조와 보살핌 등등, 아무리 인간정신이 경멸을 당하는 짐승스러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끝끝내 옹호하고자 하는 이러한 윤리적 덕목들은, 따지고 보면,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이후 형성되고 확립되어온 마을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싹트고 강화되어온 가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포드의 발언은 특히 경청할 만하다. 그는 일찍이 촌락공동체야말로 인류사회에서 가장 영속적인 가치들을 배태한 원천이었음을 되풀이하여 강조하였던 것이다. <기계의 신화> 등 방대한 저술을 통해서 인류사에 있어서 기술적 진보가 갖는 의미를, 생태학적 관점에 근거하여, 집요하게, 또 깊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성찰하는 데 생애의 대부분을 바쳤던 멈포드가 만년에 이르러, 인간사회가 건전하게 돌아가려면 전체 인구의 적어도 80%가 농경 혹은 농경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어야 한다는 흥미로운 견해를 토로한 것도 마을문화의 핵심적인 의의에 대한 그 자신의 이러한 확신 때문이었다.
한 사회의 장기적인 생존과 번영이라는 문제에 관련하여, 농민 내지 농촌공동체가 갖는 중심적인 중요성에 관한 성찰은, 실은 문명이 시작된 이래, 비록 소수이지만 좀더 근원적이고 철저한 사고의 궤적을 보여주는 사상가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왔다. 그러한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주류 문화의 두터운 장벽 때문에 이들의 발언에 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한 예외적인 정신들의 존재로 해서 우리는 오늘의 문명이 어디에서 근본적으로 뒤틀려버렸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그리스 문화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는 빅터 데이비스 핸슨 교수도 그러한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본래 캘리포니아의 한 골짜기에서 수세대에 걸쳐 건포도 농사를 해온 농가의 태생으로, 그 자신 좀더 젊었을 때는 직접 농사일을 하면서 살았고, 지금도 그 농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오늘날 대학교수로 대변되는 이른바 현대적인 학자들의 세계가 도덕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공허하고 불모적(不毛的)인 세계인가를 묘사하는 어떤 글에서, 자신의 한 동료교수가 ‘건포도 나무’라는 게 있는지 진지한 어조로 물어보던 일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근본적인 무지 혹은 상식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뿌리 없는 지식과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는 계속하여 번영을 누리고 있는 반면에 농민계층과 농촌사회가 사실상 소멸 직전에 처한 최근의 상황에 대하여 깊이 유감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고전학 교수로서 데이비스 핸슨의 아마도 가장 중요한 업적은 고전 그리스 문화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서구세계에서 늘 모범적인 정치형태로서 기념되어온 희랍의 민주주의와 그 터전인 ‘폴리스’의 존재는 폴리스의 시민들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고, 그 시민들은 근본적으로 독립적 자영 농민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대략 기원전 8세기에서 4세기까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건재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원천은 주로 이 시기의 희랍의 농민―시민들의 활력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전 희랍의 문화적 번성기의 철학자, 또는 소포클레스를 위시한 비극작가들에게 있어서 농사 혹은 농민의 존재가 갖는 핵심적인 중요성은 ‘자명한’ 것이었다. 희랍의 민주주의에서 시작된 서구의 핵심적인 정치적 이념, 예를 들어, 개인적 자율성과 평등, 자립과 자치, 사유재산 개념 등은 따져보면 자신의 손으로 땅을 일구면서 자립적인 삶을 영위하고, 그런 삶에 대하여 깊이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희랍의 농민―시민들의 세계관과 가치들에서 유래된 것이었음을 핸슨 교수는 그의 저서 <또다른 희랍인들 ― 가족농과 서구문명의 농경적 뿌리> 속에서 풍부한 인용과 자료를 동원하여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리스의 '폴리스'의 기원과 쇠퇴는 농업에 달려있었다. 그리스 도시―국가 네트워크를 만들어낸 물질적 번영은 소규모 집약농경, 식량을 생산하고 토지를 소유하는 새로운 방식, 그리고 그에 따른 새로운 종류의 인간의 출현에 말미암은 것이었다. 이 새로운 인간에게 농사일은 단순히 생존이나 이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실용주의와 절제와 균형의 추구가 근원적인 가치로 여겨지는 도덕적 수월성(秀越性)이 단련되는 도가니였다.
하기는, 독립적인 자작농의 존재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기 위한 불가결한 기초라는 생각은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은 것으로 알려진 제퍼슨에 의해서, 그리고 제퍼슨식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여러 정치사상가, 지식인들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토로되어왔다. 실제로, 미국의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엄청난 규모로 발달함에 따라서 사실상 미국사회는 갈수록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와는 거리가 먼 사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 그 결과로 오늘날 세계평화와 인류의 생태적 미래에 가장 큰 위협적인 세력이 된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 이처럼 미국이 그 자신의 원래의 이념을 배반하게 되는 과정은 무엇보다도 자영 농민들의 존재가 미국사회에서 위축, 소멸되어온 과정에 정확히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제퍼슨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옹호했던 자영농민들이 사라지고, 그 대신 소수의 자본가, 기술관료 및 전문가들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됨으로써 미국사회는 형식적인 민주주의적 제도와 절차에도 불구하고 풀뿌리 민중에 의한 통치라는 것은 공허한 수사일 뿐 사실상 특권적 지배세력에 의한 독과점적 통치체제로 굳어져온 것이다.
자급자족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단순소박한 순환형 생활방식과 상호부조와 협동을 통한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삶을 실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적으로 건전하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생태적 위기에 대하여 골똘히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거의 예외없이 공감하는 견해이다. 그러니까, 미국에 있어서 농민계층이 되살아나 새로이 활력있는 사회세력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장래를 위해서나 인류사회 전체의 운명을 위해서나 관건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농업 및 농민문제는 결코 역사에서 사라져 가는 주변적 계층에 관한 문제도 아니고, 산업문명의 압력 밑에서 소멸될 운명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적 관심이라는 수준에서 처리될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인류사회가 전지구 규모로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생태적 위기에 관련하여 인간과 생태계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다. 농민이 사라지면 땅을 보호할 사람도 없어지고, 민주주의의 가능성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농지에 광범위하게 적용된 화학 및 기계농법은 그동안 ‘녹색혁명’이라는 이름 밑에서 기록적인 식량증산에 이바지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많은 농업전문가들에 의해서 지구상의 폭발적인 인구증가에 대비한 가장 효과적인 농법이라고 찬양되어왔다. 그러나, 실제로 세계의 굶주림의 문제는 단순히 수확량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 즉 사회적 평등과 부의 비집중화를 통해서만 실제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녹색혁명’ 이후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의 주도 밑에서 세계 전역에 걸쳐 수십년간 시행되어온 화학비료와 각종 농약 및 농기계들에 의한 ― 거의 전적으로 석유에 의존하는 ― 집약적 산업영농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근본토대인 토양이 급속하게 고갈, 오염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는 것이야말로 아마도 가장 비극적인 재난일 것이다. 제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전체 농경지 토양의 4분의 1이 사라졌다는 통계만 보더라도 현대적 산업영농이라는 방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가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실은, 미국뿐만 아니다. 세계 전역에 걸쳐 지금 농경지는 대규모로 도시화, 산업화를 위해 급속히 전용되고, 곳곳에서 화학물질과 기계의 남용으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생명체의 생육과 서식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인 땅과 흙이 이처럼 급속히 고갈, 축소되고, 또 질적으로 열화(劣化)되고 있는 사태보다도 더 불길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재생불가능한 석유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토양의 상실과 오염이라는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대기업과 농업관련 전문가들의 이해관계에 봉사할 뿐인 산업적 영농은 하루빨리 폐기해야 할 방법이지 식량증산 운운하며 더이상 장려할 방법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러나,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사태는 심히 비관적이다. 농사에 관련해서도 지금 이 세계에는 허위의 논리가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농업전문가들 중에는 유기농법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그들과 의견을 같이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는 계속하여 영농규모를 확대하여 농업생산의 효율화를 보다 철저히 함으로써 농업이 경쟁력있는 산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농업문제는 간단히 농가소득의 문제로 환원되고, 농가소득의 증대는 농가를 줄이는 방법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논리가 활개를 치는 것이다. 결국, 농업전문가들이나 정부나 기업의 사고방식 가운데는 독립적인 자영 농민 ― 소농, 가족농 ― 을 보호하고 되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들어있지 않음이 확실하다. 그러니까, 그들의 눈에는 기업농을 보다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농지의 대형화와 효율성의 제고가 중요할 뿐이지, 민주주의의 초석이면서 생태적으로 건전한 삶의 토대인 농민과 농촌은 성가신 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 그렇지 않아도 지난 수십년간 급속히 진행된 이농현상 끝에 이제 고령층 농민들로만 겨우 잔존하고 있는 농촌공동체는 자본과 국가와 전문가들의 협동적인 공작에 의해서,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과 도시인들의 무관심 속에서, 바야흐로 괴멸 직전에 이르렀다.
아마도 지금은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간으로서 가장 근원적이고 심각한 질문을 해야 할 상황인지도 모른다. 즉, 농민과 마을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인간적으로 의미있는 삶이 가능할 것인가. 아마도 당분간은 농민과 마을이 없어도 산업으로서의 농업은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른다. 기업농이나 영농회사들에 의해서 보다 본격적으로 ‘과학적 영농’이 이루어지고, 소수나마 여전히 농촌에 잔류해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농기업에 예속된 농업노동자들로서 연명하거나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는 비참한 운명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이미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은 21세기의 가장 유망한 산업으로서 식품, 의약 부문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였다. 몬산토를 비롯한 거대 생명공학 기업들은 지금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세계 전역으로 퍼뜨림으로써, 인류사회가 식량문제에 관한 한 자신들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부심하고 있다. 더욱이, 지금 경제의 세계화라는 이름 밑에서 막무가내로 진행되고 있는 무역자유화와,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는 기후, 풍토, 지리, 역사, 문화적 조건에 따른 지역적 차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시장경쟁력이라는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생산방식과 소비주의를 세계 전역에 획일적으로 강제함으로써 다국적기업들의 세계 지배를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지난 25년간 지구상에서 100만종 이상의 생물종이 멸종되는 것과 함께 문화적 다양성도 심각하게 훼손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영어 제국주의가 어디서나 기승을 부리고 있는 오늘날, 세계 전역에서 아직 살아있는 6,000종의 언어들 중 절반은 이미 아이들에게 가르쳐지지 않고 있으며, 21세기 말에 이르면 세계의 언어는 500종으로 감소할지도 모른다는 가공할 예측도 나오고 있다.
언어가 사라지고, 토착 내지 전통문화가 위축되고, 그 결과 문화적 다양성이 소멸되어 간다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공동체에 전승되어온 삶의 지혜와 자연세계에 대한 이해와 지식, 그리고 우주의 의미에 대한 직관이 상실되어 간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따져보면 엄청난 위험을 자초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생태적 위기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지금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긴요한 이러한 지혜와 지식이 사라짐으로써 인류사회가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돌이킬 수 없는 감퇴를 강요당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압력 밑에서 지역경제와 지역문화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이 하루하루 축소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역자유화와 시장만능주의가 이대로 계속되는 한 지구생태계와 인간의 삶은 나날이 더 취약해지고, 소생의 희망은 더 멀어져 갈 것이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무역자유화의 논리에 의한 농산물 시장개방 요구와 거기에 대한 자발적 협력 내지 순응주의는 결국 오랫동안 일관되게 계속되어온 농민 및 농촌적 가치에 대한 천시(賤視)의 연장이며, 근대주의적 오만과 편견과 무지의 확대된 국면일 뿐이다. 최근 중국산 마늘 수입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자본과 국가와 전문가들이 숭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윤이지, 생명의 보전이 아니다. 지금 경제성장과 수출입국, 그리하여 이른바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열망이 팽배한 사회에서, 국내의 마늘농사를 보호함으로써 얻는 이익 1,500만 달러를 위해서, 마늘을 포기하고 핸드폰을 수출함으로써 생기는 이익 5억 달러를 포기하자는 데 동의할 사람이 이 나라의 권력 엘리트와 지식인들과 유권자들 사이에서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마늘문제는 궁극적으로 정부의 외교력의 문제나 몇몇 관료의 직무유기와 무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인간집단으로서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 라는 좀더 근원적인 의미의 정치적, 철학적 선택에 관계되어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좀 가난하더라도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도 인간다운 생존이 가능한 농적(農的) 순환사회를 지금부터라도 회복시키는 데 진력할 것이냐, 아니면 지금까지 해온 대로 대외의존적 수출산업을 통한 경제성장의 추구라는 미래가 없는 길을 계속 가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지금 이른바 세계의 산업국가 중에서 홍콩, 싱가포르, 대만을 제외하고는 한국처럼 25% 정도의 식량자급률을 확보하고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유럽과 북미국가는 오랜 공업 선진국들이면서도 전부 150% 안팎의 수준, 심지어 프랑스의 경우는 200%를 넘는 식량자급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현실이다. 아시아의 신흥 공업사회들인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은 식량자급도가 형편없다는 공통점 이외에 환경문제가 심각하고, 이른바 엘리트들의 대부분이 자기 자식들을 미국과 캐나다나 그밖의 ‘선진국’으로 유학 내지는 이민을 보내는 데 열중해 있다는 점에서도 괄목할 만한 공통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까, 사회의 장기적인 생존가능성이라는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면서,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의 추구에 혈안이 되어있는 사회일수록 그 사회의 엘리트들은 내심으로는 자기 사회에서 언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하더라도 다음 세대들도 살아가야 하는 생존의 토대를 파괴하는 행위를 이토록 장려 내지는 방치하고 있는 현실을 도무지 설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농산물은 해외로부터 사들여와서 먹으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적지 않고, 그들이 대부분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심히 암담하게 만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러한 사람들이 흔히 농사의 원리와 산업의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잊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 농민의 운명과 농촌의 생존가능성에 대하여 고민을 하는 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식량의 안정적 공급에 대한 염려(지금 미국산 쌀값이 싼 것은 그나마 우리의 쌀 생산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지 국내의 쌀 경작지가 현저히 축소되는 날 주로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서 생산되고 있는 미국산 쌀 가격이 천정부지로 폭등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리고 농업의 환경보전적 기능 ― 기후의 안정화에 대한 기여, 홍수조절, 지하수 함양, 경관의 유지 등등 ― 이 중단되는 사태가 불러일으킬 경악할 만한 환경재난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농경문화가 갖는 근원적인 미덕, 그리고 그 미덕의 실천이야말로 사회적 분열과 인간소외가 극에 달한 오늘날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시급히 필요하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 미덕이란, 간단히 말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 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농사의 원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농사는 사람이 짓는 일이지만, 사람의 힘만으로는 농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히 터득한 사람만이 제대로 된 농사꾼이 되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농경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 속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위치와 한계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만든다. 아무리 사람의 재간이 뛰어나고, 기술이 정교하다 하더라도 별과 달의 운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기후를 통제하고, 흙의 성질을 마음대로 바꾸고, 벌레와 새와 짐승이 오가는 것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혹독한 가뭄이 들어도 궁극적으로 인간에게는 가뭄을 견디는 일 이외에 다른 해결책이 존재할 수 없다. 저수지를 만들고, 수리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일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노력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과 참을성의 습득을 통해서 인간은 대지(大地) 위에서 겸손해지고, 자기보다 더 큰 존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운명에 대한 수동적인 굴복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반핵운동가이자 생태철학자인 다카기 진자부로(高木仁三郞)가 그의 저서 《핵의 세기말》 속에서 명석한 언어로 설명하고 있듯이, 세계의 토착민 또는 전통적인 농민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그러한 겸손의 자세는 결코 숙명적인 수동의 태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수용(受容)할 줄 아는 큰 마음”에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다카기는 자연을 단지 정복과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는 세계관에서 나온 전형적인 현대기술로서 원자핵 에너지가 갖는 근본문제를 언급하면서, 이와 대조적으로 비서구 세계의 민중생활 속에서 광범위하게 살아있었던 ‘수용적 마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들은 마구잡이로 자연과 사물의 움직임에 개입하는 게 아니라, 자연과 인간 간의 상호관계를 중시하고, 스스로 자연과 화합하며, 공생하면서 보다 훌륭한 삶을 영위해 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문화를 발효시킨다. 그러한 문화의 존재방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많은 면에서 좀더 고도의 삶의 기술과 현명함을 몸에 붙이고, 좀더 유연한 감성과 좀더 고도의 지성과 신체를 획득한다.
산업주의 문화는 이러한 겸손의 자세를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성장해왔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산업인간’은 도덕적, 정신적으로 극히 왜소한 미숙아가 되어버렸다. 산업의 세계에서 만물의 척도는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자기 확대의 욕망이다. 그리하여, 자본과 기술의 힘으로 얼마든지 자연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교만심이 분별없이 확대되어왔고, 그 결과로 지금 우리는 스스로의 생존의 발판을 제거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난폭하고 어리석은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단 한순간도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고, 자연세계에 훼손을 가하지 않고는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근원적으로 폭력에 기초한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일찍이 간디는 독립을 쟁취한 이후 인도가 가야 할 장래에 대한 비젼을 말하는 자리에서 “진리와 비폭력을 실천하는 삶은 우리가 도시가 아니라 촌락에서, 궁전이 아니라 오두막에서 살 때만 실현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도시 중심의 뿌리없는 소비주의 문화가 걷잡을 수 없는 전염병처럼 창궐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것은 시대착오적인 헛소리로 들리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사람다운 삶을 생각한다면, 간디의 말에 담긴 심오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맹목적인 성장과 발전의 논리에 대하여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거부하고, 농(農)의 세계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지혜와 용기가 없다면, 우리가 인간의 위엄과 품위에 대하여 계속해서 얘기한다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2002년)
출처 《땅의 옹호―共生共樂의 삶을 위하여》, 녹색평론사, 2008년, 34~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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