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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이 된 '배드마더'... 현대카드 해당 광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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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이 된 '배드마더'... 현대카드 해당 광고 삭제

[양육비 외면하는 배드파더스] 양육비 안 주면서 TV광고 모델로 등장

아이와 함께 TV를 보던 김민호(가명, 86년생) 씨는 갑자기 얼어버렸다. 1년간 양육비를 안 주고 아이도 안 찾는 전 부인이 현대카드 일반인 모델로 TV 광고에 등장했다.

광고 제목은 '사람을 닮은 카드'. 전 부인이 자기 남매들과 함께 등장한 장면에는 이런 카피가 나왔다.

"누나들의 럭셔리가 부러웠다. 나의 첫번째 럭셔리."

전 아내는 양육비 미지급으로 채무불이행자가 됐지만, 어쨌든 '럭셔리한 누나'로 등장했다. 옷과 화장은 물론 자세도 콘셉트 대로 화려했다.

김 씨는 정신을 차리고 옆에 있는 다섯 살 아들 경민(가명)을 바라봤다. 아들은 표정 없이 TV를 빤히 바라봤다. 그토록 그리워한 엄마가 드디어 눈앞에 나타났는데, 아이는 별 반응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아이는 엄마 얼굴을 모른다.

"전 부인은 우리집에서 차로 30분이면 닿는 곳에 살아요. 그럼에도 그 사람은 약 2년간 자기 아이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어요. 자식과 양육비를 외면한 엄마가 당당하게 TV 광고에 나오니… 제가 우롱당한 느낌입니다."

▲ 양육비 의무를 지키지 않아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등재된 엄마가 모델로 나온 현대카드 광고. ⓒ셜록

김민호–최수진(가명. 87년생)은 2015년 결혼했지만, 3년 뒤부터 별거를 시작했다. 둘은 2019년 7월 이혼했다. 법원은 아이 친권과 양육권을 아빠 김 씨로 결정했다.

법원은 엄마 최수진 씨에게 2019년 7월부터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매달 60만 원을 전 남편 김 씨에게 지급하라고 심판했다. 비양육자가 아이를 만나는 시간인 면접교섭은 판사 직권으로 매달 첫째, 셋째 주말로 정해졌다.

최 씨는 별거를 시작한 2018년 2월부터 아들 경민이를 보지 않았다. 이혼 판결 두 달 전부터는 사전처분 양육비 40만 원도 안 줬다. 그때 경민이는 겨우 첫돌을 넘겼다.

이혼 소송 중 경민이가 눈 수술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수술비는 김 씨가 지불했지만, 보험금은 계약자인 전 부인 최 씨에게 지급되는 상황. 김 씨는 계약자 명의 변경을 위해 위임장을 써 달라고 최 씨에게 요청했다. 아이 엄마는 이마저도 하지 않았다.

"결국 계약자 변경을 못해 보험금 받는 걸 포기했습니다. 아이 엄마니까 그 정도 부탁은 들어주리라 믿었는데, 실망이 컸습니다."

어린이집에 들어간 경민이는 조금씩 엄마 빈 자리를 느꼈다. 잠자리에선 종종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찾았다. 자기를 돌봐주는 친할머니에게 이런 말도 했다.

"할머니가 내 엄마 해주면 안 돼?"

김 씨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전 부인에게 양육비를 꼭 받아내기로 결심했다. 양육비는 단순한 돈을 넘어 아이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애정을 뜻하기도 하니까.

"아이한테 ‘엄마 돈벌러 갔다’고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죠. 비양육자인 상대에게도 부모로서 양육의 책임이 있는 거고요. 지금처럼 전 부인을 만나지 못해 아이가 나중에 커서 ‘엄마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할까봐 두렵습니다."

전 부인은 이혼 직후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 김 씨는 밀린 양육비를 받고 싶어도, 그건 연락이 닿은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엄마가 아이를 만나려면 저와 연락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말도 없이 전화번호를 바꿨습니다. 더는 아이를 만나지 않겠다는 뜻이죠. 저와 감정이 좋지 않더라도 아이를 만나주지 않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양육비를 못 받은 지 약 6개월이 지난 올해 2월, 그는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전 부인의 신상과 얼굴을 공개했다. 연락처도 모르는 상대에게 양육비를 받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2020년 2월 기준, 김 씨가 받지 못한 양육비는 약 480만 원.

신상공개에도 전 부인은 연락을 주지 않았다. 김 씨는 <배드파더스> 에 전 부인이 등재된 사실을 주변에 알렸다. 그는 전 부인 지인 2~3명에게 <배드파더스> 링크와 함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 무책임한 엄마들 OO번을 봐주십시오."

전 부인에겐 반응이 없었다. 참다 못한 김 씨는 전 부인 통장 3개를 압류했다. 올해 3월에는 법원에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 절차를 밟았다.

그제서야 전 부인은 김 씨에게 연락했다. 약 2년 만에 온 전화, 전 부인은 아이 안부를 일절 묻지 않았다. 자기 용건만 말했다.

"채무불이행자 등재에서 내 이름 내려줘."

김 씨가 볼 때, 전 부인은 양육비 줄 능력이 충분했다. 전 부인 최 씨는 혼인 당시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매달 수입도 약 250만 원 정도였다.

김 씨는 양육비 의무를 안 지키고, 아이도 만나지 않는 전 부인이 자기 잇속만 챙기는 듯해, 결국 그의 요청을 거부했다.

김 씨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배드파더스>에 등재된 엄마는 '럭셔리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그 광고가 TV에 나온 후에도 정작 자신은 양육비를 못 받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김 씨는 많은 고민 끝에 지난 6월 29일 현대카드에 민원을 제기했다.

현대카드는 전 아내보다 빨랐다. 현대카드는 유튜브, TV, 인스타그램 등 최 씨가 나온 광고 장면을 민원 접수 당일에 모두 삭제했다.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인 김 씨에겐 사과 메일도 보냈다.

"주관부서를 통해 확인시 일반인 모델의 경우 개인 신상까지 사전에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으며, 본의 아니게 고객님들께 금번과 같은 사례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논란이 제기된 모델이 법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내용에 대해 확인 후 문제 제기 및 정서적 관점을 고려해 해당 모델이 등장하는 광고물 집행 중지를 결정했습니다."

현대카드의 빠른 조치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무겁게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

▲ 경남 양산 법기수원지로 놀러간 경민이 모습. ⓒ김민호

아직 갈길이 멀다. 전 부인이 출연한 광고는 삭제됐지만,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광고가 세상에 나온 올해 6월 기준, 김 씨가 못 받은 양육비는 약 700만 원이 넘는다.

전 부인은 김 씨가 현대카드에 민원을 넣은 29일,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부산남부경찰서에 고소했다. 김 씨의 문제 제기로 현대카드 쪽에서 사실 확인 요청이 들어온 걸 고소 이유로 들었다. 전 부인은 자기 신상이 공개된 <배드파더스> 사이트 링크를 지인들에게 공유한 일도 문제 삼았다.

약 1년간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김 씨는 조만간 경찰서에 피고소인 조사를 받으러 가야한다.

기자는 최 씨의 의견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양육비를 안 주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카드 광고 모델료로 얼마를 받았는지" 등의 내용을 문자메지로 보냈지만 역시 답장을 받지 못했다.

두 살 때부터 엄마를 못 본 다섯 살 경민이는 이제 유치원에 다닌다. 경민이는 또래 친구를 통해 엄마의 부재를 더욱 인식하고 있다.

"또래 친구들이 종종 경민이에게 '너희 엄마 어딨냐'고 묻거나, 자기 엄마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러면 경민이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아무 대답도 못한 채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요즘도 경민이는 잠자리에 들 때면 종종 엄마를 찾는다고 한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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