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TV를 보던 김민호(가명, 86년생) 씨는 갑자기 얼어버렸다. 1년간 양육비를 안 주고 아이도 안 찾는 전 부인이 현대카드 일반인 모델로 TV 광고에 등장했다.
광고 제목은 '사람을 닮은 카드'. 전 부인이 자기 남매들과 함께 등장한 장면에는 이런 카피가 나왔다.
전 아내는 양육비 미지급으로 채무불이행자가 됐지만, 어쨌든 '럭셔리한 누나'로 등장했다. 옷과 화장은 물론 자세도 콘셉트 대로 화려했다.
김 씨는 정신을 차리고 옆에 있는 다섯 살 아들 경민(가명)을 바라봤다. 아들은 표정 없이 TV를 빤히 바라봤다. 그토록 그리워한 엄마가 드디어 눈앞에 나타났는데, 아이는 별 반응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아이는 엄마 얼굴을 모른다.
김민호–최수진(가명. 87년생)은 2015년 결혼했지만, 3년 뒤부터 별거를 시작했다. 둘은 2019년 7월 이혼했다. 법원은 아이 친권과 양육권을 아빠 김 씨로 결정했다.
법원은 엄마 최수진 씨에게 2019년 7월부터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매달 60만 원을 전 남편 김 씨에게 지급하라고 심판했다. 비양육자가 아이를 만나는 시간인 면접교섭은 판사 직권으로 매달 첫째, 셋째 주말로 정해졌다.
최 씨는 별거를 시작한 2018년 2월부터 아들 경민이를 보지 않았다. 이혼 판결 두 달 전부터는 사전처분 양육비 40만 원도 안 줬다. 그때 경민이는 겨우 첫돌을 넘겼다.
이혼 소송 중 경민이가 눈 수술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수술비는 김 씨가 지불했지만, 보험금은 계약자인 전 부인 최 씨에게 지급되는 상황. 김 씨는 계약자 명의 변경을 위해 위임장을 써 달라고 최 씨에게 요청했다. 아이 엄마는 이마저도 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들어간 경민이는 조금씩 엄마 빈 자리를 느꼈다. 잠자리에선 종종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찾았다. 자기를 돌봐주는 친할머니에게 이런 말도 했다.
김 씨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전 부인에게 양육비를 꼭 받아내기로 결심했다. 양육비는 단순한 돈을 넘어 아이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애정을 뜻하기도 하니까.
전 부인은 이혼 직후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 김 씨는 밀린 양육비를 받고 싶어도, 그건 연락이 닿은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양육비를 못 받은 지 약 6개월이 지난 올해 2월, 그는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전 부인의 신상과 얼굴을 공개했다. 연락처도 모르는 상대에게 양육비를 받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2020년 2월 기준, 김 씨가 받지 못한 양육비는 약 480만 원.
신상공개에도 전 부인은 연락을 주지 않았다. 김 씨는 <배드파더스> 에 전 부인이 등재된 사실을 주변에 알렸다. 그는 전 부인 지인 2~3명에게 <배드파더스> 링크와 함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전 부인에겐 반응이 없었다. 참다 못한 김 씨는 전 부인 통장 3개를 압류했다. 올해 3월에는 법원에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 절차를 밟았다.
그제서야 전 부인은 김 씨에게 연락했다. 약 2년 만에 온 전화, 전 부인은 아이 안부를 일절 묻지 않았다. 자기 용건만 말했다.
김 씨가 볼 때, 전 부인은 양육비 줄 능력이 충분했다. 전 부인 최 씨는 혼인 당시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매달 수입도 약 250만 원 정도였다.
김 씨는 양육비 의무를 안 지키고, 아이도 만나지 않는 전 부인이 자기 잇속만 챙기는 듯해, 결국 그의 요청을 거부했다.
김 씨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배드파더스>에 등재된 엄마는 '럭셔리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그 광고가 TV에 나온 후에도 정작 자신은 양육비를 못 받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김 씨는 많은 고민 끝에 지난 6월 29일 현대카드에 민원을 제기했다.
현대카드는 전 아내보다 빨랐다. 현대카드는 유튜브, TV, 인스타그램 등 최 씨가 나온 광고 장면을 민원 접수 당일에 모두 삭제했다.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인 김 씨에겐 사과 메일도 보냈다.
현대카드의 빠른 조치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무겁게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
아직 갈길이 멀다. 전 부인이 출연한 광고는 삭제됐지만,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광고가 세상에 나온 올해 6월 기준, 김 씨가 못 받은 양육비는 약 700만 원이 넘는다.
전 부인은 김 씨가 현대카드에 민원을 넣은 29일,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부산남부경찰서에 고소했다. 김 씨의 문제 제기로 현대카드 쪽에서 사실 확인 요청이 들어온 걸 고소 이유로 들었다. 전 부인은 자기 신상이 공개된 <배드파더스> 사이트 링크를 지인들에게 공유한 일도 문제 삼았다.
약 1년간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김 씨는 조만간 경찰서에 피고소인 조사를 받으러 가야한다.
기자는 최 씨의 의견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양육비를 안 주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카드 광고 모델료로 얼마를 받았는지" 등의 내용을 문자메지로 보냈지만 역시 답장을 받지 못했다.
두 살 때부터 엄마를 못 본 다섯 살 경민이는 이제 유치원에 다닌다. 경민이는 또래 친구를 통해 엄마의 부재를 더욱 인식하고 있다.
요즘도 경민이는 잠자리에 들 때면 종종 엄마를 찾는다고 한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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