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측의 대남 비난은 너무 과격하고,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이벤트는 유감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북측의 입장을 분석하고, 남북 강대강 대결을 막고, 남북 대화로 가는 지혜를 모아야할 숙명을 안고 있다.
필자는 몇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남북 긴장의 원인에 대해 첫째, 일부 남북분열 목적 대북단체의 전단지 살포, 둘째, 유엔 안보리 경제제재와 코로나로 인한 내부 단결, 셋째,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 탓만 한 한국정부가 427판문점합의와 919평양합의(이후, 남북정상의 합의)에 대한 실천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점 등을 들었다.
로동신문 등 북측 관영매체도 정확하게 이 문제를 역지사지라는 관점에서 지적하고 있다. 일부 북측과 교류한 시민단체, 학계, 종교계 등에서도 동일한 지적을 내 놓는다. 이들은 북측 인사들이 2018년 수차례 ‘미국의 방해를 넘어설수 있느냐’는 질문을 우리 정부에 했고, 우리 정부는 ‘할수 있다’며 남북합의 이행을 추진했지만, 2019년 들어서도 여전히 ‘남 탓’만 하고 있다는 비판을 들었다고 한다. 필자 역시 지난해 학술대회에서 만난 북측 학자들로부터 ‘남북정상합의의 미이행에 따른 새로운 길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미국을 설득할 자신도 없으면서 남북합의를 했느냐?...우리는 통일대통령으로 만들어 드릴려고 평양시민 15만명 앞에서 연설을 하도록 배려했다... 문재인 정부는 표리부동한가”라는 말들이다. 북측이 남북 정상의 합의 이행을 둘러싸고 새로운 길을 예고했다는 측면에서, 이번 김여정 부부장의 과격한 담화, 6월 16일 개성연락사무소 폭파 이벤트, 대남 대규모 삐라 살포, 군의 개성공업지구 및 비무장지대 방사포 전개 등은 ‘예고된 참사’로 규정할 수 있다.
'삐라'로 인한 전쟁 일촉즉발위기와 예고된 참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박사는 이번 남북 충돌을 통계학적으로 대형사고를 예측하는 ‘하인리히 법칙’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대형사고 1건이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 29건과 경미한 징후 300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남북 관계에 적용하면, 향후 대형사고가 발생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여정 부부장, 김영철 로동당 부위원장, 리선권 외교상, 장금철 당중앙위 통일전선부장 등 대남 담화를 보면, 조성렬 박사의 주장은 높은 설득력이 있다.
한국전쟁 시기부터 정부 주도로 양측은 적대행위의 일환으로 전단 살포 심리전을 수행해 왔다. 전쟁의 한 방식이었다. 2000년 6,15 정상회담으로 확성기를 통한 방송과 정부의 전단지 살포가 중단됐다.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북한 이탈주민이 남한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 일본의 극우 성향 교회, 단체 등의 후원으로 일부 탈북 단체들이 중국에서 외교공관을 통한 집단 탈북 이벤트를 벌였고, 남한의 접경 지대에선 대북 전단살포 등 다양한 반중, 반북 이벤트가 시작됐다. 이런 적대 행위들도 2007년 6월, 남북 사이에서 민간인에 대한 전단지 살포 중단이 합의되면서 문제가 일단락됐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 이후 5.24조치, 그리고 연평도 포격 등의 사태를 계기로 일부 탈북자 단체에 의한 대북 전단 살포가 강화도, 대성동 부근 등에서 성행하게 된다. 현재는 상당량의 전단이 북측으로 떨어지지만, 당시에는 그 도달률이 적었다. 일부 전단이 평양이나 원산 등 동해안 일대까지 도달하게 됐다. 이런 전단 문제로 2012년 10월 파주, 강화 등 서부지역에서 양측 군이 군단급으로 포격전을 준비하게 된다. 전단 문제로 개전 직전 상황에까지 몰린 셈이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전단 살포를 주도했던 탈북자 단체와 접촉해 상황을 설명하고 엄중 경고했지만, 그들은 전단 살포를 지속하겠다는 주장하며 굽히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일이다. 겉으로 이명박 정부는 대북 강경정책을 펼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 남북 협력, 특히 경제분야의 협력을 추진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며 북측을 자극하고 있었다.
북측은 이런 이명박 정부의 이중적 형태에 분노하며 특사 접촉 사실을 공개하는 초유의 사건을 일으켰다. 특히 대북 전단 문제와 관련해 비밀 협의를 주도한 인물이 김영철과 리선권 등이었다. 김영철은 개성공단 건설 당시 북측 실무 총책임자였기도 했다. 2012년 일련의 대북 전단을 둘러싼 비밀접촉에서 리선권 등 북측은 남북 합의를 위반한 데 대해 매우 분개했고 수거한 전단을 남측에 전달했다. 그해 11월 남북 합의에 의해 일부 탈북자에 의한 전단 살포는 중단된다. 이명박 정부도 경찰을 동원했다. 따라서 당시 청와대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은 탈북단체와 전단 살포를 주도하고 있는 탈북민 출신 박모 씨 등은 자신들의 행위가 곧바로 전쟁 개전과 연결된다는 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박 씨 등의 최근 주장은 허위이며, 더욱이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일부 논객들이 현 정권이 전달 살포를 통제하는 게 언론침해라는 주장은 가짜뉴스를 만드는 행위와 같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2014년 10월 탈북단체에 의한 전단 살포 문제가 발생하자 북측은 경고한데로 고사총으로 대응했고 우리측도 기관총으로 응사했다. 당시 우리군의 발포 책임자들은 전쟁 개전시 자신들이 전범이 된다는 각오로 대응 사격을 결정해야 할 만큼 고뇌에 찼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서도 경찰을 동원해 전단 살포에 대해 법집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 접경지대 안보 문제 등을 이유로 대북전단을 금지하는 내용의 판결이 대법원에서 나오기도 했다.
극단 탈북단체 활동의 목적은? 대결과 전쟁
극단적 성향의 탈북단체의 목적은 무엇일까. 미국의 극우단체에서 받는 자금도 목적이겠지만, 이번 사건으로 남북 모두에서 탈북자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기는 환경이 조성되고, 북에서 탈북자 색출 작업이 벌어지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알면서 전달 살포 등 도발을 지속하고 있는 이들의 심리 상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그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남남이념갈등’ 분위기를 조성하고 남북 합의 이행을 깨는 구도를 만들어 우리측의 협상 여지를 줄어들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지하고 있다. 필자가 이 문제로 일부 탈북자 지식인들과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이들의 목적은 경찰이 만약 자신들을 다시 체포하면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해 ‘반 문재인정부’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북 대화를 중단시키려는 미국 우파의 큰그림을 이해하고 있다고도 했다.
연합뉴스 장용훈 기자는 페이스북에 국정원이 전단 문제의 심각성을 청와대에 보고했지만 안보실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상황 전개를 보면 장 기자의 주장이 맞을 개연성이 높지만, 결국 우리 안보 라인이 정보가 있었음에도 태만했거나 무시했다는 설명이 되어버리는 안타까움이 있다. 정책 결정 그룹 내 친미파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한미워킹그룹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고 남북 협력 방안을 주도한 김연철 장관만 사임했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북측은 4월 총선까지 남측 내부 정치에 간섭하지 않기 위해 침묵했지만, 그 이후에도 삐라 문제 등이 개선되지 않자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보여진다. 더불어 필자가 본 전단지 내용은 상당히 저급했다. 대북 심리전 목적보다는 남남갈등과 남북갈등 유발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부 논객들은 전단지가 명분에 불과하며,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 실정을 덮으려는 술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쉬운 건 우리 내부에서 이런 문제를 두고 내부 정치가 작동돼, 상당수 논객들이 대북 전단 문제의 역사와 전개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논지를 펴고 있다는 점이다.
북측 입장에선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철저하게 규제한 전단살포를, 남북화해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가 묵인하고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더욱이 국정원이 이미 수차례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또한 경기도 이재명 지사는 현행법만으로 행정명령을 통하여 살포를 금지시키고 있는데, 어떻게 탈북단체의 활동이 묵인되었는지 우리 국민이나 언론에 대하여 통일부나 안보실이 설명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정부의 전단 살포 금지를, 노무현 정부에서 민간에 의한 살포 금지를 상호 약속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선 비밀협상 과정에서 이같은 약속 위반에 따라 김영철, 리선권 등에게 수모도 당했다. 당시 전쟁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었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현 외교안보 라인이 4.27판문점 선언에서 이를 약속했음에도 탈북자들의 활동을 묵인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강화도 접경지역이나 교동도 등 민간인통제구역 내를 들어가려면 신분증 검사와 물품검사를 하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때에도 통제가 되었던 삐라 물품이 어떻게 문재인 정부에서 통제가 되지 않았는지 미스테리한 의문도 생긴다.
역사적 경로, 충분한 정보기관의 경고, 북측의 지속적 항의 등이 있었다는 점에서 다양한 경보음을 우리정부가 살펴보지 못했다는 조성열 박사의 지적도 상당하 설득력이 있다. 보수정부에서도 심각하게 인식했던 문제였다. 수차례 남북합의, 특히 4.27판문점합의 이후 현 외교안보라인이 미국과 협의가 필요없는 전단문제를 왜 관리하지 않았나. 북한 지도부 담화에 따라서 우리가 뒤늦게 대응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남남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어쨌든 향후 7월 27일까지 북한군은 살라미식 대적 사업을 진행할 것인데, 지금이라도 문제의 근본원인을 직시하고 합의이행 방안을 진지하게 결단할 필요가 있다.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수차례 ‘우리의 인내는 연말까지’라고 시한을 못 박아왔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겠다는 압박도 진행했다. 연말연초 중국의 대북 경제 협력과 같은 당근 정책으로 시간이 연장되었고, 코로나19확산과 한국 총선 국면이 고려돼 일정이 다소 연기되었다. 그러나 선거 이후에도 북측에 이행 방안을 제시하지 않자, 북측이 새로운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 분석이다.
북 지도부의 '군 통제'를 위한 대적활동의 향방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대북 전단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4.27판문점 합의를 정면 위반하고, 6.15합의 등 기존 남북 사이의 다양한 합의를 위반하는 문제를 담고 있다. 극단 성향의 탈북단체가 뿌린 전단지가 접경지대에 떨어졌고, 이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최고존엄에 대한 반인륜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전단에 대해 북한은 분노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측 내부에서 비난의 화살은 전체 탈북자와 약속이행을 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으로 확산됐다. 그야말로 경제제재와 코로나 문제로 위축된 상태에서 울고싶은 북한 정부와 인민들의 빰을 때린 셈이다. 물론 과잉 충성 경쟁도 벌어질 것이다. 김정일 통치 시기 선군정치를 통해 군부가 비대해졌는데, 4.27판문점 합의 이후 감군을 추진하며 군부가 축소되고 있는데 대한 불만도 누적됐다. 북측이 일부 선제적 행위를 했지만 제재 완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은 행동 1단계로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인민군 총참모부는 17일 대변인 발표를 통해 금강산관광지구 개성공단에 군부대 전개, 비무장지대에서 철수한 감시초소 복원, 접경지 포병부대 증강 및 군사훈련 재개, 대남전단(빠라)살포 등 네 가지 대남 군사조치를 발표했다. 김여정 담화와 군중집회 과정으로 내부 불만도 분출되고 있다. 첫 단계로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북측 입장에서 자신들을 기만한 외교안보라인, 특히 미국 탓을 하는 그룹에 대한 섭섭함을 표현하는 이벤트로 분석될 수 있다. 동일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김여정, 김영철, 리선권 등의 대남 과격 담화는 북한 내 대화파들의 자아비판인 셈이다. 이와 함께 북측 주민들의 분노 표출 창구를 만들면서, 이를 통제하려는 목적도 있다.
북한 행동의 요인을 알면 해결 방안도 추정해 낼 수 있다. 따라서 향후 남측이 남북정상합의의 이행방안을 적절하게 제시하면,다음 단계인 대남전단 살포 과정에서 북 지도부가 성공적으로 인민과 군의 불만을 통제할 수도 있다. 북한 내 대화파들이 향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지구의 군부대 전면 전개를 저지하고,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부근에 상징적으로 일부 부대만을 전개하는 수준으로 통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성공적으로 남북 비밀 대화가 이루어지고 우리 측이 이행방안을 제시한다는 전제 하에서다. 잘 되면 북한 지도부가 내부의 불만을 통제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을 가능성도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 남북합의는 미국과의 관계이기도 하기 때문에 쉽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이다. 어려운 일들이다.
한반도평화를 위한 한미워킹그룹의 성적표는
우리 정부 일부 인사들 사이에선 한미워킹그룹과 유엔사 때문에 남북합의 이행이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한미워킹그룹은 운영문제 때문에 통일부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친미 성향 인사들의 견제로 결국 통일부 장관만 사임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미워킹그룹은 2018년 11월 우리 외교부 주도로 출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초 우리측은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대한 미국측의 이해를 넓히고, 미국측 인사들의 북미협상을 촉진시키는 것을 전략 목표로 삼았다. 볼턴 회고록 일부에도 나오지만 우리측 작품으로 싱가포르 회담이 성사되었고, 비건 등 일부 인사들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도 했다. 그런데 2018년 하반기 도로철도현대화 조사, 2019년 1월 타미플루 제공을 둘러싸고 유엔사와 한미워킹그룹은 오히려 장애가 됐다. 더불어 한미워킹그룹이 남북미 대화 촉진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오히려 제재 강화의 역할만 하고 있다. 초기엔 우리측의 입장을 미국이 수용했는데,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반대로 미국측이 자신들을 입장만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초기엔 대화와 비핵화의 선순환구조를 위한 하나의 장치로 제안을 했는데, 제재와 갈등의 악순환 고리 역할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게 한반도평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우리 정부가 한미워킹그룹의 성적표를 국민들에게 공개할 시간이 되었다.
문제를 좀더 확장해 보자. 현 외교안보라인은 합의 이행 문제에 있어서, 주로 두 가지로 해명을 하고 있다. 첫째, 북측이 대화에 나오지 않는다. 둘째, 유엔사와 한미워킹그룹이 문제이다.
비무장지대 남측구역은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이지만, 유엔 관련기구가 아닌 유엔사가 실효지배를 하고 있어서, 통일부 장관이나 한국군 장성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다. 2019년 1월 타미플루 문제로 유엔사가 한국 여론의 심각한 비판을 받게 됐다. 한미워킹그룹은 마치 총독부처럼 남북관계에 간섭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게 됐다. 물론 우리 정부가 미국을 설득하는 게 어렵다는 점은 이해한다. 작년 하반기 중국의 어떤 학술대회에서 북측 학자가 필자에게 ‘남북합의를 할 때, 미국을 설득할 능력과 의지도 없이 정상회담을 했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을 변호하자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반도에 대한 이해가 낮고, 국무부, 국방부 등 미국의 보수적 관료 집단이 방해할 것이라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북미 양쪽을 중재하며 합의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볼턴의 주장대로 미측은 처음부터 약속이행의 의지가 낮았는데, 우리정부는 북미 합의만 이끌어내면 그다음부터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섞인 판단을 하고 있었다.
북한은 어떨까. 우선 싱가포르 회담 이전부터 북측은 미국을 상당히 의심하고 있었다. 수차례 판이 깨질만한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우여곡절의 과정에서 비건이 스탠포드대학 연설을 통해 우리측 주장을 대체로 담아 북미 협상 관련 목표를 공개했다. 심지어 하노이 회담 직전 북 지도부는 적대적이라고도 볼수 있는 우리에게 협상에 대한 자문을 적극적으로 구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것이다. 남북 모두가 어렴풋한 의심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 북측은 하노이 노딜 이후 당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북측 입장에서 보자. 평창올림픽에서 하노이 결렬까지 대화를 주도한 건 김여정, 김영철 등이다. 따라서 이들이 현재 남북 합의불이행에 책임이 있는 것이며, 일부분은 알면서 당한 측면도 있다고 북한 내부에선 바라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앞장서서 자아비판 형식의 대남 선전활동을 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일부 언론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하지 않는다며 그의 건강이상설을 제기하고 있는데, 반대로 이는 남북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전략적 고려로 분석된다. 전쟁을 불사하는 북한 ‘대화파’들의 거친 담화들 사이에서 ‘최후의 협상자’는 등장이 보류돼야 하는 게 상식이다.
오늘날의 갈등은, 물론 지난 70년간의 남북, 북미 상호 적대적 대결구조의 산물이겠지만, 현재 다수의 북측 인민들은 이런 식의 복잡한 역사 문제보다는 현 상황을 초래한 책임자에 대한 비판을 상정하고 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북측 담화가 민망하고 과격하고 품격없는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좋은 외교언어로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충격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데, 이것이 실제 북측 인민들의 반발을 어느정도 누그러뜨리고, 남측 여론에 성찰하는 기회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대화–북미 핵협상 분리 접근법과 특사 교환의 조건
6.15에 우리측은 특사를 제안했는데, 이명박 정권때와 마찬가지로 북측이 공개를 해버렸다. 북측 입장에서 우리의 제안은 겉으로는 평화를, 속으로 대결을 외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이중적 태도로 인식한다. 물론 이명박 정부때는 겉으로는 대결을, 속으로 남북경제협력을 비밀리에 제안했었다. 그러나 북측은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하여 ‘사기를 당했다’고 분석하는데, 이를 중재한 인물을 또다시 내세웠다. 이명박 정부때도 특사 공개 이후에 남북 비밀대화가 있었듯이, 지금 역시 남북 비밀대화의 여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상당수 논객들이 우리 재산을 북측이 멋대로 폭파했으며, 강대강의 대결로 가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남북 관계가 강대강 대적관계로 전환되었을 때 이해득실을 따져볼 필요성이 있다. 미국의 보수세력이 절대 이익을 보는 것인지, 혹은 남측, 북측의 누가 이익을 보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북측의 군사활동이 우리측 정보자산에 의해 모두 잘 관찰되고 있다. 북측이 의도적으로 군사활동을 공개하고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일가.
현재 북측도 내부 여론과 압력, 그리고 남측에 대한 메시지라는 측면에서 김여정 부부장 등이 매우 과격한 발언을 내놓고 있으며 동시에 군부에 의한 군사적 압박도 진행하고 있다. 북측 내부의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우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북측의 욕설에 가까운 과격한 담화에도 우리 국민들이 우리 정부의 합의 이행 방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우리 측에도 여론 환기 효과가 어느 정도 있는 측면이 존재한다. 조만간 예정된 문 대통령 비난 대남 전단 대량 살포계획을 막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과격한 담화와 군사행동이 진행이 되면, 남북 모두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특히 남측과 미국측 여론이 북한에 대한 반감을 넘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한 미국 대선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런 악순환의 구조를 만들면, 2017년 ‘핵버튼 대화’가 오갔던 악몽이 재연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화기조를 유지할지, 강대강 충돌을 일으킬지 중요한 결단의 국면에 있다.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해 본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를 선택하는 경우, 둘째, 문재인 대통령이 대결을 선택하는 경우, 두 가지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를 선택한다면, 남북 물밑 접촉을 통해 현상을 동결하고 북한의 전단살포 정도만 허용하며 다음 악화된 단계로의 이행은 중단시키는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북측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남북정상간의 합의 이행이다. 친미 사대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이는 다르게 해석하면 미국과 협의가 반드시 필요한 사항을 장기과제로 미룰 수 있는 여지를 우리 측에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남북 도로, 철도 연결이나 금강산 등 개별 관광은 유엔 안보리결의안 위반을 하지 않고 충분한 성과를 낼수도 있었다. 한미워킹그룹에서 반대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런 문제는 미국과 합의없이 실행을 해도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전단지 살포에 대한 사과와 금지 약속, 한미워킹그룹의 해체, 국회에서 ‘남북정상합의에 대한 국회비준 준비 등을 남북 물밑 접촉 이전에 해결할 필요성가 있다.
특히 남북 합의 사항에서 이행할 수 있는 분야를 구체적으로 작성하고, 판문점, 베이징, 유엔대표부 등을 통한 비밀접촉으로, 구두로라도 대화를 재개할 필요성이 있다. 신임 통일부 장관 후보를 포함한 새로운 외교안보라인과의 상견레를 겸한 특사 파견을 제안을 한다면 어떨까. 중요한 점은 이행 방안 중에서 즉시 이행가능한 분야, 미국 설득이 가능한 분야, 그리고 장기과제를 선명하게 구별해서 통보해야 하는 ‘기술적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측도 모든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의 이행을 요구하는 것으로는 보여지지 않는다. 특사의 설명 외교가 성공하면, ‘합의이행방안’을 주제로 남북이 정상회담을 진행할 필요성이 있다.
4.27 판문점 합의 이후 우리 정부는 선 북미 핵협상, 후 남북 협력을 정책목표로 하면서, 경제계의 개별관광, 금강산관광, 지자체 등의 타미플루나 돼지열병 방역물품 제공 등 우리 국민의 생명안전과 보건에 관련된 물자 지원도 제한해 버렸다. 이 과정에서 한미워킹그룹이 방해하는 역할을 했고, 리비아식 해법을 고수하는 볼턴 보좌관이 하노이에서 협상을 고의적으로 결렬시켰다. 이후 미국측은 제재 이행에만 집요하며 굴고 있다. 합의 실천에 제재의 다양한 항목을 들이대고 있다. 국민들이 보기에 문재인 정부는 남북합의 이행과 대미 설득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대미 설득과정에서 한미 사이에 충돌과 파열음도 있었다고 하는데, 동맹 사이에 회담이 외부로까지 알려지지는 않았다. 우리측 전략가들의 발언을 보면, 유엔사와 한미워킹그룹이 한반도평화를 위한 역할을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방해하는 듯한 모습을 적지 않게 보였다고 한다. 따라서 북미 핵협상과 남북 협력을 분리하여 추진하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앞에서 설명한 남북정상 합의 실천 방안이 나올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접근법을 위해서는 싱크탱크를 교체해야 한다. 다소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시간이 없다는 제한점도 있다.
미중 냉전을 촉진하는 최전선으로서의 한반도 남북의 대결
둘째, 만약 문 대통령이 강대강 대적관계를 선택하는 경우다. 이 때는 힘에 의한 평화를 기조로 제2의 한국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물론 북측의 과도한 발언과 군사행동으로 국민여론의 흐름에 따라 어쩔수 없이 문 대통령이 강대강 대결과 충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올 수도 있다. 한국사회는 또다시 냉전 반공주의가 판을 치고, 경제는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전락할 것이다. 대립을 통하여 냉전의 최전선이 되어 대규모 미군을 초대하고, 중국과 오랫동안 적대관계을 유지할 것이다. 제2의 한국전쟁 혹은 대결 덕에 경제부흥에 성공하여 장기독주하는 아베의 영향력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만약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합의 이행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시간끌기 전략을 선택한다면 강대강 대결 국면으로 전환으로 밀려갈 수밖에 없다. 앞으로 한달간 북한은 자신들의 매체를 통해 행동 방향을 사전 공개하며, 동시에 세분화한 군사활동을 전개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남북 적대관계로의 전환의 입구에 서서 우리측의 반응을 볼 것이다.
현재 북측은 미국 대선국면에서 비핵화 대화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스스로 대화의 문을 닫고, 제재를 받아들이길 선택한 것이다. 대외관계와 경제협력은 안보리 결의안 이외의 물품무역과 관광 등을 중심으로 하면서 중국과 관계 강화를 진행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어려운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한미군사훈련 재개 등 상당한 호재를 맞았다는 분위기다. 한미 군사훈련을 통하여 2017년과 마찬가지로 미군이 한반도에 항공모함, 전략폭격기, 핵탐재 잠수함 등을 전개하고, 주한미군 부대에 사드 설비보강과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 등을 시도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군의 전력증강을 중러에 대한 견제로 규정하고, 중러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북측의 핵과 탄도미사일 고도화를 추구할 것이다. 현재 한미 감시자산에 의하며, 대부분 북측 핵설비, 잠수함 등이 관찰되고 있는데, 북측은 현재보다 더욱더 전략자산을 공개하며 개발하는 방향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는 일반적으로 핵개발국가들이 전략무기를 숨기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이다. 부실한 전략무기를 상대측의 감시자산에 보이는 곳에 숨기는 방식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충분히 알수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중 전략경쟁 과정에서 북측은 미중 갈등과 남북갈등을 심화하고, 한미동맹 강화에 맞서 2021년 중국과 동맹조약 연장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한미를 자극할 것이다.
앞으로 한달간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지 못한다면, 미국 대선과 한국 대선 일정에 밀려서 대화의 모멘텀을 다시 잡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차기 정권이 출범하는 2022년 상반기까지 분단과 대결의 방향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선택의 시간이다. 대화인가, 대결인가.
※박종철 북한정치, 동아시아국제관계 전공. 경상대학교 일반사회교육학과 교수. 전북대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 일본 도호쿠(東北) 대학에서 석사,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북한연구학회 부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북경대 한반도연구센터 객좌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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