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사망한 고 김재순 씨. 중증장애인인 그는 광주 광산구 소재 재활용 처리 업체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합성수지 파쇄기 상부에 걸린 폐기물을 홀로 제거하다가 발을 헛디뎌 파쇄기에 빨려 들어갔다. 해당 작업장은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고위험 작업장으로 2인 1조로 일해야 하는 현장이었지만 당시 김 씨는 혼자 일했다. 김 씨는 이전에도 거의 항상 혼자 일했다.
김 씨는 지난 2018년 2월부터 이 업체에서 일했었다. 지적장애인인 그가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야 취업이 가능했다. 일은 힘들고 어려웠다. 견디다 못해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봤다. 그러나 취업이 쉽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이 업체에 그가 돌아온 이유다.
김 씨 사망 후 업체는 "김 씨가 장애인인 줄 몰랐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장애인이었다는 데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해당 업체는 불과 6년 전인 2014년에도 또 다른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빨려 들어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지난 6년 동안 단 한 차례도 해당 업체를 관리·감독하지 않았다. 김 씨의 사고는 예견된 사고였다.
위험한 사업장, 더 위험에 처하는 장애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0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과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전면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고 김재순 씨의 죽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회적 타살"이자 "산업재해 예방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또 중증장애인인 그가 장애 사실을 숨긴 채 취업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두고도 "장애인일자리 정책의 실패"로 규정하며 "속도와 효율, 생산성만을 중시하는 차별적 정책의 시정"을 요구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장애인이 스스로 일해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들은 장애 사실을 숨겨가면서 일을 한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근로환경도 열악하고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일을 해야 한다"며 "비장애인이든 중증장애인이든 안전이 보장되는 노동현장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정부에서는 전국민 고용보험을 이야기하지만 애초에 고용도 안 되는 장애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며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장애인들은 생존권에서도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최은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울지역본부 본부장도 전날인 9일 현대제철에서 하청노동자가 사망한 사실을 언급하며 "더 가난하고 더 약한 사람들만 죽는 전염병이 도는 것 같다"고 개탄했다.
그는 김 씨의 죽음이 김 씨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최 본부장은 "자동차가 자율주행을 하고 빅데이터로 복잡한 도로사정을 파악하는 세상에 노동자는 분쇄기에 빨려 들어가 온몸이 산산히 부서졌다"며 "사고가 발생한 기업들에 철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노동자의 죽음은 그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고 누구보다 그 죽음을 방치한 기업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의 발달부터 일자리까지, 모두 '개인의 일'
박명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의 노동은 소외되고 배제되어 더 저렴하게 취급된다"며 "힘들고 위험한 일에 내몰려도 찍소리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일 광주에서 60세 엄마와 25세 장애인 아들이 함께 목숨을 끊은 사건을 언급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돌봄시설이 전부 문을 닫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장애인 아이는 철이 들기 전부터 '나로 인해 부모님이 힘들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다"며 "어른이 되어서는 더 잔인하다. 장애인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장애인은 생산성도 효율성도 없다고 손가락질 당하며 방치된다"며 "장애인이 남들과 다름없이 학교도 갈 수 있고 졸업하면 직장에도 갈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함께 장애인 공공 일자리 확보 등을 위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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