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승격과 관련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논란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 원장은 5일 중앙방역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나름의 의견을 내겠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앞서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립보건연구원과 감염병연구센터가 확대 개편되는 감염병연구소의 복지부 이관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해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사실상 국립보건연구원의 복지부 이관을 취소하라고 청와대가 직접 복지부에 지시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권 원장(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앞으로 (국립보건연구원의) 거버넌스(지배구조)와 관련해 대통령께서 추가 검토 필요성을 제기하신만큼, 관계부처 간 협의를 통해 최종 정부안을 만들 것"이라며 "국립보건연구원은 나름의 의견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국립보건연구원 입장'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으나, 권 원장은 구체적 입장을 삼갔다.
그는 "강조 드리고 싶은 건 중앙방역대책본부(질병관리본부+국립보건연구원)는 한 몸이고, 코로나19라는 병원체만이 저희 눈앞에 있을 뿐"이라며 "제가 조직에 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혹시라도 '방역당국이 흐트러진 건 아닌가, 다른데 주의가 분산된 건 아닌가' (를 국민께서 오해하실까 걱정된다) 전혀 걱정하지 않으시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권 원장은 다만 원론적 차원에서 질병관리본부의 역할과 국립보건연구원의 역할은 다르다는 점을 전했다. 국립보건연구원은 감염병을 비롯해 난치성 질환, 뇌·심혈관질환 등을 연구하는 생명의과학센터, 유전체와 생명정보를 연구하는 유전체센터를 갖고 있다.
권 원장은 "국립보건연구원은 현재의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미래 의학 분야 비전과 연구 방향을 선도하는, 우리나라 생명의·과학 분야 연구개발의 콘트롤 타워가 돼야 한다"며 "외국의 경우를 봐도 질병관리청과 국립보건연구원의 임무는 대개 다르다"고 언급했다.
권 원장은 "질병관리청의 임무가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즉시적 업무라면, 국립보건연구원 임무는 지식 증진, 연구개발을 통해 국민 수명을 연장하는, 보다 호흡이 긴 영역"이라며 "국립보건연구원은 현안보다 미래를 보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권 원장은 "국립보건연구원은 감염병 치료제 백신뿐만 아니라 만성 질환 연구, 유전체 및 빅데이터 연구, 미래 디지털 치료제 개발 등을 먼저 준비하고, 시범 사업과 연구비 지원 등의 역할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과 국립보건연구원의 역할이 다르다는 설명은 지난 4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방대본부장) 역시 한 바 있다. (☞관련기사 : 허울뿐인 질병관리청 승격? 정은경 "연구조직과 인력 확대 필요")
정 본부장은 "저희(질병관리청)가 필요한 연구는 질병 관리를 잘할 수 있는 역학 연구, 모델링, 예측, 역학조사 방법론, 각 감염병 별 역학 특성 분석 및 실태조사 분야"라며 "감염병을 퇴치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개발하는 정책 개발 연구와 정책 평가하는 의사결정 근거 마련 연구 조직과 인력 확대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질병관리청이 필요로 하는 연구소는 "국립보건연구원의 백신 치료제 연구와는 조금 다른 성격"이라며 "청에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조직 확대가 필요하다"고 정 본부장은 언급했다.
신설될 질병관리청과 국립보건연구원의 역할이 다르다는 데는 두 방역 전문가 의견이 일치한다. 논란은 두 기관 지배구조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집중돼 있다.
행정안전부의 초안은 두 기관 역할이 다르다는 전제 아래에 둘을 떼어내는 방안이다. 반면 의료계 전문가들은 연구 역량 확보를 위해 신설될 국립감염병연구소를 질병관리청 산하에 둬, 질병관리본부-국립보건연구원의 현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조직 개편안에서 질병관리청이 연구 기능을 잃고 복지부 위상만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자, 의료계는 해당 개편안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재갑 한림대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 4일 "국립보건연구원과 신설될 국립감염병연구소는 질병관리청 산하에 남아야 감염병 대비 역량 강화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정부 발 조직 개편안을 철회하라고 청와대 게시판에 국민청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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