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전단 살포가 또다시 남북관계의 중대 변수로 등장했다.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4일 담화를 통해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남한 당국의 조치를 요구하며 "최악의 사태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제 할 일을 똑바로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최악의 사태"를 두고는 개성공단 완전 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을 거론했다.
이에 앞선 5월 31일에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김포시 월곶리와 성동리에서 전단 50만 장, 소책자 50권, 1달러 지폐 2000장, 메모리카드(SD카드) 1000개를 대형풍선 20개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고 밝혔다. 전단에는 '7기 4차 당중앙군사위에서 새 전략 핵무기로 충격적 행동하겠다는 위선자 김정은!'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김여정은 이를 맹비난하면서 "나는 원래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 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며 남한 당국의 조치를 요구했다. 대북 전단 살포가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 합의를 위반하는 것인 만큼, "(대북 전단 살포를)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한 것이다.
실제로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이 합의 이후에도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실효적인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대북 전단 살포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본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하다가 경찰에 제지당하자 2015년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에 대해 재판부가 판결한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재판부는 "대북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원칙적으로는 제지할 수 없지만, 국민 생명과 신체에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제한이 과도하지 않은 이상 제지행위를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대북 전단 살포 자체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돼 제지할 수 없지만, 국민의 안전에 위험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면 제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21대 국회에서 전단 살포를 규제하는 법을 추진하더라도 위헌 논란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대북 전단 살포가 국민의 안전에 위험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규제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북한이 전단 살포용 풍선을 고사총으로 요격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실제 이런 행동에 나설 경우, 혹은 전단 살포 단체와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충돌 위험이 있을 경우에 성립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북 전단 살포 단체와 북한의 '예고'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소지를 안고 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관계자는 "김정은을 규탄하기 위해 또 100만 장의 대북 전단을 북한으로 살포할 방침"을 밝혔다. 반면 김여정은 "또 무슨 변명이나 늘어놓으며 이대로 그냥 간다면 그 대가를 남조선당국이 혹독하게 치르는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남한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들어 대북 전단 살포를 방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경고처럼 개성공단이 완전 철거되면 이 사업의 재개 가능성은 더욱 위축되고 만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카드를 꺼내들면 남북한의 소통 재개도 더욱 어려워진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남북군사합의의 앞날이다. 우선 이 합의에 대한 남북한의 인식 차이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9.19 군사 합의를 "사실상의 종전선언에 해당된다"며 그 의의를 높게 평가해왔다. 반면 김여정은 이번 담화에서 "있으나마나 한"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남북 정상 합의를 통해 "단계적 군축"을 추진키로 합의한 것과 달리 문재인 정부가 역대급 군비증강을 해온 것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
이에 따라 대북 전단 살포가 또다시 이뤄질 경우 북한은 이를 4.27 판문점 선언 및 9.19 군사 합의의 위반으로 간주하고는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말 그대로 "최악의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이처럼 대북 전단 살포는 남북한의 합의와 남한의 법규범 사이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은 표현의 자유와 대북 전단 살포를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북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두는 한 실효적인 해법을 모색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이에 따라 남북교류협력법 개정 등을 통해 대북 전단 살포도 대북 물자 반출 승인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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