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관이 '국가정보원'이다. 지난 보수정권에서 국정원은 보수언론을 동원해 전교조를 법외노조화 하는데 앞장서고, 자료를 위조해 간첩을 만들어냈다.
민간인 사찰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을 사찰하는가 하면 학술단체에 프락치를 심어 수년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국정원의 '통상적인 업무'에 속했다.
불법행위도 많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불법적으로 여론을 조작해 선거 개입한 사건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장이 특별활동비를 상납한 사건의 재판도 진행 중이다. "국정원 개혁을 위한 법이 제도화하지 않는다면 적폐청산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참여연대와 민변,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7개 단체로 이루어진 국정원감시네트워크(국감넷)이 3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에 국가정보원 개혁을 촉구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국정원 개혁 법안이 15개 발의됐지만 논의도 못한 채, 지난달 30일 임기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국감넷은 "국정원 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며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방안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대 국회에서 국정원법 개정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21대 국회는 입법을 통해 국정원 개혁을 제도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국정원을 개혁하기 위한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가 출범하고 국정원의 일부 조직 개편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국내정보파트를 폐지하고 남북 정상회담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며 대북정보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국감넷은 "그렇다고 국정원이 지난 정권에서 자행한 온갖 불법행위가 사라지거나 적폐 청산 작업이 자동으로 이뤄지진 않는다"며 "불법적인 수사관행과 형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국정원의 변화를 위해서는 그 개혁 내용이 법률 개정 등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국정원의 불법행위가 확인될 때마다 대통령과 정당들은 국정원 개혁을 약속했지만 국정원은 1961년 창설 이래 지금까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군림하며 민간인 불법 사찰, 간첩 조작, 선거 개입 등 불법행위를 자행해 왔다"며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지 무소불위의 기관으로 복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국정원 불법사찰의 피해자들이 참여해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증언했다.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은 국정원이 2010년 9월 14일 청와대에 보고한 '전교조 무력화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들어보이며 "국정원이 전교조를 해산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공작하고 범죄행위를 했다는 것이 최근 재판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준영이 아빠' 장훈 4.16 세월호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참사 당일부터 유가족들은 국정원으로부터 사찰당했다"고 증언했다.
임준우 국정원 프락치 사찰 피해자 대책위원회 간사는 "국정원은 프락치를 통해 5년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프락치에세 허위 진술서·진술조서 작성을 지시해 학술단체를 '북한 혁명조직'으로 조작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국정원의 이같은 민간인 사찰이 "직접 수사권이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프락치를 통한 내사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민간인 사찰은 분명한 처벌조항도 없다. '직권남용'이나 '개인정보보호위반' 정도로 고소하는 게 전부다. 국정원은 수사권과 국내정보수집 권한을 이용해 국내정치에 개입해왔다.
국감넷은 "입법을 통해 국정원의 직접수사권을 폐지·이관하고, 국내보안정보 수집을 금지하는 등 국정원의 권한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며 "국정원에 대한 예산 통제를 강화하고 국회 등의 민주적 통제장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정원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안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지만 안보는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며 "민주적 통제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당이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얻은 지금이 국정원을 개혁할 절호의 기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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