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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자치는 협력을 진화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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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자치는 협력을 진화하는 과정이다

[김주원 박사의 '마을자치에 학과 습을 이야기하다'] ㉛마을공동체 기본법 제정돼야

사람은 바뀔 수 있을까? 조선 정조때 시인 이덕무는 바뀔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바뀔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마을 안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함께하면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바뀌고 있다. 마을에서 우리의 문제를 찾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자주 모여 그 해결책을 스스로 만들어 내다보면 사람들이 바뀌게 된다. 그것이 마을자치의 시작이다.

배워서 만들어진 지혜가 습관화되면 사람들이 바뀐다는 것을 우리는 마을자치 우수 사례에서 확인해 왔다. 사람이 바뀐다는 것을 마을자치 학과 습의 주제로 강조해 왔다.

ⓒ김주원 농도상생포럼 회장·전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논어>는 배우고 때로 익힌다는 學而時習으로 시작한다. 논어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마을자치다. 마을현장의 지혜를 배워서 만드는 일이 바로 마을자치 학습공동체다.

나와 타인, 나와 세상에 대한 고찰은 모두 나를 바꾸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잘못된 점을 반성하고 고치는 것이다. 나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이웃과 협력하여 마을의 어려움이 무엇인가를 찾고 해결하는 과정이 마을자치다.

마을문제는 내가 사는 삶터, 마을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배움(學)의 장을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삶의 의미를 찾는 길이다. 삶의 지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세상사 혼자서 잘할 수 있는 일,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의 역사적 발전은 바로 조직화의 과정이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우리에겐 앞으로도 중요하다. 배움도 혼자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개개인의 욕구는 파편화되어 있어 이를 통합하여 일하는 조직으로 만들어왔다. 마을에서 개개인의 욕구를 조직화하기는 쉽지 않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질과 능력의 차이, 관심사가 너무 크고 다르기 때문이다.

뭉쳐져 조직화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욕구와 조직의 욕구는 늘 충돌한다. 살아남기 위해 개인의 욕구를 억제하길 원하는 리더와 시키는 일을 하기 싫어하는 구성원들과의 갈등은 계속 반복된다.

따라서 조직에서 더 생산성을 높이려면 규정을 만들어 이를 근거로 상호 계약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성과보수까지 주기도 한다.

살다 보면 이기적이고 배신을 일삼는 상대방과도 협력해야 하는 것이 세상사이다.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인간은 과연 선(善)한 존재인가 의문을 갖기도 한다.

‘착한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단순한 결론을 로버트 액설로드(Robert Axelrod)는 1984년 출판된 <협력의 진화>에서 수학적으로 증명한 바 있다. 그는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통해 이기적 개인의 이타적 행위가 자연적으로 진화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마을자치에서 핵심은 이웃과 좋은 관계를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다. 일회적 만남이 아닌 오랜 기간 함께할 상대라면 먼저 호의를 베풀고 먼저 배반하지 말라고 액설로드는 제안한다.

다음에는 가장 단순한 ‘맞대응(tit for tat)’ 전략이 결국 이득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마을 안에서 더 행복하고 잘 살기 위해서는 협력과 연대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그 시작은 먼저 이웃에게 호의를 베풀고 먼저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 당장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길게 보면 그것이 결국 이득이라는 것이다.

다윈 진화론의 논리에 따르면 남을 위한 희생심, 이타주의는 진화될 수 없다. 모든 생명은 제한된 자원을 두고 경쟁을 하는데, 남을 위해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희생하는 개체는 유전자를 후세에 전하지 못하며,

따라서 이타주의는 논리적으로 진화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일부 생물학자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번식을 자제하는 행동 양식을 배운 종들이 자연 선택된다는 ‘집단선택설’을 폈다. 이것은 다윈의 개체중심 자연선택 이론과 어긋나는 것으로, 학계의 논란거리였다.

마을자치에서 이 부분은 좀 더 깊게 생각해야 한다. 마을에서는 이 부분이 너무 강화되게 되면 공동체의 역기능이 나타날 수 있다. 과거 마을자체가 혈연중심의 씨족중심이었기 때문에 폐쇄성이 강했다.

이제는 도시화가 수도권중심으로 이루어진 후, 다시 귀농귀촌으로 U턴, J턴 등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19 이후 귀농 귀촌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자동차시대가 열리면 더 폭증할 것이다. 마을이 어떻게 더 개방적으로 자율성을 높일 것인가가 관건이다.

자연계에는 피를 나눈 혈족 사이가 아니면서 이기심을 자제하고 다른 개체나 다른 종과 협동하는 예가 역시 흔하다. 좋은 이웃을 만나야 더 행복한 삶이 보장된다.

좋은 이웃은 나부터 선의를 가지고 좋은 이웃이 되려 노력할 때 만들어진다. 남에 등부터 긁어주는 마음과 행동이 우리 마을에 행복 바이러스를 더 넓게 퍼지게 할 수 있다.

마을에서는 사업을 시작하는 일이 쉽지 않다. 연령별, 성별, 경제력에 따라, 혹은 종교적 문제, 학력, 취미 등 많은 것들이 주민들이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을주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조직을 만들어 리더를 뽑고 계약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함께 모이기도 어렵다. 함께 식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식사를 함께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식당을 갈까? 언제 만날까? 어떤 음식을 주문할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식당과 음식 일정이 결정되었다고 하더라도 또 문제가 생긴다. 음식값을 누가 낼 것인가? 더치페이로 한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 먹고, 누구나 비싼 음식을 시키는 게 이득인 것으로 생각하여 총비용이 더 들어간다. 그 결과 모두가 더 큰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각자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더라도 대식가와 미식가는 또 서로 처지가 다를 수 있다.

빈 목초지에서 가축을 먹이는 마을 사람들은 각자 더 많은 가축을 방목할수록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목초지를 황폐화시키게 된다. 이게 바로 ‘공유지의 비극’이다. 개인에게 논리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집단에게는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에 딜레마다. 이를 수학적으로 환원한 것이 ‘죄수의 딜레마’게임이다.

인간 사회와 자연계의 수많은 신뢰와 협동은 어떻게 진화될 수 있었을까? 말미잘과 물고기, 진딧물과 개미와 같은 다른 종 사이의 상호공생의 예를 비롯하여 산호초의 큰 물고기들은 청소 물고기의 서비스를 받은 후 잡아먹으면 일거양득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해답은 그들의 관계가 오래 지속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

단 한 차례 게임을 한다면 배반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같은 상대와 게임을 계속 반복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을주민은 하루 이틀 마을을 방문한 손님이 아니다.

마을은 불편한 일이 없다면 상당기간을 살아야 하는 삶터이자 일터, 놀이터이다. 삶의 지키는 공간이다. 먼저 베풀고 배반하지 않는 마음은 우리를 변하게 한다.

마을내 이웃과의 관계에서 먼저 상대에게 호의를 보이고(협력), 절대 먼저 배반하지 않는 자세는 협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충분히 오랫동안 함께 거래할 마을내 이웃이라면, 먼저 선의를 베풀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협력의 진화>에서 협력을 발전시키는 것과 관련한 시사점은 다음 네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질투하지 마라. 둘째, 먼저 배반하지 마라. 셋째, 협력이든 배반이든 그대로 되갚아라. 넷째, 너무 영악하게 굴지 마라. 죄수의 딜레마 상황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상대가 나보다 잘해도 괜찮다. 사실 상대가 잘해야 나도 잘할 수 있다.

상대가 적어도 나만큼 잘하지 않는다면, 내가 충분히 협력해 주지 못했다는 뜻이다. 또한, 상대가 나의 다음 수를 예측할 수 없다면 상호협력이 생길 수 없다. 상대가 내 전략을 곧 알아낼 수 있도록 단순해야 한다.

세상사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아니라 넌제로섬게임(Non-Zero_sum Game)이라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야 한다.

마을에서는 더 쉽게 만들 수 있다. 내 삶을 지키는 일이자 내 재산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가족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생명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쟁사회 경쟁만 하다보면 이웃이 안보인다. 이웃을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라는 점을 우리 빨리 깨우쳐야 한다.

마을에서 협력을 진화하게 하려면 국가와 자치단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자리만 지킬 것이 아니라 마을현장을 모니터링해 협력을 끌어내는 데 필요한 그것을 고민해야 한다. 공유지의 비극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선출직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중간지원조직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부처간 경계를 허물고 시범사업만 하지 마라. 풀뿌리를 강화하는 더 적극적인 지원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이와 관련한 법, 마을공동체 기본법이 제정되어 풀뿌리 마을자치가 더 성장하여 더 행복한 사회가 되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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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준

강원취재본부 전형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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