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 봄바람에 여린 춤사위로 계절을 타던 초록과 연둣빛 산 풍광은 5월 초순 청명한 햇빛에 비쳐 하늘 아래 호숫가 수면 위에서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호수를 품은 산은, 어쩌면 산이 호수에 잠겨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에 있는 봉암수원지. 팔룡산 정상(327.6m)의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 중앙에 에메랄드 빛 하늘을 거울삼아 자리한 이 자그마한 인공호수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잘 가꿔진 둘레길 코스가 빼어나다.
힘들이지 않아도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웅장하진 않지만 소소하고 깊은 산책의 즐거움을 주는 봉암수원지를 지난 6일 <프레시안>이 다녀왔다.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을 황금연휴를 이용해 잘 달랬다면, 이번 주말은 가볍게 떠나 충분한 힐링을 할 수 있는 봉암수원지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신록 따라 산속 호수를 만나러 가는 길
마산자유무역지역 앞 봉양로를 옛 창원 방향에서 마산 방향으로 향하다 이정표를 따라 봉암북 14길로 우회전해 80여m를 직진하면 봉암수원지 입구에 다다른다. 입구 오른편에는 공영주차장 시설이 마련돼 있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봉암수원지 푯말과 나란히 서 있는 유원지 안내도, 그리고 왼쪽편의 슈퍼마켓과의 사잇길을 따라 500여m를 오르면 본격적인 숲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에서 봉암수원지 제방까지는 1.4㎞ 거리이다. 오르막이지만 가파르지 않고 숲길이 시작되면 흙과 자갈길 등이 잘 조성돼 있어 5월 신록의 자연을 맘껏 즐기며 오를 수 있다.
나뭇가지들이 맞닿아 터널을 이룬 길은 싱그러움 그 자체이다. 길 오른쪽으로는 작은 도랑 구조물이 이어지는데, 수원지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물줄기가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초입부터 왼쪽편으로 이어지는 계곡에는 간단한 운동기구가 설치된 장소와 지난 3월 11일 개장한 체험형 어린이 놀이터 등이 설치돼 있다. 또, 지난날 해병대 훈련장소로 이용됐던 흔적과 시설물들도 곳곳에 남아 있다.
어린이 놀이터 입구에서부터는 갈림길이다. 어느 쪽이든 수원지 제방에 이르는데, 오른쪽 산길은 제법 가파르지만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편안한 산길을 즐길 수 있고, 직진 코스는 완만하지만 막판에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이곳은 자연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시가 있는 수원지로도 유명하다. 노천명, 정지용, 이상화, 한용운, 이육사, 김소월, 윤동주, 김상용, 김영랑의 시 15편을 유원지 입구에서부터 수원지 둘레길을 걷는 동안 만나는 문학적 즐거움도 또 다른 소확행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하늘 아래 호수
수원지 제방 둑길에 올라서면 돌탑으로 유명한 팔룡산 자락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길게 뻗은 수면 위에서 재잘대는 윤슬도 비할 데 없이 서정적이다.
수원지 둘레길은 1.5㎞로 즐기며 쉬며 걸어도 오래 걸리지 않는 비교적 짧은 코스이지만, 흙길과 데크길이 번갈아 이어지며 걷기 편안하다.
제방 둑길을 건너 산길을 오르면 팔룡산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이다. 둑길을 건너지 않고 수원지 둘레길 오른쪽 코스로 들어서면 잠시 후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다시 오른쪽 산길로 가면 6㎞에 이르는 팔룡산 정상 둘레길 코스로 접어든다. 등산을 원하면 이 코스로 가면 된다.
수원지 둘레길에는 나무다리 4개와 수변 정자인 봉수정, 넓은 쉼터인 웰빙광장이 있고, 각양각색의 큰 돌탑들이 곳곳에서 수많은 소원들을 쌓아가고 있다.
물과 맞닿은 흙길을 따라 꼬불꼬불 걷다보면 작은 물고기 떼를 만나기도 하고, 유유히 물살을 가르는 비단잉어들에 놀라기도 한다.
수면 반대쪽 기슭도 훌륭한 힐링 공간이다. 아직 덜 자랐지만 언젠가는 큰 숲을 이룰 편백나무들이 촘촘히 서 있고, 나무의자와 쉴 수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서 쉬어가라 손짓한다.
설해교~봉수정~월명교를 지나 웰빙광장 가까이 오면 물에 반쯤 잠긴 고사목들이 보이는데, 경북 청송 주산지 느낌의 호수 풍경도 만날 수 있어 이색적이다.
수원지 중간지점인 웰빙광장은 넓은 잔디밭과 2층 쉼터, 숲속 도서관 등이 있어 호수를 바라보며 휴식과 독서를 하기에는 이보다 나은 공간이 없을 듯하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운호교를 지나 또다시 비단잉어가 무리를 지어 유영하는 모습을 뒤로 하면 부부 같은 청둥오리 한 쌍이 앞뒤로 나란히 헤엄치며 내외하는듯한 모습을 만날 수도 있다.
수만교와 제방 둑길에 이르는 이 구간은 팔룡산 정상에 이르는 경사면답게 수면 반대쪽 기슭이 제법 가파르고 돌탑들도 양쪽으로 수없이 펼쳐진다.
제방에 도착한 뒤 왼쪽에 있는 돌계단으로 내려서면 시원한 분수대와 발 씻는 세족장이 나온다. 널따란 나무구조 휴식공간을 두고 양쪽에 있어 땀을 식히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한적하고 고요한 호수와 휴식 같은 둘레길, 가지를 늘어뜨려 호수와 소통하는 나무들, 물속에 잠긴 산과 하늘, 봄기운에 에둘러져 아지랑이 같은 풍경들…
거대한 산업도시의 한가운데 자리한 섬 같은 산과 그 속에 숨은 봉암수원지 둘레길을 즐기기에는 요즘만한 계절도 없을 듯하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수원지 역사
봉암수원지는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 일본인들이 착공해 1930년 6월 6일 완공된 인공 저수지이다.
1899년 마산항이 개항하고 1904년 러일전쟁과 1910년 일제의 한국강제병합을 거치면서 마산의 주도적 세력으로 떠올랐던 일본인들이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도시 건설에 따른 상하수도 건립이 무엇보다 필요했던 일본인들은 1927년 5월 총공사비 45만1,173엔을 들여 상수도 시설을 하게 되는데, 이 상수도의 상수원이 현재의 봉암수원지이다.
이 때 계획급수 인구는 1만6,000명에 저수지의 용량은 약 40만 톤으로 설계됐으며 1인당 하루 170ℓ, 하루 최대 급수량 2,720㎥ 규모였다.
이후 마산의 인구가 증가하자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12월 제방을 증축해 저수용량을 60만 톤 규모로 늘렸다.
하지만,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급속한 인구 증가로 용수가 부족해지자 광역상수도 확장사업이 진행돼 1984년 12월 31일 준공되자 봉암수원지는 기능을 상실해 폐쇄됐다.
봉암수원지 제방은 돌로 마감돼 정확한 내부 구조는 알 수 없다. 다만, 돌을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가공해 돌과 돌 사이를 모르타르를 채워 쌓은 외부 모습만 확인할 수 있고, 배수관을 설치하기 위해 철근 콘크리트 구조 또는 그와 함께 모래·흙으로 쌓은 복합형 구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제방 단면은 돌을 전체적으로 마름모 형태로 쌓아올리다 윗부분 3분의 2 지점에서 수직으로 쌓아 구조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며, 당시의 댐 축조 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방 위쪽 길이는 약 73m이며, 정면에서 마주봤을 때 왼쪽에 물이 흐르는 아치형 수로 3개가 연속해서 결합된 구조로 돼 있다.
지난 2005년에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 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됐으며, 도심 속 호수 산책과 힐링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