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 인도분이 마감일 하루 전날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가격으로 떨어진 뒤 시장이 주목한 6월 인도분 선물도 대폭락을 면치 못했다.
2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43.4%(8.86달러) 하락한 11.5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70% 가까이 밀리면서 6.50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코로나19의 충격이 계속된다면 6월물 WTI도 결국 마이너스 영역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공황급 글로벌 경기침체가 우려되면서 국제원유 수요가 급감한 반면 공급과잉으로 남아도는 원유를 저장할 공간이 바닥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해상에서 원유 선적이 가능해 원유저장 공간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영국산 브렌트유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지만, 대폭락을 면치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6월물 브렌트유는 24% 하락하며 18년만에 배럴당 2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 1월만 해도 WTI와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65달러가 넘었고, 주요 석유업체들의 손익분기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배럴당 30달러에서 크게 멀어졌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유례없는 규모의 감산에 합의했지만, 수요 급감에 따른 상대적인 공급과잉을 상쇄하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OPEC+(OPEC과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가 지난 12일 화상회의를 열어 5∼6월 두 달 간 하루 97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합의했지만, 시장에서는 원유 수요가 하루 300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조선에 실린 채 바다 위에 떠있는 재고분만 1억6000만 배럴로 추정된다.
OPEC+ 에너지 장관들은 이날 예정에 없는 긴급 콘퍼런스콜을 진행했지만 어떤 해법도 내놓지 못했다. OPEC 좌장 격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성명을 통해 추가적인 조처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밝혔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셰일업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추가적인 유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시장에서는 산유국들이 역대 최대인 '970만 배럴'을 웃도는 추가 감산합의를 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며, 기존 합의마저 실제로 이행할 지 의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 비축유를 최대한 매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멕시코만 일대에 위치한 비축유 저장시설의 여력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미 선물 투자자들이 6월물을 건너뛰고 곧바로 7월물로 갈아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날 6월물 WTI가 폭락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골드만삭스는 "국제유가가 몇 주 안에 회복될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국제유가 폭락을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경기불황의 상징으로 보고 있는 뉴욕증시는 이틀 연속 하락했다. 이날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지수는 631.56포인트(2.67%) 하락한 2만3018.88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86.60포인트(3.07%) 내린 2736.56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297.50포인트(3.48%) 떨어진 8263.23에 각각 마감했다. 유럽 주요국 증시도 3~4% 큰 폭으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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