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이 보이지 않지만, 곧 그리되리라 믿고 싶다. 다들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른다는 경고가 그냥 경고로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고 경계를 늦출 수 없다.
그 와중에도 다들 성공 요인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해할 수 있다. 실무와 기술 차원에서는 성공과 실패 원인을 찾는 일이 중요하니까. 많은 저소득국가는 이제 막 시작 단계일 수도 있으니 판데믹에 대한 국제적 대응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방역 기술을 넘어 이제는 성공과 실패를 둘러싼 정치(화)가 더 강하게 작동한다. 국제 요인과 국내 요인이 합작해 조성하는 분위기 탓이다. 국제란 '실패'를 자인하는 여러 외국이 한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그리고 국내란 이번 주 수요일에 예정된 4.15 총선을 가리킨다. 다른 상황과 비교하면 이 둘이 가장 크다.
한 마디로 한국이 '모범' 사례이며, 야박하게 말해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가가 핵심이다. 여기서 한국이란 당연히 한국이라는 국가, 사회, 정치 공동체, 정부, 또는 체제, 제도, 보건의료체계 등을 가리킨다. 어쩌면 이런 '체제' 평가의 정치가 당연하고 또 바람직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종합 평가를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안 요인이 많고 불확실성이 커 당분간 유행과 확산 추세를 전망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크다. 판데믹이라는 나라 밖 사정까지 보태면 앞으로 더 많은 성공과 실패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뿐인가. 이미 지나간 일조차 정보와 이해가 충분치 않은데, 결론적 평가가 가당키나 한가.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또한 (잠정적이나마) 판단하고 평가해야 하는 형편이라는 점이 딜레마다. 책임과 보상을 둘러싸고 이해관계자가 경쟁하는 것이야 늘 있는 일이라 해도, 현재와 과거를 규정하여(평가) 미래에 개입하려는 시도 또한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시민의 관점에서 다가올 미래를 위해 비판하고 또한 경쟁해야 할 의무를 인식한다.
예를 들어, 철저한 개인 동선 추적을 성공 요인으로 규정하는 순간, 코로나 이후뿐 아니라 바로 지금부터 이 모델은 '선(善)'이 되고 '권력'이 된다. 새 기술이 개발되고 시장이 커지며, 법과 정책, 제도며 문화가 영향을 받는다. 종국에는 개인의 행동과 생각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이를 감수할 것인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무슨 원대한 구상을 하고 의도적으로 성공과 실패를 한 방향으로 규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평가의 정치는 개인의 의도와 무관하며 집단과 세력의 '이성'이 작동한다. 현재와 과거를 규정함으로써 미래에 개입하는 행위는 스스로 정당성을 증명하고 유지하려는 시도, 넓은 의미에서는 권력 관계를 반영하고 이를 유지하려는 정치적 실천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정부는 코로나 방역의 성공과 실패 요인을 체계화하고, 그리하여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가겠다는 실천 원리를 상당 부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관료가 지난주에 했다는 다음 설명은 결코 개인 자격으로 한 것이 아니다.(☞ 기획재정부 4월 10일 자 보도자료 '허장 국제경제관리관, 한불 화상컨퍼런스 참석 결과')
어떤 권력이 '성공'이라 평가하고 그 요인을 이렇게 분석하는 것은 두 가지 목적을 지닌 정치적 실천이다. 하나는 코로나 유행 전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코로나 이후 이 정책 기조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가장 중요하게, 바이오와 정보통신 등 '기술'이 눈에 띈다.
경제부처에서 잘 쓰지 않는 표현인 '시민참여'와 '민주적'이라는 말도 의미심장하다. 국제 동향을 반영해 언뜻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달라 보이지만, 사실 기존 경로에서 얼마나 벗어났을까 싶다. 우리는 이를 신자유주의가 공공성을 포섭하는 세계적 방식, 그 유명한 공공-민간 협력(public-private partnership, PPP)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한 마디로, 기존 경로와 대동소이다.
앞으로도 재난과 비상시기에 민간 병원의 협력(동원), 의료인의 자발적 협력과 자원봉사, 시민의 개인적 협조와 윤리적 실천에 의존하겠다는 뜻에 가깝다. 공공성 강화에 대한 교묘한 반대 패러다임이라는 점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코로나 유행을 계기로 여러 지역에서 빗발치는 공공보건의료 강화 요구에 대해, 기존 권력 관계(민간과 시장 중심)를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본다.
이것이 패러다임으로 굳어지는 중이라는 근거. 코로나 유행이 본격화한 후 중앙 정부는 뻔한 상황에서도 공공성이나 공공보건의료를 입에 올린 적이 없다. 여당 또한 마찬가지, 총선 공약 그 어디서도 공공성 강화나 공공보건의료 강화를 직접 거론하지 않는다. 다른 행위자도 기존 권력 관계를 복원하려는 것은 마찬가지.
오늘 '논평'은 굳히기에 들어간 듯한 이 문제적 패러다임을 지적하는 것이 주목표다. 그 결과가 좋고 시민이 행복한 길이면 시비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곳곳에서 드러나는 현실의 고통과 아픔을 해결하지 못하고, 곳곳에서 분출하는 공공성 강화에 대한 요구를 억압하니 문제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체제와 레짐 수준의 공공성 강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이어질 문제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그나마 조금 열렸다가 곧 닫힐 수도 있는 이 '기회의 창'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같이 지혜와 실천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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