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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박근혜식 복지국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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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박근혜식 복지국가의 미래

[시민정치시평] 박근혜가 꿈꾸는 복지는 미국식 잔여복지

한미FTA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민주당은 집권하면 한미FTA를 폐기하겠다고 큰소리치더니 슬그머니 재재협상카드를 내밀고 있다. 의욕이 너무 앞섰나 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박근혜)은 한미FTA 폐기를 운운하는 야당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서로 자신들이 한국을 복지국가로 만들 수 있는 적임자라고 자임하고 있다. 한미FTA 찬반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복지국가를 주장하니 한미FTA와 복지국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미국은 본래 국가 간 양자협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미국은 일관되게 다자협상을 통해 경제적·정치적 패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중요한 다자협상에서 미국은 의도한 성과를 얻지 못했고,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이 시점부터 미국은 다자협상의 실패로 인한 영향력 감소를 만회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정한 자유무역 원칙이라는 미명하에 FTA협상 대상국에 대한 시장개방 압력을 높여나갔다. 1986년 시작된 캐나다와 미국의 FTA를 멕시코를 포함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확대하고, 이후 요르단, 칠레, 호주 등 2006년 현재 33개국과 FTA 체결 또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미국과 양자협상을 성사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의 양자 통상협상의 전제는 협상 대상국의 경제가 미국식 경제체제로 '동화'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미FTA는 한국경제의 미국화를 시작으로 사회정책의 자율성은 물론 민주적 주권의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을 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한국사회를 미국식으로 개조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는 협정인 것이다.

이제 다시 복지국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한미FTA가 한국경제의 미국화를 의미한다면, 경제체제와 조응하는 한국의 복지체제는 어떤 모습을 띄게 되는 것일까? 복지체제와 경제체제가 조응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한미FTA체제하에서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복지국가는 잘 해봐야 미국식 잔여주의 복지국가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 같다. Gini계수로 본 미국의 불평등 지수(0.38)와 빈곤율(17.1%)은 멕시코와 터키를 제외하고 가장 높다. 이 뿐만 아니다. 십 만 명당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의 수는 OECD 평균 140명의 5.2배가 넘는 760명에 이르고, 돈이 없어 수 천 만 명의 시민들이 기본적 의료조차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식 복지국가의 현실이고, 한미FTA 이후 미래 한국 복지국가의 현실이 될 것이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소망하는 우리가 한미FTA를 반대하는 근본적 이유는 한미FTA가 한국경제의 미국화를 통해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에 미국식 잔여주의라는 족쇄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은 복지국가로 부르기도 민망한 미국식 복지도 한국의 현재 복지지출을 두 배 가까이 늘려야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09년 기준으로 미국의 복지지출은 GDP 대비 15.9%인데 반해 한국은 8.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금액으로 치면 대략 100조 원 정도를 늘려야 선진 OECD 국가들 중 가장 후진적인 미국 수준의 복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단순한 총량적 확대라면 한국이 한미FTA를 통해 미국식 경제체제에 수렴된다고 해도, 산술적으로는 복지와 관련된 공적지출은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고, 이는 외형적으로 한국 복지국가의 확대로 비추어 질 수 있다. (시장주의자들에게는 이마저도 아까운 일지만) 복지를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늘려도 한국이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장밋빛 환상일 수 있다. 사실 패권의 객체인 한국의 복지수준이 세계적 패권의 주체인 미국의 복지수준까지 확대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여하튼 바로 이 지점이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복지국가를 주장할 수 있는 강력한 논리적 근거가 된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주장하는 소위 맞춤형, 생활형 복지라는 것이 기실 따지고 보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변화 없이 소득하위계층에게 복지혜택을 집중하는 미국식 잔여주의 복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입장에서 한미FTA가 발효되고, 한국 경제가 미국화 된다고 해도 유신독재 하에서 아버지가 꿈꾸었다는 복지를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녀가 꿈꾸는(꿈꾸었던) 복지국가는 불평등과 빈곤이 만연한 미국식 잔여주의 복지국가이기 때문이고, 미국식 잔여주의 복지국가조차도 지금 한국사회가 도달하기에는 여전히 멀리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한미FTA를 지지하면서 복지국가를 이루겠다고 공언하는 것이 허언이 아닌 이유이다.

보편적 복지를 지지하는 우리가 한미FTA와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복지국가를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시민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보장받는 복지국가를 꿈꾸는 우리는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그녀의 부친이 꿈꾸었을 법한 빈곤, 불평등, 사회적 배제가 일상이 된 미국식 잔여주의 복지국가를 소망한 적이 없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맞춤형복지, 생활복지의 궁극이 불평등이 확대되고, 빈곤이 지속되는 반면 부자를 더욱 더 부자 되게 하는 미국식 복지국가라면 우리는 그런 복지국가에 일말의 미련도 없다. 반대한다. 아니 반대를 넘어 한국이 그런 복지국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울 것이다. 지난 세기 동안 복지국가의 역사가 한미FTA라는 위기에 직면한 한국사회에 주는 함의는 명백하다. 국제적 경쟁력을 갖는 가장 성공적인 복지국가는 시민들에게 보편적 사회안전망을 충실히 제공해주고, 노동과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자본을 협력의 탁자로 이끌어 낸 국가이다. 이것이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우리가 현재와 같은 한미FTA를 반대하며, 한미FTA하에서 이루어지는 박근혜식 복지국가를 반대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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