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일부터 11일까지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연합 등을 순방하고 돌아온 후 완연히 공세 모드로 돌아섰다. 국무위원뿐 아니라 차관과 외청장까지 참석시킨 14일 확대 국무회의가 그 신호탄이었다.
오는 22일 기자회견이 절정이 될 것으로 모인다. 청와대는 22일 기자회견의 핵심이 여야 정치권의 '포퓰리즘성 정책' 및 한미FTA 등에 대한 야권의 말 바꾸기에 대한 대응 등이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내곡동 사저 파동 이래 각종 추문에 대한 사과가 중심이 되지 않겠냐는 일반의 관측과는 정반대인 것. 그 이유가 뭘까?
▲ '반격'의 신호탄이 된 14일 국무회의에 앞서 티타임을 갖고 있는 李 대통령ⓒ청와대 |
해외 순방 기간 중 더 크게 불거진 김효재 전 정무수석의 거취를 귀국 직전 정리한 이 대통령은 14일 이례적 확대 국무회의를 열고 "시장경제 혹은 헌법가치에 위배되거나 지금 당장 필요할지 모르지만 앞으로 국익의 상당부분에 손실을 주고 미래세대에 큰 부담을 주는 결정들이 오늘 이 시점에서 이뤄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이 대통령은 "고위 공직자들이 중심을 잡고 일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김효재 전 수석의 후임자까지 발표했다. 다음 날에는 청와대로 한덕수 주미대사를 불러 무역협회장 자리를 맡겼다. 주변을 정리한 것이다.
15일부터는 과천이 움직였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날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박 장관은 "재정의 부담능력을 넘어서는 복지공약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성급한 FTA 폐기 주장은 우리 경제의 기존 성장전략을 부정하는 것이다. 대외신인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같은 날 대한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정당과 노동계가 연대 수준을 넘어 통합 수준에 가고 있다. 노동운동을 정치운동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에 합류한 한국노총을 겨냥한 발언이다. 이 장관은 한국노총이 지난 대선에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것이나, 새누리당 의원 중에 한국노총 간부들이 포진해 있는 것에 대해선 눈을 감았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가세했다. 김 장관은 17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고 군통수권자를 비방하는 내용의 앱은 군 정신 전력을 좀 먹는다"면서 북한 관련 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 비판 애플리케이션 삭제에 대해서도 힘을 실었다.
장관들의 입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는 하사관 급 이상 간부의 스마트폰에 대해 '앱 자진삭제를 유도'키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금주 이 대통령 기자회견을 전후 해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등 각 정당이 잇따라 내놓고 있는 복지공약의 소요 예산 규모를 추정한 '복지공약 대차대조표(가칭)'를 발표할 예정이다.
새누리당 공약에 대한 부분도 포함되겠지만, 많은 부분은 민주통합당 등에 대한 공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정당 공약에 대한 '검증'에 나서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정치적 공방이 한층 더 가열될 것은 불문가지다. 하지만 청와대는 오히려 공방전을 기대하는 듯한 분위기다.
'반격'의 다섯가지 배경은 이렇다
청와대가 정점에 서 있는 이 같은 범정부적 '반격'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먼저 정권 차원의 위기의식이 위험수위에 달했다. 22일 기자회견만 해도 회견의 초점이 사과에 맞춰질 경우 앞으로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청와대 내에서 팽배했다. 기자회견 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지난 15일 거의 모든 언론이 '사과'에 초점을 맞추자 청와대 관계자들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했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한 관계자는 "사과를 한다고 여론이 반전되겠나?"면서도 "정면돌파 이후에 그림이 명확히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나빠질 것도 없다"고 말했다. 잘 되면 좋겠지만, 여론의 호응이 없다고 해도 현 상황에서 더 악화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공방전 양상이 전개되도 청와대는 손해볼 것이 없다.
둘째 내곡동 파동 이후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관련 의혹, 이상득 의원 관련 의혹, 김효재 전 수석 파문 등 악재가 이어지고 있지만 다른 악재가 이전 악재를 덮고 또 다른 악재가 그 악재를 덮는 식의 이슈 전개도 이같은 기류에 한 몫하고 있다. 굵직굵직한 악재가 나와 봤자 '일부 언론'과 인터넷 공간이 시끌시끌해질 뿐 검찰로 넘어가면 '함흥차사'가 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청와대의 '내성'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셋째, 실제로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정치권이 주도하는 현 국면에 대해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특히 한미FTA, 제주 해군기지 등에 대해선 "노무현 정부가 다 시작한 것인데 좌파에 의해 휘둘리는 야당이 정략적 이유로 말바꾸기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 부분에 대해선 중간층의 여론도 불리하지 않다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다.
마지막으로 내홍 양상까지 벌이지고 있는 야권의 정권에 대한 화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 청와대 중심의 전열 정비에 여유를 주고 있다. 통합 이전 민주당에서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 등이 집중포화를 퍼부을 때 청와대는 제대로 된 방어조차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치적 사안에 대해선 잘 언급을 하지 않는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15일에는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를 겨냥해 "야당이 정치공세를 펴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 "더욱 분발해서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극복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인다. 우리 정부는 야당과 소모적인 정쟁을 할 여유가 없다"고 여유를 부렸을 정도다.
'보수 결집'효과 기대 …2008년 촛불 정국 이후와 흡사
청와대의 이같은 '반격'은 몇 가지 기대효과를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정장악력을 강화해 레임덕 현상을 최소화 한다는 것, 둘째 일방적으로 난타당하는 국면에서 벗어나 '공방전'을 전개하면 "그래도 이제 일 좀 한다"는 평가를 얻어 내 보수진영을 결집시킬 수 있다.
청와대가 야당 및 시민사회와 명확하게 전선을 그으면 새누리당도 '양자 택일'의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총선에서, 승리는 몰라도 선방을 이끌어 낼 여지를 마련한다는 기대다.
하지만 이같은 시나리오대로 정국이 흘러갈 지는 미지수다. 청와대가 전면에 나설수록 총선에서 정권심판 구도가 명확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반짝 효과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야권 심판' vs '새누리당을 포함한 정권 심판' 구도가 누구에게 유리할지는 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한 현재의 '반격 기류'는 지난 2008년 촛불집회 이후 범정부적 '보수화 기류'와 정확히 닮은 꼴이다. 그 보수화 기류를 통해, 민심은 이반해 지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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