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김종필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주겠다고 한다.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 향상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데, 5개 등급 중 가장 높은 게 무궁화장이다. 최고 수준의 훈장이다.
국무회의 의결 등 절차가 남았으니, 김종필에 대한 무궁화장 추서를 재고해 볼 시간도, 토론해 볼 시간도 아직 남아 있다. 그런 차원에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김종필이 받게 될 무궁화장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언론인 송건호, 종교인 김수환. 김종필에게 무궁화장이 추서되면 스스로 "유신의 본당"이라 칭한 그와 유신에 맞선 두 인물이 동일한 훈장을 받게 되는 셈이다. 김종필은 유신 공포 통치 시절인 1971년 5월부터 1975년 12월까지 국무총리를 지낸 '유신 총리'였다.
송건호는 1974년, 1975년에 박정희 정권의 압박과 공작으로 발생한 동아일보 무더기 해고 사태에 책임을 지고 편집국장 직을 던졌다. 그리고 언론 자유를 위해 헌신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113명(29명은 작고)은 25일 "김종필은 1974년 3월 동아일보사의 노동조합 결성을 방해한 자다. 그가 당시 국무회의에서 '동아일보 노조는 허가하지 말라'는 지시를 서울시장에게 내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며 "제2의 이완용인 김종필에게 훈장 추서는 불가하다"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제기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72년 박정희가 10월 유신으로 헌법을 파괴할 때 박정희를 비판하고 반독재 인사들을 감쌌던 인물이다.
첫번째 의문, 이들이 국가가 수여하는 '같은 훈장'을 공유할 수 있을까?
무궁화장을 받은 다른 전직 총리들은 어떨까. 청와대는 "관례에 따라 역대 국무총리를 지낸 분들은 훈장을 추서했다"고 설명했다. 이영덕·박태준·남덕우·강영훈 전 총리가 무궁화장을 받았다고 한다. 이영덕은 이명박 정권에서, 남덕우는 박근혜 정권에서 무궁화장이 추서됐고, 박태준은 박정희 정권, 강영훈은 노태우 정권에서 생전에 무궁화장을 받았다.
두번째 의문, 이 사례들을 굳이 '문재인 정부'와 결부시킬 필요가 있을까?
촛불 이전과 촛불 이후가 똑같다면,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촛불 정부가 유신 독재에 훈장을 수여하는 모순을 인정하고 가면, 역사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김종필은 5.16쿠데타를 주동했던 반란의 주역이었다. 헌법을 파괴하고, 유신을 보위했다. 김종필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죽임을 당한 이들 중에 아직 살아있는 이들도 많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을 뿐더러, 훈장까지 받을 수 있다는 논리가 2018년에도 유효하다면 촛불 정부가 이전 정부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박근혜, 이명박에게도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으로 훈장을 줘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법 하다. 가능하냐고? 과거 관례가 있다. 관례를 존중하면 불가능할 게 없다.
김종필의 공과 과 논란도 넌센스다. 일부 언론은 김종필의 생을 '87년 이전과 이후'로 나눠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김종필이 두 명이 아닌 바에야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3김 시대'의 정객 김종필, 유신 총리 김종필은 같은 김종필이다.
1987년 10월 박정희 시절 공화당과 유정회 멤버들을 그러모은 김종필은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고, 박정희의 유업 계승을 전면에 내세웠다. 박근혜가 당시 신민주공화당 참여를 거부하고 김종필 등의 행태에 대해 '유신과 5.16을 당당히 내세우지 않는다'고 비판했던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그가 '3김'으로 엮여 있긴 하지만, 김영삼, 김대중과 비교해 대한민국 민주화에 무슨 기여를 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김영삼, 김대중과 비교 대상이 될만한 인물인가. '3김'은 민주화 이후, 촛불 정부 이전의 정치 신화에 불과하다. 그는 민주화 시대의 조연이었고, 반성 없이 세류에 영합한 노회한 정치인일 뿐이었다. 이런 그를 두고 어떤 정치인, 어떤 언론인들은 '르네상스적 인간'이었다고 한다. 기가 찰 일이다.
그의 정치적 업적이 있다면 그것대로 기릴 일이다. 각자 집안에서 마음 속으로 기리면 될 일이다. 정치사는 그의 행적을 주요하게 평가하고 소개할 것이다. 거기까지다. 정치 호사가들이 만든 '김종필 신화'를 인정하고 국가가 그것을 공인해버린다면 신화는 사실이 된다. 소설가 장정일은 2013년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고 진보 정당 해산을 옹호한 김지하가 자신의 민주화 운동 과거를 미화해 '적폐 옹호' 재료로 녹여 넣는 모습에 분개하며 "사소한 거짓말을 방치하면 그게 모여서 신화가 된다"고 비판했다. 거짓과 진실은 쌍생아다. 진실이 거짓이 되기 쉽다면, 거짓도 진실이 되기 쉽다. 작은 거짓말과 몇개의 어록과 한량의 사생활이 만들어낸 신화가 김종필이다. 그 신화 속에 반란, 공작, 죽음은 없다.
김종필을 추억하는 이들은 90년대 3김 정치의 추억을 공유한 기억들이 있다. 현재 국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의 추억에 나라 전체가 끌려갈 필요는 없다. 왜 청년들이 김종필 훈장 추서에 분개하는지 김종필과 살을 맞대고 얼굴을 맞대고 정치해온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아직 이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지난 2016~2017년을 달궜던 촛불의 정신은 과거 관례를 깨고 적폐를 없애라는 명령이었다. 최소한의 정의를 구현해보자는 것이었다.
정치는 역사를 부인할 수 없다. 김종필의 굴욕적 한일협정으로 일본군 강제 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는 50년째 고통을 받고 있다. 1997년 당선인 시절 DJ가 전두환과 노태우 사면에 동의한 후 시민들은 20년째 두 학살자 '뒷처리'에 시달리고 있다. 훈장은 잘못된 신화를 공고하게 해준다. 미래 세대에 역사적 짐을 떠넘기는 일이다. 촛불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라야 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김종필 훈장 추서를 재검토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정치는 역사를 부인할 수 없다. 정치는 역사의 하위 파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