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동안 지방 군 휴양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의 일성(一聲)은 대기업에 대한 압박이었다. 이 대통령은 "경주 최 부자는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는 가훈을 지켜서 존경받지 않았냐"면서 재벌그룹들의 문어발식 사업다각화를 비판했다.
청와대 박정하 대변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25일 오전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전반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이 때 대기업들이 소상공인의 생업과 관련된 업종까지 사업영역을 넓히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근로시간 단축하면 선순환 구조 형성된다"
이 대통령은 "공직사회에 공직윤리가 있고 노동자에게 노동윤리가 있듯 기업도 기업윤리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최근 재벌 그룹 딸, 외손녀 등이 제과제빵 등 중소자영업자들의 영역에 무차별적으로 뛰어드는데 대한 비판으로 해석된다. 박 대변인은 '빵집 논란 등에 대한 이야기냐'는 질문에 "소상공인 영역이라고 했으니 유추해서 해석하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이날 이 대통령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문제 등 제도적, 정책적 대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박 대변인은 "오늘은 정책, 제도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정태근 의원 등은 이 문제에 대해 "재벌도, 정부도, 한나라당 의원들도 의지가 없다"고 강하게 질타한 바 있다.
어쨌든 재래시장 상인들이 "SSM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소연을 해도 "(규제를 해도 기업들이)헌법소원 내면 정부가 진다"고 응수하던 때와 비교하면 이 대통령의 '마인드'가 바뀐 것으로 해석된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재벌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시너지 효과를 낳을 수 있을지 관심사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기업이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바뀌지 않는다.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편 이날 이 대통령은 대기업의 근로시간 단축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이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는 좋은 일자리 만들기는 적극 검토해 추진하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삶의 질도 향상되고 일자리도 늘고 소비도 촉진되는 등 사회적 선순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당 40시간 법정근로시간에 연장근로 한도를 주 12시간으로 제한해 주당 근로시간이 최고 52시간을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선 토·일요일의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법정 근로시간을 자의적으로 늘리는 관행이 이어져왔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연간 근무시간은 219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길다.
임기 마지막 해인 청와대의 이같은 방침에 재벌 그룹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재벌들이 미온적으로 나올 경우 정부의 다음 수는 무엇인지 지켜볼 일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