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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대통령님 의중 반영..."

법원행정처 'VIP 보고서'서 드러난 사법 농단 민낯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 시 박근혜 대통령 입맛에 맞는 판사로 '코드 인사'를 하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법부가 '독립기관'이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5일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 시절 법원과 청와대 사이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 추가로 공개한 문건 중 'VIP 보고서'에는 '사법 농단'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법원행정처는 이 문건에서 먼저 "상고심 사건 폭증으로 물리적 한계에 봉착했다"며 상고법원 설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대통령님 意中(의중)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라고 썼다.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설치에 대한 보답으로, 대통령 입맛에 맞는 판사를 임명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공약인 셈이다. 법원행정처는 이를 위해 '추천위원회를 자문기구가 아닌 심의 기구화'하고, '추천위원회 추천 의결의 기속력을 인정'하겠다는 세부 공약까지 밝혔다.

▲'VIP 보고서'.

상고심 사건 적체 문제 해결 방안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대법원 증원론'에 대해선 '진보 인사의 최고법원 진출'을 우려점으로 꼽았다.

"민변 등 진보 세력 배후에서 대법관 증원론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며 "상고법원 도입이 좌초되면, 대법원 증원론을 대안으로 내세우며 최고법원의 입성을 시도할 것"이라며 경고했다.

▲'VIP 보고서'.

이 문건 뒷부분에는 '창조 경제' 구현을 위한 '사법한류' 사업 추진 계획도 나온다. 개도국에 한국의 사법제도와 시스템을 이식하자는 내용으로, "창조경제 구현에 기여하는 전국가적 혁신 아젠다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청와대 비위를 맞추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이 주창했던 창조 경제 개념을 끌어다 쓴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BH', 즉 청와대 역할도 강조한다. BH 주도 아래 사법부, 법무부, 법제처, 외교부 등 유관기업이 공동 추진체를 구성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를 통해 경제 영토가 확장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의 강력한 추진 동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청와대 비위 맞춘 대법원장, 왜 이렇게까지?

'VIP 보고서'를 보면 양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에 설득을 넘어 비위를 맞추고자 애를 썼음을 알 수 있다.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최고수장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VIP 보고서', 앞서 공개된 '상고법원 관련 BH(청와대) 대응전략' 등 문건에서 일관되게 상고법원 설치를 주장했다. 상고법원 설치 이유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상고 사건 적체 해소'를 들었다. 그러나 '흑심'이 있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대법원장은 상고법관직 인사를 통해 권력을 극대화하고, 법원행정처는 이러한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을 처리함으로써 승진을 기대할 수 있다. 또 상고법원이 민사 등 일반 상고 사건들을 전담하게 되면 대법원으로선 상대적으로 위상이 강화된다. 사법 농단은 이러한 조직적‧개인적 동기가 합쳐져 만들어진 참극인 셈이다.(☞관련기사 : '승진'이 놓이자 저울이 기울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대법원장의 인사권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2015년 발표한 '상고법원 반대 및 대법관 증원 10문 10답'에 따르면 대법원 업무 부담 경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소 50명에서 최대 100명의 상고법원 판사가 필요하다.

법조계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추진 초기 100명에 육박하는 상고법관 임면권자 가운데서 대통령을 배제하는 안을 염두에 뒀다. 대법관은 현행 헌법에 의해 전원이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반면 상고법관은 대법관이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 임명까지는 불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이 구상대로라면, 법원의 우두머리인 대법원장에게로 권력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이를 마뜩잖게 여겼다. 청와대는 상고법원을 대법원도 고등법원도 아닌 위헌 소지가 있는 '돌연변이'로 인식하고, 법원이 공룡화되는 것을 우려했다. 이는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 일지'에도 적혀 있는 내용이다.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룡화.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다 찾아서 길을 들이도록(상고법원, or) 다 찾아서." (2014년 9월 6일)


"대법원X, 고법X 돌연변이, 대법원 재판 받고 싶은 희망 ⇒ 위헌소지, 대법원 궁여지책, 간단한 문제 아님." (2014년 9월 22일)

여러 설득 작업에도 청와대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초조해진 양 전 대법원장이 결국 대통령 면담을 사흘 앞두고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대통령님 意中(의중)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제안하며 꼬리를 내렸다. 자신의 최대 목적이었던 인사권 독점에 대한 욕심을 일정 부분 내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독대 이후에도 상고법원 설치에 진전이 없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압박 카드를 꺼내기에 이르렀다. 청와대 독대 3개월 후인 2015년 11월 19일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에 이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청와대와 사전 교감을 통해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지만, 청와대가 협조하지 않기 때문에 "청와대 국정운영 기조를 고려하지 않는 독립적·독자적 사법권 행사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 전 대법원장의 '밀고 당기기' 전략은 통하지 않았다. 임기 내 상고법원 입법 꿈은 좌절됐다.

거래는 무산됐지만 거래의 흔적은 남았다. 그의 사리사욕은 뒤늦게나마 만천하에 드러났다. 재판도, 인사도 흥정거리로 삼았던 전직 대법원장의 추한 뒷모습을 국민 모두는 씁쓸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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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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