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전국 2인 이상 가구)이 5.95배로 2003년 통계 집계 이래 최악이다. 소득 하위 20% 가계와 상위 20% 가계의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졌다는 뜻이다.
'소득 주도 성장'을 내세운 현 정부로선 뼈아픈 일이다. 언론의 질타가 이어졌고, 결국 긴급경제장관회의가 열렸다. 하위 20% 가계 소득 향상을 위한 정책이 나오고 있다.
예고되지 않은 전환
예고되지 않았던 전환이다. 통계청은 당초 분기별 가계 소득을 더 이상 집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지난해 4분기를 끝으로 사라질 예정이던, 분기별 가계 소득 집계 발표가 갑작스레 연장됐다. 학계 및 정부기관의 필요에 따라 지속하기로 했단다.
실제로는 지난해 4분기 가계 소득 발표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당시 가계 소득이 증가세로 돌아서자, 경제 부처가 분기별 가계 소득 발표를 이어가길 원했다는 것.
이렇게 연장된 분기별 가계 소득 발표가 경제 부처를 질타하는 근거가 됐다. 가계 소득 총량은 늘었지만, 양극화는 최악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 가계 명목 소득은 월 128만6700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 줄었다. 이들이 한 달에 쓰는 돈은 132만7000원이다. 번 돈보다 더 많이 쓴다. 가계 부채는 그래서 계속 늘어난다.
중산층 관료의 체감과 다른 현실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 관료들이 느끼는 현실은 실제와 다르다. 만약 통계청의 이번 발표가 없었다면, 가계 소득 양극화 현실은 알려지지 않았을 게다. 경제 관료들은 '소득 주도 성장'이 순항한다고 했을 테다. 의심하는 목소리는 '문재인 정부 발목잡기' 시도쯤으로 여겨졌을 게다.
꼭 관료만 현실에 둔한가? 아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 자료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근로소득 중위 값은 월 202만 원이다. 노동자 절반은 한 달 동안 일해서 번 돈이 202만 원에 못 미친다는 뜻이다.
이런 수치를 이야기하면, 놀라는 이들이 많다. 대기업 초임에도 못 미치는 소득이다. 유력 언론사 기자 급여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202만 원은 소득의 하한선이다. 일터로 출근해서 받은 첫 월급이 그보다 많았으니까. 따라서 그들은 202만 원 이하 소득으로 한 달 생활을 꾸려가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관료들의 인간관계 역시 그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의 세계에서 202만 원 이하 소득 노동자는 그저 숫자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까 2인 이상 가정이 한 달에 128만6700원을 벌어서 132만7000원을 쓰는 삶은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통계가 의심받으면, 정책도 흔들린다
둘째, 통계의 중요성이다.
통계청의 이번 발표에 대해 신뢰성을 따지는 목소리가 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통계청이 분기별 가계 소득 발표를 중단하려 했었다. 그걸 뒤집은 게 경제 부처였다. 이번 발표의 신뢰성을 따지는 목소리가 경제 부처 주변에서 나온다면, 우스운 일이다.
신뢰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하위 20% 가계 소득이 줄어든다는 점에 대해선 반론이 없다. 그러나 통계 신뢰성 문제가 계속 부각되면, 긴급경제장관 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정책 전환의 근거도 의심받는다.
통계를 뜻하는 영어 단어 'Statistics'의 어원은 국가(State)와 통한다. 국가의 탄생 및 운영은 통계와 뗄 수 없는 관계다. 영토 안에서 군인과 일꾼으로 동원할 수 있는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하면서 국가가 생겨났다.
진시황의 통일대전 역시 통계로 시작했다. 병서 <울료자>로 알려진 울료의 건의를 받아들여, 영토 내 '모든 남자의 나이'를 호적에 기록하도록 지시했다. 그 뒤, 동아시아 역사는 통계 오류가 잦은 시기가 '난세', 통계가 정확한 시기가 '치세'로 기록된다.
현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를 약속했다. 그 첫 걸음은 정확한 통계 작성이다.
통계 속 숫자로만 드러나는 그들
누구나 자기 세계는 좁기 마련이다. 어떤 지식인의 머릿속엔 수학이나 과학, 공학의 가치가 아예 담겨 있지 않다. 물론 그 반대도 흔하다.
평생 중산층이었던 누군가는 대학에 안 가는 선택을 상상하지 못한다. 진학 대신 취업을 택하는 게 당연한 청소년들이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 비친 청년은 오직 대학생뿐이다. 처음 만난 이에게 학번과 전공을 묻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진정성 가득한 언어로 공감을 자아내는 이들이 넘쳐나지만, 그게 소외된 이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지는 의심스럽다. 다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전하고 싶은 것만 전한다. 여론 주도 계층의 공감 범위 밖 진실을 담은 언어가 과연 울림을 낳을 수 있을까?
세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어차피 소수다. 나머지 다수는 통계 수치로만 드러난다.
통계를 외면하는 건, 자기 언어가 없는 다수를 지우는 일이다. 통계가 부정확하다는 건, 목소리 없는 다수의 뜻이 뒤틀려 있다는 말이다.
보기 싫은 것도 보게 하는 게 거울이다. 통계가 거울이다. 거울이 깨끗해야 하듯, 통계는 정확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양극화 해소, '통계 적폐'도 청산부터
그리고 이 대목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가 통계청에 노골적인 외압을 넣어서 문제가 됐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획재정부가 통계청에 은근한 압력을 넣는 건 공공연하다. 부처마다 통계 작성 기준이 다르거나, 정책 주무 부처와 통계청의 기준이 다른 일도 흔하다. 같은 신문이 같은 주제를 다룬 기사들을 냈는데, 제 각각 다른 통계가 인용된 경우를 보는 건 그래서다.
그리고 현 정부에선 당초 집계하지 않겠다던 분기별 가계 소득이 발표하는 쪽으로 뒤집어졌다. 그래서 소득 양극화의 현실이 조명된 건 반갑지만, 과정은 석연치 않다.
통계 작성 및 발표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난 30일에는 한국은행의 수출 통계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날 MBC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이후 8년 동안의 수출 액수가 크게 부풀려졌다. 심지어 GDP 통계와도 어긋난다. 거시 경제 운용이 잘못된 내비게이션에 따라 이뤄졌던 셈이다.
이쯤 되면, '통계 적폐'라고 할 만하다. 적폐 청산, '통계 적폐'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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