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이토록 절실하게 갈증과 허기 느껴본 적 없다"

[현장] 출마 기자회견…친노인사 등 100여명 참석해 성황

민주통합당의 가장 유력한 당 대표 주자인 한명숙 전 총리가 19일 출마 선언을 하고 본격적인 당권 레이스에 들어갔다. 한명숙 전 총리는 "탐욕과 야만과 광기의 권력이 나를 이 자리에 세웠다"고 당권 도전의 이유를 밝혔다.

한 전 총리는 "이 참혹한 세월을 끝내고 싶었다"며 "그래서 이기고 싶다. 꿈 속에서도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태어나서 이토록 간절하게 열망해 본 적이 없다. 이토록 절실하게 갈증과 허기를 느껴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명숙이 마지막을 바쳐 얻고 싶은 것은 '자리'가 아니라 승리"

▲ 전당대회 출마 선언을 하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 ⓒ연합

한명숙 전 총리는 이날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에서 "비장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 전 총리는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라며 "오늘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민심을 담을 '큰 그릇'을 만들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으며 그래서 나섰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나는 정치의 기본을 김대중 대통령에게서, 정치활동의 원칙을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배웠다"며 "두 분 대통령이 떠난 빈자리, 제가 그 자리에 서겠다"고 주장했다.

한 전 총리는 또 "지금 정치권에 쏟아지는 비판에서 저 또한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부끄러움의 힘으로 다시 시작하려 한다"며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는 "정의는 승리할 것이고 희망은 배반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은 하나로 세상과 맞섰던 그때, 첫 마음으로 돌아가겠다"며 "이제 그 첫 마음으로 제 정치인생의 마지막 길을 떠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이어 "정권교체는 한명숙의 마지막 소임"이라며 "내 남은 생의 모두를 걸겠다"고 주장했다. 한 전 총리는 "이 정권을 끝내고 2기 민주정부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 외에는 어떤 욕심도 없다"며 "한명숙이 마지막을 바쳐 얻고 싶은 것은 '자리'가 아니라 승리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이익도 정권교체와 민주진보정부의 수립보다 앞설 수는 없다"며 "반드시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는 일대일 구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신발이 닳도록 뛰겠다. 만나고 설득하고 매달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악몽의 이명박 정권이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것은 상상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최대 세력 친노 등에 업었지만 선거운동은 철저한 '시민 서포터즈' 방식으로

가장 유력한 당 대표 후보답게 한 전 총리의 출마 기자회견에는 전현직 의원들이 다수 참석해 자리를 지켰다. 정세균, 조배숙 전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용섭 전 대변인, 이미경 전 사무총장 외에도 김상희, 김재윤, 장병완, 추미애 의원이 자리를 지켰다. 그 밖에도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정청래 전 의원 등 친노 인사들 100여 명이 한 전 총리의 기자회견장을 찾았다.

한 전 총리는 시민통합당과 민주당의 통합으로 당내 최대 세력이 된 '친노(親盧)' 그룹의 지지를 받고 있다. 유력한 경쟁자였던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통합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다 '반통합 세력'으로 몰려 상처를 입은 것을 감안하면 한 전 총리가 민주통합당의 새로운 당 대표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평가다.

그러나 한명숙 캠프는 기존 조직이 아닌 '시민들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한 전 총리는 이날도 "국민의 삶에 뿌리내리고 현장과 생활로 뛰어드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고 캠프도 이에 맞춰 '박원순식 선거운동'을 벌이겠다는 계획이다. 70%에 달하는 시민참여경선에서 격차를 최대한 벌리겠다는 구상인 것.

선거실무팀도 철저히 자원봉사자로만 구성한다. 신계륜 전 의원이 '서포터즈'의 단장을 맡았고 기존 선대위 조직 없이 모두가 '서포터즈'라는 이름으로 선거운동을 벌인다. 그 밖에도 소설가 이외수, 시인 도종환, 화가 임옥상, 영화감독 여균동, 사회운동가 임수경 씨 등이 참여하는 멘토단을 구성했다. 박영선 전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맞서 허술한 조직력으로도 승리를 잡아냈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야권경선 전략과 동일하다.

한 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국립 현충원을 찾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고 20일에는 경남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할 예정이다.

한편,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검찰은 지난 16일 다시 한 전 총리에게 징역 5년과 추징금 5만 달러(5800만 원 상당)를 구형했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다. 관련 1심 재판에서 한 전 총리는 무죄 선고를 받았었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성기문)의 선고공판은 민주당의 전당대회 직전인 내년 1월 13일 열린다.

다음은 한 총리의 기자회견 이후 이어진 일문일답이다.

-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인데 재판 결과가 당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하나?

= (검찰의 기소가) 부당하고 무리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고 국민으로부터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외의 다른 것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비대위 체제로 가면서 쇄신을 얘기하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 박근혜 대표는 대권주자다. 저는 한나라당이 큰 혁신을 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러나 대권주자가 비대위 위원장이 되어 혁신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권력 강화를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그런 점에서 한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저는 모든 것을 비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혁신은 진심으로 민심을 보고 국민의 요구에 따라 할 것이다.

- 통합 과정에서 기존 민주당 내에 일부 반대 세력이 많았다. 상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통합 과정에서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당 통합만큼 복잡하고 힘든 과정은 없다고 본다. 우리가 더 큰 민주당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산통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명숙이라는 사람은 사실 여태까지 화합과 통합, 여러 갈등이 있을 때 상처를 보듬고 화해하고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가장 잘 해 온 사람이라 평가받고 있다. 저 자신이 앞장서 우리가 하나되도록, 다 같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