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료가 다섯 살짜리 딸에게 이 질문을 받고 매우 당황스러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딸이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같은 반 남자아이와 논쟁이 붙었고, 하느님이 여성일 수도 있다, 내지는 남성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딸은 바보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세계 3대 종교의 신(구세주, 선각자)은 '남자'다. 남성이 세계를 지배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장한 우리들에게 '신은 남성인가, 여성인가'라는 질문은 어리석은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인류 최초의 신은 여자였다. 남성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경전에 맹목이 돼 버린 사람이 아니라면 세계 곳곳의 선사시대 유적들, 오래된 창조 여신 신화들이 말해주는 진실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스의 가이아나 바빌론의 티아마트, 중국의 여와와 한국의 마고 같이 세상과 인간을 만들어 낸 태초의 어머니들은 신화로 남아 있는 여신숭배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은 저자가 그리스 크레타 여신 순례 뿐 아니라 한국의 제주 할망(할머니 여신들), 지리산의 성모천왕, 마고할미 등 국내외 여신들의 흔적을 찾는 여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특히 오랫동안 여신 신앙이 유지된 신라에 주목한다.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등 3명의 여왕이 가능했던 이유도 이런 여신 숭배 문화 때문이다.
저자는 선덕여왕 시절에 만들어진 첨성대가 여신상이자 신전이라고 주장한다. 첨성대의 몸체는 여신의 몸통이며, 가운데 네모난 창구는 자궁을 상징하는 형상이다. 첨성대가 우물이라는 것 역시 여신 숭배와 연관된다. 저자는 우물이나 샘, 연못은 세계적으로 여신의 성소였고, 임신.출산과 긴밀히 연관된 장소라고 지적한다. 또 첨성대가 '별을 관측하는 대'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신전의 기능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저자는 "신라에서 우물과 천문은 농사의 풍흉 예측이나 풍작 기원, 더 나아가 왕권이나 국가의 길흉과 관련된 신탁의 기능을 공유했다"면서 "첨성대는 위대한 우주적 어머니의 표상"이라고 주장했다.
또 영화 <아바타>에서 여신 에이와를 숭배하는 나비족의 모습, 소설 <다빈치코드>에서 성배를 소재로 전편에서 변주되는 여신 숭배의 전통 등도 대중문화를 통해 우리가 접한 여신 신화로 꼽았다.
저자가 책을 통해 수많은 증거와 일화 등을 통해 들려주는 여신학은 불교나 기독교 같은 세계 종교들이 생기기 이전의 인류의 삶과 철학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를 통해 저자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여신의 모습은 남성 유일신의 대척점에 서 있지 않다.
"여신은 '치마 입은 남신'이 아니다. 기독교 하나님 같은 남성 유일신의 성만 바꾼 신이 아닌 것이다. 모든 사람은 여성의 몸에서 탄생한다. 이 엄연한 사실에 여신의 뿌리가 있다. 여신은 모든 이분법적 구분을 뛰어넘어 전체를 감싸며, 뭇 생명과 존재들의 상호연결성과 상호의존성을 드러낸다. 남성 또한 여신의 일부다. 아들도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 그녀의 젖을 먹고 자란다. 그들의 심리를 형성하는 원초적 토대도 어머니다. 여신은 여성과 남성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다양한 성들도 낳고 품는 통합적 모성이다. 여성성이다."
가부장제의 출현으로 제거된 여신 숭배 문화와 가모장제에 대한 천착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타인과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 뿐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가졌던 인간의 지혜와 평등한 관계, 평화로운 사회의 복원이다.
"그동안 세상은 지금까지 여성/음/자연/몸/어둠/헌신/사적 영역을 한편으로 묶고 남성/양/문명/영혼/빛/성취/공적 영역을 다른 편으로 묶어 대립쌍을 만든 후 후자가 전자를 지배하고 착취해왔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들-여성차별, 환경파괴, 가공할 군비경쟁, 취약하고 불안한 가정 등-은 그 불균형과 부조화의 결과일 것이다.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고 일상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파괴되는 자연의 신성을 회복하기 위해,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롭고 공평한 세상을 위해 우리는 고대의 여신을 다시 살려낼 필요가 있다. 건강한 영성은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의 토대이자 가장 위대한 인간의 잠재력이다. 진정한 사회 변혁의 기본적인 동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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