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법정에 나왔다. 무슨 '운명의 장난'이니 하는 것들은 공교로운 일을 표현하는 다른 수사일 뿐일 텐데, 그런 공교로운 장면들이 꽤 많이 포착된 하루였다.
특히 눈에 띠는 장면이 있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앉은 피고인석 자리 뒤에는 낯익은 인물이 앉아 있다. 대검찰청 중수부장,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16대, 17대, 18대 국회 3선 의원을 지낸 최병국 변호사다.
1981년 9월 7일 부산지검 공안부 최병국 검사는 부산 지역에서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교사·회사원 등 8명을 구속한다. 영화 <변호인>으로 유명한 부림사건이다. 이 사건의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최병국 검사 측은 이들에게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를 적용, 징역 3~10년을 구형했다. 고문이 있었지만 시대는 그러했다. 이 사건은 노 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였다.
당시 변호를 맡았던 노 전 대통령이 옳았음은 법원이 인정했다. 2014년 대법원은 부림사건 연루 피해자들에게 전원 무죄를 확정했다.
최병국 변호사와 노 전 대통령의 인연은 꽤 얄궂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9년 5월 23일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인과관계를 따지긴 매우 어려우나, 사람들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원인이 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정치라는 게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 설명될 수 없는 일에 원인을 찾아내려 한다. 그리고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심정적으로 자신이 연결한 두 사건의 연관성을 만들어낸다. 이런 심경이 모여 투표를 이루고, 그 투표가 정권을 바꾸기도 한다.
최병국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서거 한달 반 쯤 지난 후인 2009년 7월 3일 울산시당 국정보고대회에서 이런 말을 한다.
"(한미 쇠고기협정 반대) 촛불 시위로 재미 본 민주당이 10년간 못질한 것을 뽑으려 하는데 못 뽑게 한다...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은 후 퇴진하라는 소리까지 나오는데 노 대통령이 죽었는데 왜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하나"(<오마이뉴스> 7월 3일자 "최병국 '노 대통령 죽었는데 왜 이 대통령이 사과하나'")
꽤 질긴 인연이다. 최 의원은 당시 '친이계'로 맹활약했다. 이 전 대통령도 그를 아주 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친이계라는 건 지금은 소멸한 계파다. 노무현 정부에서 야당 의원을 지냈던 최 의원의 '말폭탄'도 언급하지 않으면 섭하다. "노무현 대통령 개혁작업 트로츠키 혁명론과 같다"며 색깔론을 펴기도 했고, "일제시대였으면 (노무현 정권은) 내선일체나 주장하고, 정신대에 사람들을 끌어모아 위안부나 만드는 데 앞장설 사람"들이라며 말본새를 자랑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 일정이 하필 5월 23일인 것은 우연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것에서 의미를 찾아 읽어내려 한다.
그리고 10억 원대 뇌물수수와 350억 원대 횡령 범죄 혐의로 재판정에 선 이 전 대통령의 변호사가 하필 노무현 변호사와 맞섰던 고문 조작 사건의 공안 검사 출신이라는 것. 이 전 대통령 주변에 있는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들의 수준이다.
공개된 법정의 풍경은, 정말 '이명박스러운 풍경'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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