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하여 남편과 세 아이와 함께 가족농의 삶을 꾸리느라, 오로지 흙과 작물에만 관심과 열정을 쏟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는 귀농 첫해부터 유기농으로 곡식과 채소를 길러 지인들 네 가구로부터 시작하여 40여 가구에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꾸러미 농사를 지었다.
비닐하우스 농사도 하지 않고, 오로지 노지에서 그것도 100% 임대농이면서 가족농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땅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고의 세월이었으니. 귀농한 지 6년쯤 지났을 때 '귀농 7년 차에는 안식년을 가져보리라'던 당당한 포부도 떠올랐지만, 우리 부부는 '쉼'보다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몇 가지 주제로 공부하는 책모임을 하는 것으로 농한기를 보냈다.
이 책은 소박한 삶과 고매한 사상이라는 이상을 지지했던 간디의 마을공동체살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지침서처럼 다가왔다. 물론 다음과 같은 마을에 대한 간디의 이상적인 꿈을 들춰보는 것도 설레는 일이었다. 거기에는 수직적 구분은 없고, 모든 일은 같은 지위를 갖고, 같은 임금을 받는다. 모든 사람이 충분한 여가와 기회와 교육과 문화를 위한 편의를 누리며 일한다. 각자가 자신의 가까운 환경에 책임지고 모두가 사회 전체에 책임을 진다. 빈민도 거지도 없고,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없다.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기쁘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생계를 위해 일하는 곳이 간디가 꿈꾸는 '스와라지'의 세계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가 바로 간디가 일구고자 했던 마을이었다. 마을에서 생산과 소비가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교육과 문화를 나누며 적절한 노동과 위생적이고 안전한 생활환경을 만들어간다. 간디는 미래 세계의 희망은, 아무런 강제와 무력이 없고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고 말했다.
귀농하여 살아본 농촌은 간디가 꿈꾸는 마을의 모습을 적어도 도시보다는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물론 노인들이 대다수고 더 이상 농민이기를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농촌 마을은 규모가 작고 서로 소통이 가능하며 문화적으로 커다란 이질감이 없이 협력하는 상호의존적인 삶의 형태가 아직은 더 많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동을 통해 삶을 살아가고자, 농민이 되어가던 우리 부부는 이 책을 통해 마을과 함께 마을 안에서 우리의 꿈을 실현해보고자 하였다. 마을에서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행복하게 만날 수 있기를 꿈꾸었다. 개인적으로 하던 꾸러미 농사를 이웃 농부들과 함께하였다. 생산자가 여럿이 되고 소비자도 따라서 여럿이 되었다. 조합에서 농민은 건강하고 싱싱한 유기농 채소와 곡식을 길러내고 소비자는 적절한 비용을 지급하고 꾸준히 생산자의 생산물을 소비한다. 그들은 서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를 돕기 위해 마음과 시간을 내었다. 조합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의 건강 먹을거리를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손수 가공하여 회원들에게 공급하였다. 마을에서 나이 든 어르신들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작지만 지속가능한 일터가 생겨났다. 지금은 아주 작은 씨앗과도 같은 이런 움직임이 조화롭고 평화로운 마을을 이루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것을 기대하면서….
농사꾼이 되는 것도 마을사람이 되는 것도 사실은 무척 낯설고 벅찬 일임을 12년이 지난 지금도 새삼스레 되뇌곤 한다. 귀농 전 니어링 부부의 삶을 접하고 우리도 저리 살아보겠노라 결심하고 결행한 30대의 모험정신으로 이제 50대에도 마을에서 간디 어르신이 꿈꾸고 살아내 보인 것처럼 소박하고 완전한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 가보리라. 모두가 몸으로 일하고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며 착취가 없는 농촌경제를 일구어 자급자족하며 협동과 비폭력이 삶의 방식이 되는 그런 마을이라면, 노후를 위해 지금을 허비하며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니까. 조금씩 천천히 일하며 모두가 연결되었음을 느끼며 소박하고 정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마을, 농업이 기초가 되며 적절한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지는 마을, 이익이 다시 마을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 쓰이는 마을을 지금 실험하는 작고 아름다운 조합을 통해 이루어 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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