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쪽박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밑 빠진 독은 한나라당과 박근혜 의원이다.
돌아가는 꼴이 그렇다.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를 규탄하는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쐈다. 영하의 엄동설한에 덜덜 떠는 시민들을 향해 물세례를 퍼부었다. 날치기에 비통해 하는 농민들을 향해 이명박 대통령이 염장을 질렀다. 60세 이상의 고령층에 1ha 미만의 경작지를 가진 영세농에게 "농업도 수출산업"이라고 해서 화를 돋구었다.
반응이 좋을 리 없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가인권위조차 물대포 사용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농민들은 나락에 이명박 대통령 사진을 올려놓고 불을 질렀다.
▲2008년 촛불시위 때 경찰이 물대포를 쏘는 장면 ⓒ프레시안(자료사진) |
고스란히 전이되게 돼 있다. 내년 총선에서, 그리고 대선에서 이런 민심이 표심으로 연결되게 돼 있다. 한나라당과 박근혜 의원에겐 악몽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미 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은 50대 이상은 한미FTA 찬성 의견이 많았던 반면 20대부터 40대까지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는 게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확인된 바 있다. 비준안 날치기 이후에도 이런 여론 흐름은 그대로 이어졌다.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비준안 날치기에 대해 50대 이상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던 반면 20대부터 40대까지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이런 민심이 내년 총선으로 이어지면 한나라당은 필패다. 이미 2010년 지방선거와 지난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확인된 바 있다. 20대부터 40대까지를 잡지 못하면 한나라당은 도저히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재삼재사 확인된 바 있다.
대선을 노리는 박근혜 의원에게도 화가 미친다. 어차피 한 표라도 더 얻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게임에서 뺄셈요인이 발생했다는 건 악재다. 다른 곳도 아니고 경북지역의 농민이 제일 먼저 들고 일어난 걸 보면 더더욱 악재다. 박근혜 의원에 대한 경북 민심을 고려할 때 큰 뺄셈요인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이 나올 법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내년 대선을 박빙의 승부로 예상하면 그렇지가 않다. 한 표라도 더 건져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 표라도 더 빠져나가는 건 악재 중의 악재다. 게다가 박근혜 의원은 선도적으로 비준안에 찬성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그래봤자 집토끼 싸움이라고, 크게 봐선 여야 고정 지지층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제한전이라고, 정작 중요한 건 중도·무당파층이라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한나라당과 박근혜 의원이 산토끼에 기댈 여지는 적다.
이명박 정권은 악순환의 무한궤도에 이미 진입해 버렸다. 비준안 날치기 후폭풍을 조기에 소멸시키려면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 물대포만 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최루액을 섞어서라도 시위 군중을 해산시켜야 한다. 한데 문제가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정권의 폭력성과 일방성이 부각된다. 중도·무당파층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렇다고 온건하게 대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규탄 시위를 장기화 해버린다. 내년 총선 선거운동과 규탄 시위를 접목시켜버린다.
행여 기대할지 모른다. 돈으로 콘크리트를 치면 성난 민심이 분출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기대할지 모른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산으로 예상 손실을 보전해주고, 다리 놔 준다고 나설지 모른다.
총선을 앞두고 염불보다 잿밥에 더 신경 쓰는 민주당의 적극 협력 덕에 일부 성공할지 모르는 전략이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다. 어차피 예산은 한정돼 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어봤자 구멍은 나게 돼 있다. 이 또한 깨진 쪽박으로 물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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