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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도 '날치기 한표'…MB 귀국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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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도 '날치기 한표'…MB 귀국 선물?

1시간 28분 막전막후…박희태 "합의처리 못해 죄송"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까지 무려 5년 9개월을 끌었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이 막상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진행돼 한나라당의 날치기 시도에 야당이 미처 손쓸 수도 없었다. 22일 오후 4시28분께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되자 "눈 뜨고 당한 것 같다"고 민주당 관계자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날 한나라당의 날치기 작전은 '1시간 28분'만에 끝났다. 오후 3시, 한시간 전부터 국회 본관 246호에 모여 정책의원총회를 하던 한나라당 의원 140여 명은 갑자기 본회의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전날 밤 야당과 한미 FTA 처리와 관련한 물밑 협상이 결렬되자 홍준표 대표, 황우여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22일 한나라당 단독으로 강행처리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같은 계획은 이날 의원총회 전까지 지도부를 제외한 의원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행여 여당이나 언론에 새어나갈 것을 우려해서였다.

홍 대표는 이날 의총이 시작되자 "저녁 약속 다 파기하라, 끝날 때까지 나가지 말라"고 명령했다. 홍 대표는 이날 비준안 처리를 위한 정족수인 146명(재적의원의 과반)에 모자라는 의원들이 모이자 "중요한 의총에 나오지 않는다면 뭐하러 한나라당 의원에 출마를 하나"며 "끝나고 나면 방송에 나가서 얘기나 하는 그런 식의 한나라당 의원이 무슨 의미가 있나. 오늘 안 오신 분들 다시 체크해달라"고 조급증을 드러내기도 했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영문 모르고 홍 대표에게 질타를 당했던 의원들은 의총 도중 본회의장으로 '돌격 명령'을 들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밤새 한잠도 못 잤다. 오늘 아침에도 민주당 원내대표와 회동했지만 민주당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의 품위를 유지해주기 바란다. 한미FTA 비준안을 오늘 통과시키자"고 의원들의 이동을 지시했다.

보좌관 등 다수의 목격자들은 본회의장으로 이동하는 한나라당 의원들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전했다.

물론 한나라당 지도부의 본회의장 기습 점거 계획은 사전에 박희태 국회의장과 논의한 것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낮 12시에 박 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했고, 박 의장은 오후 3시 직전에 의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3시 본회의 소집'을 알렸다. 이어 3시 5분 본회의장에 경호권을 발동했다. 한나라당 의원 130여 명이 본회의장에 입성한 직후 내려진 경호권으로 본회의장 출입구 뿐 아니라 국회 본청 출입문이 모두 봉쇄됐다. 심지어 본회의장의 기자 출입문마저 봉쇄됐다.

▲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 ⓒ뉴시스

이날 의총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박근혜 의원도 3시 7분께 본회의장에 나타났다. 다른 사안과 달리 한미 FTA에 대해 박 의원은 일찍이 "이번 회기 내 처리돼야 한다"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전날에도 박 의원은 대학생들과 간담회가 끝난 뒤 '몸싸움이 벌어져도 표결에 참여할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도부에 일임하겠다고 했으면 일임해 따르는 게 맞다"며 강행처리에 힘을 실었다. 박 의원은 이날 본회의장에 입장하면서도 "오늘 FTA 비준안을 표결처리하면 참여하실 거냐"고 묻자 "네"라고 답했다.

오후 3시 20분께 뒤늦게 연락을 받고 뛰어온 야당 의원들이 경위들이 둘러싸고 있는 본회의장에 한명씩, 한명씩 입장할 수 있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본회의장에 입장하면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이 이렇게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강행처리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으나, 이미 한나라당은 날치기를 위한 전열 정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 시각 박희태 의장이 정의화 국회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겨줘 정 부의장이 의장석에 착석하고 있었고, 정 부의장 주위엔 경위 5명이 포진해 야당 의원들의 접근을 막았다. 의결 정족수에 필요한 한나라당 의원 10여 명이 본회의장으로 들어오면 게임은 끝나는 상황이었다. 박 의장이 여야에 심사기한으로 통보한 오후 4시가 되기 전 의결 정족수가 넘는 150여 명의 한나라당 의원이 본회의장에 착석했다.

유일하게 한나라당이 예상치 못했던 변수는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 투척 사건이었다. 의장석 밑에서 경위들과 대치하고 있던 김 의원은 이날 오후 4시 10분께 의장석을 향해 '사과탄'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던졌고, 사과탄이 터지면서 최루가스가 본회의장을 뒤덮었다. 이에 정의화 부의장을 비롯해 부근에 있던 일부 의원들이 본회의장 뒤편으로 이동하는 소동이 벌어졌으나, 예정된 '수순'을 뒤엎지는 못했다.

오후 4시 25분께 정의화 부의장이 본회의 개의를 선언했다. 첫번째 안건으로 FTA 비준안 처리를 비공개로 하자는 본회의 진행동의안이 올라왔고, 표결 결과 재석 167명 의원 가운데 비공개 회의에 154명이 찬성했고 7명이 반대했으며 6명이 기권했다. 비공개 회의의 경우 영상중계도 되지 않으며 속기록도 남지 않는다.

곧바로 한미FTA 비준안이 표결에 부쳐졌으며, 총 170명의 재석 의원 가운데 찬성 151명, 반대 7명, 기권 12명으로 통과됐다. 반대표는 자유선진당 의원 6명과 황영철 한나라당 의원 던진 것이다. 이후 관세법 등 한미 FTA 이행법안도 모조리 통과됐다. 여기에 약사법, 공정거래법 등 한미 FTA와 무관하나 야당이 반대했던 법안들도 직권상정을 통해 우르르 통과됐다. 지난해 예산안을 직권상정을 통해 날치기하면서 서울대 법인화법 등을 끼워넣었던 것과 마찬가지 사례다. 오후 5시 정의화 부의장이 산회를 선포하면서 이날 한나라당의 '날치기 쇼'는 막을 내렸다.

박근혜 의원은 오후 4시57분께 본회의장을 빠져나왔다. 박 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FTA에 대해 그동안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기 때문에..."라며 "오늘 표결이 끝났고 그래서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취재진의 질문 계속되자 "제가 급히 가야할 곳이 있다"며 더이상 답변하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한나라당 단독 처리가 끝난 뒤 이날 한나라당과 박희태 국회의장은 동시에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박 의장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합의 처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을 죄송스럽고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의 깊은 이해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김기현 대변인은 국회 정론관을 찾아 "여야의 원만한 합의를 통해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국민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그러나 민주당 등 일부 야당의 당리당략을 위한 반대 때문에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국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었다"고 단독 처리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이 모든 일이 이명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는 날 벌어졌다.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설득하기 위해 국회를 직접 방문하기까지 했던 이 대통령 입장에선 최고의 '귀국 선물'을 받은 셈이다. 청와대에선 비준안 처리 직후 "다행"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몸싸움 거부' 한나라 22명, "오늘 몸싸움은 없었잖아!"

찬성 151표.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자유선진당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진 가운데 나온 찬성표는 한나라당과 미래희망연대 의원들이 던진 것이다. 예상보다 수월(?)하게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한 배후에는 작년 예산안 날치기 이후 '몸싸움 거부'를 선언했던 '국회 바로세우기' 소속 한나라당 22명 의원들의 협조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지난해 예산안 파동 직후인 12월16일 성명을 내고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며 동참할 경우 19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이들은 황우여 원내대표와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권영세 정병국 진 영 신상진 임해규 이한구 주광덕 현기환 홍정욱 김세연 구상찬 김장수 김성식 정태근 권영진 김선동 김성태 성윤환 윤석용 주광덕 의원으로, 이 가운데 정병국·홍정욱 의원만 표결에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원내대표는 이날 비준안 단독처리 후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취소했다. 남경필 위원장은 "합의처리가 참 힘들다. 송구스럽고 참 안타깝다"면서 "끝까지 노력했고, 선진적인 국회의 모습을 보여 드리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그렇게 못 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김세연 의원은 "국익이 걸린 문제에 대해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고, 지도부의 판단이 있었기에 아쉬움이 크지만, 지도부 결정에 뜻을 같이하게 됐다"며 "의사진행 과정에서 의원들 간에 몸싸움은 없었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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