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살아나도 국민들은 가난하다**
2005년 대한민국은 외국인과 기업에게는 천국, 노동자 서민에게는 지옥인 나라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국회 국정연설에서 "나라가 잘 살아야 국민도 잘 산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국민 생활도 어려운 것이다"라며 꾹 참고 나라 경제부터 일으키는 데에 힘을 쏟다보면 국민들에게도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 말의 진정성을 믿는 국민들이 몇 명이나 될까. 노 대통령의 말대로 '선진한국'으로 가기 위해 허리 끈 졸라매고 따라 온 결과가 이 모양인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시장을 개방하고,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그들의 요구에 따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니 국민들의 삶은 나아졌는가?
결과는 '아니요'다. 국가부도 사태를 부른 주범인 부패한 재벌과 타락한 정치는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다. 시장개방과 함께 들어 온 초국적 투기자본까지 끼어들어 나라의 돈을 휩쓸어가니 국민들의 몫이 줄어들고 노무현 대통령의 '가난한 이웃'들은 하루에도 몇 명씩 자살하거나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 살벌하던 군사독재 시대에도 경찰이 시위 농민을 때려죽였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못 살겠다고 거리로 나선 농민들은 2명씩이나 경찰에 맞아 죽기까지 했다. 이게 노동자 서민을 위해 독재와 싸웠다는 대통령, 인권을 위해 일했다는 대통령이 할 짓인가.
***외환위기 7년의 빛과 그늘**
1998년 외환위기 이후 7년이 지났다. 정부는 IMF를 조기졸업했다고 자랑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국민들은 더욱더 살기가 힘들어지기만 한다.
한국은행의 지난 1월 발표에 따르면 서민들의 실질소득 향상은 0.3%에 불과한 반면 기업들의 이윤은 62%나 늘었다고 했다. 또 국가에서 발생한 재화의 공정한 분배를 가늠해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외환위기 사태 이전인 96년 63.3%에서 2004년에는 58.8%로 4.5%나 감소했다. 즉 일하는 노동자들의 몫은 줄고 기업의 이윤은 대폭 증가했다는 얘기다.
노동소득분배율의 주요 감소원인은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은 늘었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독일과 비슷하게 70%선의 노동소득분배율만 유지한다하더라도 58조 원이 노동자 몫으로 돌아갈 수 있다. 800만 명의 비정규직들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는 추가비용 20조 원보다 두 배나 많은 금액이다. 실제 50대 상장등록 대기업은 99년부터 2004년까지 순이익이 214% 증가했으나, 종업원 수는 -0.4%로 줄었다.
외국자본과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가 고용을 늘려 실업을 줄일 것이라는 주장은 이처럼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오히려 현실을 호도하는 사기꾼들의 너무도 뻔뻔한 엉터리 술책인 것이다. 외국인 투자유치 명목으로 끌어들인 초국적 투기자본은 환율상승으로만 22조 원, 시세차익과 배당금으로 57조 원이나 휩쓸어 갔다. 이것이 외환위기 7년의 결과다. 그 사이 직장에서 퇴출 당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퇴직금과 빚을 얻어 식당, 호프, 통닭집 등 자영업자로 나섰다가 이윽고는 전세금도 건지지 못하고 빚더미에 올라 가정마저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다.
***중간착취·불로소득과의 전쟁을 선포하자**
사회적 양극화의 주범이 비정규직 확산임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비정규직 확산은 단지 노동자간 차별과 임금 격차를 해소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물론 정부 정책인데, 우선 당장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중간착취와 불로소득'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통제가 실시되어야 한다. 기업규모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재벌 대기업들의 횡포로 중소영세기업의 '노숙기업화'는 심각한 경제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기업의 규모에 따른 임금소득의 양극화, 재벌대기업의 부당한 압력을 통한 단가인하와 다단계 하도급을 통한 임금착취를 근절하는 방안도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국민들 스스로도 떨쳐 일어나 '중간착취와 불로소득'과의 전쟁을 선포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나서야 한다.
정부기관부터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청소용역이나 위탁관리 등 중간착취를 허용하는 사업은 즉각 직영화를 통해 노동자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해야 한다. 정부나 시도 지자체에서 발주가 나가는 건설공사에서도 다단계 하도급을 통한 임금착취는 만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발주단가에 포함되어 있는 임금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최종 단계에서 열심히 일한 노동자의 손에 고스란히 전달되도록 '임금직불제'를 시행해야 한다. 민주노동당도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장악하고 있는 정부나 자치단체 정부에게 떼쓰듯 요구하지 말고 이를 민주노동당이 집권하고 있는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부터 시행해 모범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생활주변에까지 파고들어 아파트의 경비나 청소용역 일까지 부당하게 임금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직접 고용한다면 입주민들은 한 푼의 추가 부담없이도 직접 일하는 청소나 경비노동자들의 임금을 5만 원에서 20만 원까지 인상시켜줄 수 있다. 이 또한 지역의 노동조합들이 지원하고 공장 밖으로 퇴근하면 지역시민이 되는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지 않으면서 정부와 기업에게만 탓하지 말자.
***국민에게 고통 주는 기업은 해체시켜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더욱 상세히 들여다보면 재벌 대기업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내 하도급을 통한 비정규직도 문제이지만 전체 고용 노동자의 87%가 일하고 있는 중소영세기업에게 정당한 납품단가를 주지 않고 강제인하까지 일삼는 데 문제가 있다. 힘없는 중소영세기업은 대기업에게 당하고 깎인 그만큼 노동자들의 임금 몫을 줄이게 만든다. 우선 임금을 절반만 주는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대기업에게 받은 납품권 댓가로 15~20%를 챙기고 다단계하도급 과정을 통해 더욱 낮은 임금을 주는 하청 재하청회사로 일을 넘기게 된다.
3차, 4차 말단 하도급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80% 수준인 1차 하청노동자 임금보다 훨씬 적은 50% 미만의 임금을 받는 까닭이 이같은 30% 정도의 중간착취에 있다. 요즈음은 재벌 대기업이 공장이나 생산시설 하나 없이 중간 관리업을 하는 중간착취 계열회사를 만들고 마진의 15% 정도를 빼앗아 버린다. 대기업 계열사에 15%의 마진을 상납해야 하는 중간관리 회사들은 이윤유지를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하하거나 동결하며, 화물과 덤프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층을 만드는 결과를 빚게 된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자본의 위기를 벗어난 재벌 대기업들은 비정규직 임금착취와 중소영세기업 착취뿐만 아니라 때만 되면 상품가격을 인상하여 국민에게 고통만 주는 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국민에게 고통주는 기업, 최저임금도 주지 못하고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못하는 기업은 차라리 해체하는 게 모두를 평안하게 만드는 지름길일 수 있다.
***노동운동 투쟁방식도 혁명적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노동운동도 이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해야 한다는 단선논리만으로는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치의 문제이며 경제의 문제다. 노동자와 국민들이 일을 해서 동일한 재화를 생산해 냈는데 정부가 그 몫을 누구에게 많이 주려 하는지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이 민주노동당과 노동계가 요구하는대로 개정 도입된다 하더라도 비정규직들의 고통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실제 남녀고용평등법에 '차별금지' 조항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전체 여성노동자 70%가 비정규직이며, 정규직 노동자 평균임금의 43%밖에 받지 못하는 차별을 받고 있다.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되고 있음에도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그 최저임금 기준인 시급 3100원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태일 열사가 온 몸에 불을 사르며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세상을 향해 외친 지 3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해야만 하는 참담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 세상에 법안 몇 개가 바뀌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과 눈물이 멈추리라는 착각을 하지 말자. 다시 단결투쟁을 하는 체제로 바꾸자. 산별노조로 전환한다 해도 기업별 노조 체제의 관성에서 벗어나려면 10년도 넘게 걸릴 것이다.
차라리 노동조직 지도를 다시 그려 민주노총 단일 노조라는 혁명적인 방식을 택하자. 기업별 노조는 해체하고 지역별 노조로 전환하자. 조합비는 민주노총 단일노조와 지역에 50%, 지부나 지회 사업에 50% 배분하는 방식으로 지역노조에 예산과 인력을 집중해야 한다. 조직은 내부에 업종별로 강화하여 지역 노동시장을 장악하며, 노동조합이 지역사회의 고용시장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지역노조에 해당 업종의 정규직,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를 하나의 노조로 묶어 낸다면 당연하게 지역별 최저임금체제가 새로이 생기고 지역별 교섭단체가 다양한 업종별로 구성되며 '지역협약'을 완성할 수 있다. 전국 총파업을 남발하지 말고 철저한 준비를 통해 지역별로 전업종을 묶어서 세워버리자. 지역별 경쟁을 통해 파업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눈덩이 파업'을 만들면 노동운동의 위기는 극복되고, 사회복지체계 재설계 요구도 가능하다.
또한 지역노조의 업종별 노조는 해당 지방정부의 관급공사에 직접 시공 계약권을 갖거나 고용할 수 있는 '노조의 법인화'를 추진하고, 중간착취나 다단계 하도급을 주지 않는 이같은 투명한 법인과 관급공사 체결을 할 수 있도록 조례제정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이유가 여기에 있기에 각성된 노동자가 정치적 단결을 하면 먼저 지방정부를 투명하게 바꾸고 이런 지방도시부터 중간착취와 불로소득이 없는 노동자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시정부를 바꾼다면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금과 똑같은 재정으로 실제 아파트를 반값에 지어주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기성의 정치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그 일을 해내야 한다.
***출산파업 다음 단계는 소비파업이다**
70%에 이르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살기가 힘이 드니 노동력 재생산을 포기하는 '출산파업'이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동일한 일을 하는데 임금은 절반밖에 주지 않는다면 이는 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가정경제의 문제다. 돈을 적게 주니 당연히 돈을 적게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노동단체와 시민사회의 비정규직 사유제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비정규직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비정규직의 무제한 남용을 허가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국민에게 고통 주는 법안을 만드는 정권에게 우리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투쟁도 중요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설적으로 돈을 적게 쓰는 '소비파업'이 아닐까. 855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소비파업에 나서고, 정규직이 동참하는 범국민적 소비절약운동을 펼치는 경제투쟁을 조직하면 어떨까. 정부와 비정규직 확산의 주범인 재벌 대기업들이 항복을 하고 파견법을 폐지하고, '비정규직 금지법'을 만들 때까지 1500만 노동자들이 시민들과 함께 소비절약운동으로 대응하자. 그리고 전국 노동자들이 절약하여 모은 돈은 '노동은행'을 만들어 왕창 저금을 해버리자. 그래서 노동운동을 방해하는 자본운동의 발을 묶어 꼼짝 못하게 만들면 어떨까.
세밑 맹추위와 폭설에 얼어죽은 서민들, 불도 없는 냉방에서 떨며 지내고 있는 어느 비정규직 가정집을 떠올리며 참으로 원통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투박한 글 하나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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