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수사 원칙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일찍이 일갈하지 않았는가. 8월 중순 민주당 의원들과의 면담에서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사건의 경우 기소의견을 검찰에 송치하기는 어렵다"고. 우리 경찰은 참으로 원칙적이다. 오로지 정도만을 걷는다.
인천 장례식장 칼부림사건 이후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경찰이 127명의 '조폭'을 검거했다며 이렇게 밝혔다. 엘리베이터 문을 오래 잡고 있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른 사람과 같은 단순 폭행범 23명이 127명의 '조폭'에 포함돼 있는 데 대해 "법적 구성요건보다는 공포와 폭력을 사용해 사회와 민생에 해악을 끼치는 모든 경우에까지 확대적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 또한 할 말이 없다. 어쩌겠는가. 민생을 챙겨주겠다는데.
이게 경찰의 존재 이유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일찍이 일갈하지 않았는가. 경찰의 고유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질서보호라며 "조폭 문제를 다룰 때 인권을 앞세우면 국민의 피해가 너무 크다"고. 우리 경찰은 말 그대로 민중의 지팡이다. 오로지 국민만을 섬긴다.
▲ 조현오 경찰청장. ⓒ연합 |
한데 이상하다. 경찰의 조치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보면 고개 끄덕여지는데 한 데 모아놓으니 영 어색하다. 흔히 말하는 '구성의 모순'이 보름달처럼 떠오른다.
누가 봐도 뻔한 도청사건에 대해서까지 인권을 존중하고 수사 원칙을 견지하는 경찰이 조폭(이 아닌 단순 폭행범)에 대해서만큼은 인권을 고려치 않고 '법적 구성요건'조차 무시하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질서보호를 위해서 그런다고 이해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길거리에만 질서가 있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에도 엄연히 질서가 있는 법이니까.
막무가내로 나서는 조폭에 대해서는 총기를 과감히 사용하겠다고 벼르는 경찰이 '배째라'로 나선 한선교 의원에 대해서만큼은 강제구인권조차 행사하지 않은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 국회의원은 회기 중에 구인할 수 없다는 경찰의 설명을 그대로 믿으려 했지만 아니다. 지난 7월에 국회가 열리지 않았고, 따라서 얼마든지 구인할 수 있었다고 하니까.
도대체 무슨 연유로 경찰은 모순에 빠진 걸까? 앞 다르고 뒤 다른 행태, 야누스와 같은 면모를 거침없이 내보인 걸까?
힘의 차이로 이해해야 하나? KBS와 한나라당은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 크고 힘 있는 존재, 반면에 조폭은 골목에서나 힘쓰는 그저그런 존재. 이런 힘의 차이가 경찰의 태도 차이를 낳았다고 봐야 하나?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갑자기 궁금한 게 생긴다. 그럼 민주당은? 경찰은 민주당을 어떻게 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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