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못 비장하게 들린다. 야권통합을 위해 한 몸 기꺼이 내던지는 모습처럼 보인다.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표현을 약간 각색하면 '구당의 결단'처럼 보인다. 한데 아니다. 손학규 대표의 조건부 불출마 선언엔 고도의 책략이 담겨있다.
손학규 대표는 양손에 떡을 쥐려고 한다. 한 손엔 실리, 다른 손엔 명분을 쥐려고 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뉴시스 |
손학규 대표가 조건부 불출마 선언을 하면 그의 대표직이 유지된다. 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려고 할 경우 선거일 1년 전까지 사퇴해야 한다는 대권-당권 분리 규정을 비껴갈 수 있다. 그럼 그는 대표 임기를 꽉꽉 채울 수 있고, 더불어 내년 4월 총선 공천을 주관할 수 있다. 자파 인물을 상당수 공천함으로써 당내 입지를 더욱 튼실히 다질 수 있다. 이건 실리다.
손학규 대표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더라도 모양새가 중요하다. 문재인 변호사가 부상하고 안철수 교수가 등장하면서 존재감이 줄어드는 자신의 옹색한 처지를 분장하지 않으면, 결국 경쟁에 밀려서 불출마를 하는 듯한 모습을 감추지 않으면 그의 정치적 위신은 옹색해진다. 바꿀 수 있다. 야권통합을 조건으로 내세운 다음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 그의 선언에 오버랩되는 이미지를 '옹색'에서 '고뇌'로 뒤바꿀 수 있다. 이건 명분이다.
종합하면, 손학규 대표는 지구전을 꾀하고 있다. 어차피 단기전에서 승리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차차기를 바라보며 지구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진지를 구축하려고 한다. 당내 입지를 강화하고, 자파 세력을 확장하려고 한다.
어떨까? 손학규 대표의 책략이 옳든 그르든 야권통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할까? 손학규 대표의 대권가도는 닫히는 반면 야권통합엔 탄탄대로가 열리는 걸까? 그렇지가 않다.
손학규 대표가 민주당에 똬리를 틀고 야권통합에 나서면, 나아가 야권통합 이후의 공천권까지 행사하려고 한다면 야권통합은 더욱 어려워진다. 민주당 중심의 야권통합을 축으로 삼고, 자신의 지분 선점을 목표로 삼으면 민주당 밖의 '기득권 양보' 요구와 상충한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민주당 의원들의 기득권 포기를 설득해야 할 사람이 자신의 기득권 강화를 꾀하는 판에 누가 흔쾌히 대의를 따르려 하겠는가. 이전투구, 지리멸렬의 모습만 연출되기 십상이다.
행여 야권통합 자체가 무산되거나 그 규모가 축소된다 하여 손학규 대표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손학규 대표의 당 장악 가능성은 커지고, 지분 확보 여지 또한 커지니까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민주당이 뭇매 맞는 정당이라고 해도 총선에서는 다른 야당에 비해 우월한 위치를 점할 테니까 실리를 듬뿍 챙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 대표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카드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만의 생각이다.
착각이다. 대선 불출마 선언이 '모든 것을 버리는 희생'으로 비쳐지기를 기대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못 먹는 감'을 내던진다고 해서 그걸 기부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못 먹는 감'을 버리는 대신 '계란 노른자'를 챙기려 한다고 해서 그걸 등가교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국민은 '두꺼비'가 아니다. 헌집 줄게 새집 다오 한다고 해서 낼름 받아드는, 그런 미욱한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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