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정부와 원전사업자인 한수원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은 미뤄두고 전기 공급을 내세워 핵 발전을 늘려왔습니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기술 발달로 가까운 미래에 곧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겁니다. 5년짜리 정권은 수십 년 이후를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고, 결국 미래 세대에 사용후핵연료를 떠넘겨온 것입니다.
물론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정부 계획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80년대 정부는 1990년대까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로 대표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동일 부지에 건설하고 사용후핵연료를 최종 처분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에 따라 1991년 안면도, 1995년 굴업도, 2003년 부안을 차례로 부지로 선정했지만 결국 큰 사회적 갈등만 남긴 채 백지화되었습니다. 시급성만 내세우며 부지의 안전성을 확인하지도 않고 또 주민의 동의 없이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2003년 부안 사태를 겪고 정부는 2004년 말 중저준위 처분장과 고준위 중간저장시설을 따로 건설하기로 계획을 바꿉니다. 그나마 논란이 덜한 중저준위처분장을 먼저 건설하기로 한 정부는 처분장 유치지역에 경제적 지원 등을 담은 정책을 제시하며 유치지역 신청을 받았습니다. 이에 경주를 포함한 3개 지역이 유치 신청을 했고 이들 지역별로 주민투표를 실시, 최종적으로 경주가 중저준위 방사성 처분장 부지로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심각한 지역 갈등이 빚어지고 민주주의를 역행했다는 논란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더구나 핵폐기장 부지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지 안전성보다는 지역주민의 수용성을 더 따지다 보니 활성단층과 지하수가 풍부해서 핵폐기물 보관에는 최악인 경주가 부지로 선정된 겁니다. 공사 중 경주 처분장의 지질학적 자연방벽 조건이 매우 나빠 심각한 우려가 발생하여 공사가 수년간 지연되고 공사비가 1조 원이 추가로 발생했습니다. 현재 경주 처분장은 주민들의 위험성을 감수한 채 사용되기 시작하고 있어 앞으로 300년간 주민들이 위험에 노출될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핵폐기장 논란이 수십 년간 지속되면서 시민사회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핵폐기장 후보지를 정하는 방법 대신에 핵폐기물이 나오는 핵발전소 문제까지 포함하는 사회적 공론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해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한 공론화 위원회가 발족됐습니다. 하지만 공론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2014년 말 공론화 완료, 임기 중 중간 저장시설 착공이라는 내용을 명기해 '고준위핵폐기장 부지선정위원회'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추천된 위원들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문사회, 공학 등 추천위원회 추천 인사들의 경우, 시민사회단체에서 추천한 인사들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문제가 많았던 경주 핵폐기장 부지선정위원회에 참여한 위원이 짜인 시나리오에 맞추어 공론화위원장이 되었고 이후 회의는 파행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위원회 위원 15명 중 6명(지역과 시민사회, 원자력계)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핵폐기물 공론화 내용도 핵폐기물량을 근본적으로 줄일 방법은 논의되지 못하고 기존의 핵발전 확대정책을 인정해주는 꼴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핵발전소 부지별 임시저장고 계획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공론화위원회는 이에 상관없이 2015년 6월 2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안으로 제출했고, 이에 따른 갈등이 내재된 상황입니다. 이후 시민들은 대선을 앞두고 탈핵 의제 중 하나로 고준위핵폐기물 관리계획 재검토 및 공론화 재실시를 요구했고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 중 하나로 공론화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정책 재검토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재공론화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재검토한다는 방침을 세운 터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