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지와 검지로 한지 비벼 꼬아 노끈 만들고 엮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지승공예(紙繩 工藝). 지승(紙繩)에 대한 어원은 종이라는 뜻의 ‘지(紙)’에 ‘꼰다’는 뜻을 지닌 승(繩)이 합쳐진 것이다.
지승공예는 종이를 좁다랗고 길게 잘라 엄지와 검지로 비벼 꼬아 노끈을 만들고 이를 엮어 만든 것으로 ‘지노’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승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진 유래는 1598년 선조때로 지의(紙衣)에서 지승반결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보인다. 그러나 지승은 종이로 꼰 노끈이라는 의미로 표현만 그렇게 되어 있을 뿐, 세계 어느 나라도 종이를 꼬아서 끈을 만들고, 그 끈을 엮거나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어 사용한 경우는 없다. 짚이나 왕골, 혹은 등나무 줄기 등 엮은 공예품은 많으나 우리나라처럼 종이를 이용한 것은 없다고 한다.
이처럼 종이가 흔하지 않았던 옛날엔 버리게 된 종이를 지승 기법으로 선조들의 지혜와 뛰어난 창의력-응용력을 잘 보여 주는 지승공예는 끈기와 인내심의 산물이다.
독학으로 배운 지승공예에 25년여 세월을 엮어 온 지승공예의 명인 김선애(51) 지승장을 보은정지승공예 연구소에서 만났다.
"인내와 혼이 들어가는 지승공예는 전통 한지공예의 진수입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작업에 더 매진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1월 전라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한지공예부문 지승장으로 선정된 김선애(51) 명장은 순수 독학으로 지승공예를 터득한 대단한(?) 인물이다.
김 지승장은 충청남도에서 태어나자마자 서울로 이사, 서울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결혼 후 전주로 내려와 전주사람이 되었다.
결혼 후 “취미로 무엇이 좋을까” 생각 끝에 우연히 관련 책을 접하고 “한지를 엮는 게 신기했다”며 지승공예에 첫 발을 디딘다. 한지를 엮는 남다른 손재주는 석재 일을 하는 부친의 손재주를 닮은 것 같다고 감사함도 잊지않았다.
김 지승장은 24년간 독학으로 배우고 익히며 한지공예를 다뤄왔다. 한지를 꼬는 과정을 익히려고 선조들의 유물과 관련 사진을 구입, 뜯어보고 만들어보며 기법을 연구했다. 그래도 답이 안 나오면 쫓아가서 배웠다.
행여 한지 엮는 기법에 도움이 될까 싶어 수소문 끝에 알게 된 60년 이상 삼을 엮은 전문가에게 ‘삼 엮는 기법’을 배우기도 했다. 관련 책도 수없이 반복해서 읽으며 터득해 나갔다.
결국 그녀는 홀로 체득한 ‘지승공예기법에 대한 연구’란 논문으로 2006년 예원예술대 대학원에서 한지미술을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한지로 엮어낸 김선애 공예전’ 등 개인전 2번, 2013년 중국 남경서 펼쳐진 한국한지문화 공예전 등 그룹전 11번 등 전시회도 열었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입상과 대한민국 한지대전 특별상에 힘입어 2017년에는 전라북도 지정 무형문화재에 선정되는 결실을 맺었다.
◇ 질좋은 한지만을 고집...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엮어
"저는 가장 질 좋은 한지만을 고집합니다. 일일이 한지를 꼬아 작업하기 때문에 손가락 지문이 닳아 없어진 정도입니다"
김 지승장은 25년여 세월을 손에서 한지를 놓지 않으며, 지승실을 꼬았다. 오랜 세월동안 한지를 만진 장인의 숨결이 김 지승장의 굳은살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러한 작업은 끈기와 인내를 요구한다. 작품 하나를 만들려면 최소 수개월에서 많게는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김선애 지승장이 운영하는 보은정지승공예 연구소엔 김 지승장이 만든 지승공예, 한지공예 작품 등 수백여 점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한지는 얇기 때문에 찢어지기 쉽지만, 한지의 결을 따라 비스듬히 끈으로 꼬아 놓으면 섬유질 성질 때문에 오히려 질겨져 끊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옻칠이나 동백기름을 칠한 지승은 방수가 되면서 변질이 되거나 뒤틀리지 않아 아주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게 된다.
김 지승장은 “지승은 풀을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에 오로지 손으로만 작품을 만들어 낸다”며 “지승은 변형이 굉장히 자유롭기 때문에 지승공예 작품에 여러 가지를 접목해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승공예는 고단한 작업이다 보니 많은 이가 배웠다가 포기하기 일쑤다. 전국에서도 지승공예작가는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김 지승장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이자 작품인 지승공예를 지키고 싶다”며 “독학으로 터득한 지승공예를 기록으로도 남기고 싶어 틈틈이 정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지승장은 올 여름 개인전을, 특히 내년엔 서울에서도 전시회를 열 계획을 세우고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지승공예에 관심이라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는 김 지승장의 손엔 오늘도 한지를 엮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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