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연루된 의혹이 터진 경로도 다양하다. 김 전 수석의 경우 부산저축은행의 거물급 로비스트 박태규 씨의 입에 명운이 걸려 있고, 박 전 차관의 경우 한나라당 의원들이 앞장 서서 몰아붙이고 있고, 신 전 차관의 경우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사업가의 입에서 일이 터졌다.
일련의 사건들이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인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 레임덕 가속화에 한몫 하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청와대나 한나라당은 대체로 "지켜보자"면서도 "의혹이 사실이 되더라도 개인 비리 아니냐"고 애써 선을 긋고 있지만 먹힐 리 만무하다.
이같은 'MB맨'들의 몰락에 대해선 한때 정관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차관 정치'의 말로라는 지적이 많다.
막강 파워 자랑했던 '4+1 회의' 주인공들
▲ '이국철 게이트'는 이명박 정권의 '실세 차관정치'의 몰락 상징이 될까? 사진은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 ⓒ뉴시스 |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장수만 국방부 차관 등 이른바 '실세 차관' 4명과 장관급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매주 수요일 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는 것.
명분은 국정 현안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정보 교환이 목적이었다. 이 비공식 모임은 시작된 지 두달 여 만에 언론에 노출됐고 "논의 내용이 빠른 속도로 부처에 전파되는 효율성이 있다"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실세들의 이너서클'이라는 비판이 높았다.
대통령령에 따라 차관들이 주 1회 또는 필요 시 회동하는 차관회의이나 여러 의결 시스템을 뛰어넘는 '왕(王)차관회의'라는 지적이 높았다.
이들은 모두 이명박 후보 대선 캠프에서 요직을 지낸 인사였다. 곽 위원장이 선대위 정책기획팀장이었고, 신 전 차관은 메시지팀장, 박 전 차관은 네트워크 팀장, 장 전 차관은 일류국가비전위 정책조정실 부실장, 이주호 당시 차관은 캠프에선 현역의원 신분으로 교육공약을 총괄했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연배도 비슷한 이들의 파워는 막강했고 '장관 이상'이라는 평가도 비슷했다.
권태신 당시 총리실장, 유인촌 당시 문화부 장관, 안병만 당시 교육부 장관, 이상희 당시 국방부 장관 등 상급자들을 제치고 '차관 회의' 멤버들이 실세로 불렸다. 실제로 이상희 당시 장관이 장수만 차관과 갈등을 빚다 퇴진하는 등 이들의 파워는 막강했다.
장수만 전 차관부터 몰락 시작
'실세 차관회의' 멤버들은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다. 장수만 당시 차관은 방위사업청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신재민 당시 2차관은 장관에 내정됐고, 박영준 당시 차장은 영포회 논란과 한나라당 소장파의 지탄에도 불구하고 지식경제부 2차관으로 부활했고, 이주호 당시 차관은 장관으로 영전했다.
하지만 이주호 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정도를 제외하곤 멤버 모두가 이미 기소됐거나 의혹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가장 먼저 대열에서 탈락한 이는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이다. 그는 이른바 '함바게이트'에 연루된 것이 밝혀져 지난 2월 자진사퇴했다. 이후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장 전 청장에 대해 검찰은 징역 4년에 추징금 4700만 원을 구형해놓고 있다.
작년 8.8 개각에서 문화부 장관으로 내정됐지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던 신재민 전 차관은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 기용설 등이 있었지만 결국 '이국철 게이트'의 주인공이 됐다. 이국철 SLS 회장은 "신 전 차관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도 소개시켜줬다"면서 "박영준 전 차장도 일본 지사를 통해 접대했다"고 까지 주장하고 있다. 곽 위원장은 "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입장이다.
무사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장관이 된 이주호 당시 차관을 제외하곤 모두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실세 전횡설'이 한참 나올 때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저러다가 나중에 사고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신재민 파동'에 대해 "일이 터질 지 조마조마했지만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다"면서 "앞으로 누구에게서 어떤 일이 나올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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