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과 정운찬의 '때 늦은' 행보
재미있습니다. '경향신문'이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을 호평하면서도 경계합니다. 그가 재벌개혁과 노동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며 개혁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그 개혁적 행보가 변신인지, 변화인지 선뜻 결론내리지 않습니다. 정동영 최고위원을 향해 "탁월한 순발력에 비해 신뢰감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는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정치권 일각의 호평과 함께 또 다른 일각의 "눈앞의 정치적 이익 때문에 정략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도 함께 전합니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동영 최고위원의 과거 행적 때문일 겁니다. 2009년 4.29재보선 때 민주당 안팎의 반대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주에 출마한 과거 행적 때문일 겁니다. 그 때 아로새겨진 이기주의·보신주의와 지금 보이는 헌신성이 대비되기 때문일 겁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김근태 전 의원이 주도했던 개혁파에 맞서 실용파를 이끌었던 열린우리당 시절의 전력입니다. 상대적으로 사회경제 개혁에 소극적이었던 과거의 전력입니다. 그 때 채색됐던 색깔과 지금 보이는 색깔이 대비되기 때문일 겁니다.
결국 관통하는 문제는 하나입니다. 신뢰성입니다. 그가 보이는 개혁적 행보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지수를 선뜻 결정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허망한 상상을 해봅니다. 정동영 최고위원이 대선 실패 이후의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했을 때 곧장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면 하는 상상입니다. 전주가 아니라 현장으로 달려갔다면 하는 상상입니다. 그랬다면 신뢰지수가 좀 더 높았을지 모릅니다.
한 사람 더 있습니다. 이렇게 상상하다 보니까 다른 한 사람이 마저 떠오릅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입니다.
정운찬 위원장이 어제 재벌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습니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할 필요가 있다"고 했고, "전경련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이 아니라 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공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단체로 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초과이익공유제 제기 이후 계속 되고 있는 재벌 비판 주장들입니다.
맞아떨어졌을지 모릅니다. 재벌개혁·시장개혁 문제가 내년 선거를 좌우할 주된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정운찬 위원장은 '아이콘'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재벌개혁과 시장개혁이라는 시대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로 꼽혔을지 모릅니다. 그의 학계 시절 이미지와 그의 개혁론이 맞아떨어지면서 가장 촉망 받는 정치 지도자로 부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그 누구도 그를 강력한 대선 주자로 꼽지 않습니다. 더불어 그의 개혁론도 백가쟁명의 일부 쯤으로 취급합니다.
그가 국무총리 자리를 덥썩 받지 않았다면, 그의 이미지에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오버랩 되지 않았다면 이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다 부질없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상상하는 게 말 그대로 허망한 짓입니다.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 흔들기이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입니다. 정치는 역시 타이밍의 예술이고, 이미지의 향연인가 봅니다.
'막판 호소' 대상은 박근혜
'조선일보'가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투표율에 속 타는 여당의 모습을 전하며 붙였습니다. "오세훈 시장 측과 여권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에 기대로 걸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박 전 대표가 내일(23일) 본회의에 출석하면서 뭔가 얘기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전했습니다.
박근혜 의원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이 "아직 박 전 대표가 추가 입장을 내놓을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는데도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이번 투표에서 박 전 대표가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는 친박 중진의 말을 붙였습니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단순 전언보도인지, 아니면 전언에 자신들의 '희망'을 녹여낸 것인지 궁금하지만 아무래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따로 있습니다. 절박성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박근혜 의원이 "무상급식은 지자체마다 사정과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정과 형편에 맞춰서 해야 한다"고 선을 긋고, 친박계 의원들이 주민투표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의원을 향해 '막판 호소'를 하는 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방증입니다. 이미 밝혀졌습니다. 보수층이 똘똘 뭉쳐 투표해도 33.3%의 투표율을 채우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도 보수층에게나 효과가 있을 박근혜 의원의 영향력에 기대려는 건 그만큼 다급하다는 방증입니다.
두고 볼 일입니다. 간절함이 큰 만큼 원망도 큰 법이라고 했는데 만에 하나 투표율에 미달하면 오세훈 시장 측과 여권 일각, 그리고 '조선일보'가 박근혜 의원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두고 볼 일입니다.
* 이 글은 '미디어토씨'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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