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유기 농사를 짓고 있는 김태원 씨는 "울분이 터져 더 말을 잇기도 힘들다"며 발언을 마쳤다.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4대강 사업 피해 주민 보고 대회'에 참여한 14개 지역 주민들은 하나같이 '우리를 이대로 살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 13일 오후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4대강 사업 피해 주민들의 피해 사례를 발표하는 보고대회가 열렸다. ⓒ프레시안 |
김 씨가 살고 있는 남양주시의 팔당 상수원 일대는 정부의 4대강 사업 중 '한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농지 15만 평이 강제 수용을 앞두고 있다. 시는 강제 수용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지만, 농민들은 주변 농지의 실거래 가격이 평당 40~50만 원에 육박해 정부의 보상비로는 농지 구입이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게다가 팔당 일대는 농민들이 20여 년간 유기 농업을 가꿔온 곳인데, 농민들이 새로 농지를 구입하더라도 '유기 인증'을 받기까지는 최소 3~5년이나 걸린다. 팔당댐이 생기면서 땅을 잃고 하천 부지에서 유기 농업에 종사하며 살아왔던 농민들이었기에 울분은 더 컸다. 김 씨는 "4대강 사업이 농민을 말려죽이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 의견 무시하는 4대강 사업…우리를 이대로 내버려 두라"
경상북도 영주시의 주민 511세대 역시 '영주댐 건설 사업'으로 수몰민이 될 위기에 처했다. 영주댐반대범시민연대 천경배 대표는 "지자체가 주민의 피해 상황도 파악하지 않은 채 환경영향평가 초안 공청회를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등, 댐 건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며 "수몰지 인근의 농민 80퍼센트가 소작농이기 때문에, 보상비를 받아도 농협 등의 부채를 갚고 나면 생계 대책이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천 대표는 "지자체와 지역 토호들이 댐을 건설하면 지역 발전이 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면서 지역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데, 보상액이 실제 주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적다. 혹여 연로한 농민들이 나중에 농약이라도 먹고 돌아가시면 어쩌나 걱정이 될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으로 피해를 보는 주민들의 성토도 이어졌다. 경기도 고양시 행주어촌계 어민 임정욱 씨는 "20년 동안 한강 유역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왔다. 부유하진 않지만 아이들 둘을 대학에 보낼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며 "한강 운하 건설로 5000톤급 배가 드나들게 되면 어선과 어구를 사용할 수 없게 돼 생계가 막막해진다"고 호소했다.
임 씨는 이어 "정부는 이 지역에 배만 있지 어업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은 없다고 주장해 순식간에 이 곳 어민들이 '유령'이 되어버렸다"며 "보상도 이주도 필요 없으니 우리를 제발 내버려 두라"고 성토했다.
4대강 사업으로 일자리 창출?…낙동강 골재 노동자들 "생존권 보장하라"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일자리 창출은커녕, 고용 불안만을 촉진시킨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낙동강 인근에서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는 골재업 종사자들은 "우리가 30여 년 동안 해온 일이 준설 작업인데, 과연 정부의 4대강 사업은 누구를 위한 사업인지 의심스럽다"며 3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정부의 주장에 일침을 놓았다. 4대강 사업 구역의 하나인 낙동강 인근의 '건설 노동자'들이 오히려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발하고 나선 것.
대구경북지역골재원노동조합 권태완 수석부위원장은 "낙동강에서 4억4000만 제곱미터의 준설 작업을 할 경우, 무려 34년 동안 채취해야할 골재를 2년 안에 모두 파 골재 노동자들의 장기적인 일자리가 박탈된다"고 주장했다.
권 부위원장은 이어 "만약 낙동강의 골재 업체가 4대강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하더라도 4대강 사업은 2년 공사이기 때문에 공사가 끝난 후 이들은 실직자가 될 것"이라며 "낙동강에서 30여 년을 일해 온 300여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 박탈 위기에 놓여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또 "30여 년 동안 골재 노동자들이 낙동강에서 골재 채취업을 해오면서 경험한 것은 장마철이나 폭우가 쏟아질 경우 감의 범람이 가끔 있어도 낙동강의 홍수 범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라며 정부의 홍수를 막기 위해 하천을 정비한다는 정부의 주장에 일침을 놓았다.
"'행복 4대강'이라고?…남는 것은 주민 고통 뿐"
이날 보고대회에 참석한 14개 지역 주민들은 공통적으로 "정부가 지역 주민의 생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제대로 설명회나 공청회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운하백지화국민행동 명호 상황실장은 "4대강 사업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철저하게 무시된 채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사업"이라면서 "하루아침에 생계를 이어오던 농지와 고기잡이 터전을 빼앗기고, 나고 자란 고향이 수몰 예정지로 지정돼 쫓겨나고, 투기 세력의 부축임과 돈 몇 푼 때문에 절친했던 이웃관계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것이 4대강 사업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정부가 빛의 속도로 4대강 사업을 졸속 추진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는 자연이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닌, 녹색과 나눔의 질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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