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전격 경질된 배경에 대해 <뉴욕타임스>가 틸러슨의 귀책사유가 상당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틸러슨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이고 혼란스러운 대북정책 등 외교정책들에 대해 '어른스럽게' 제동을 걸다가 미움을 사 경질됐다는 일반적인 해석과 결이 다른 내용이어서 주목된다.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틸러슨이 세계 최대 메이저 석유업체 엑슨모빌 최고경영자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취임후 트럼프 대통령과 사사건건 의견을 달리했다. 백악관 참모들과도 충돌하는 일이 반복됐고,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외교분쟁, 러시아의 사이버공격에 대한 미국의 대응책 등 다양한 현안들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이견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틸러슨을 경질한다고 발표한 후 기자들에게 "우리 둘은 생각이 같은 적이 없었다"면서 "사고방식 자체가 아예 달랐다"고 틸러슨을 경질한 배경을 털어놓았다.
틸러슨이 트럼프 대통령의 눈밖에 난 것은 오래됐으나 그는 스스로 물러나기를 거부했다. 외교정책 주무장관인 틸러슨이 트럼프의 이너서클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최근의 사건으로 <뉴욕타임스>는 북미정상회담 성사 과정을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대화 제의를 수용한 과정에서 배제된 틸러스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신문은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틸러슨을 국무장관으로 발탁했을 때, 그가 거대한 석유회사의 최고경영자 출신으로 국무부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으나, 곧바로 사그라졌고 전했다.
틸러슨은 산적한 외교 현안들에 압도된 모습을 보였고, 가장 중요한 쟁점들을 다룰 때 이 분야의 문외한이라는 것이 종종 드러나면서 직업 외교관들로부터 고립됐다는 것이다.
"엑슨모빌 최고경영자 출신, 관리능력마저 없어"
<뉴욕타임스>는 "틸러슨이 트럼프 대통령과 정책에서 가장 심각하게 갈등을 빚은 것은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데서 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틸러슨은 파리기후협약에서 미국이 탈퇴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트럼프는 이 협약에서 미국의 탈퇴를 결정했다. 틸러슨은 이란 핵협상을 유지하자는 입장이었으나 트럼프는 "미국에 낭패를 안겨준 협상"이라고 질색했다. 북핵위기 해법에서도 틸러슨은 대화로 푸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트럼프는 군사적 대응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반복했다.
미국 외교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싱크탱크로 불리는 미국외교협회(CFR) 리처드 하스 위원장이 지난해 가을 틸러슨의 사임을 촉구한 것도 이런 복합적인 요인 때문이었다. 하스 위원장은 "틸러슨은 대통령에게 찬밥 취급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업무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서 "이런 두 가지 이유로 그는 국무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국무부 관료들은 처음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틸러슨 장관을 신임해주길 기대했으나, 틸러슨이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보다 국무부의 역할을 사실상 축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등을 돌렸다.
틸러슨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한 실언도 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 국방부에서 국가안보 관료들이 모인 회의석상에서 트럼프를 '멍청이'라고 비난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뿐이 아니다. 트럼프가 대북 압박 수위를 높여가던 지난해 9월 틸러슨은 북한에게 대화를 하자는 제의를 했다고 발표했다. 틸러슨이 자신을 '멍청이'라고 비난했다는 소식에도 "가짜뉴스"라고 수습하려했던 트럼프는 마침내 "틸러슨은 '꼬마 로켓맨'과 협상하겠다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틸러슨을 공개비난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틸러슨이 북한에 비밀협상을 제안한 것에 트럼프가 분노를 폭발시킨 배경에는 문재인 대통령과도 관계가 있었다. 북미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물밑작업을 해오던 문 대통령은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틸러슨은 자신의 북한과의 비밀협상 제안에 한국이 어떻게 반응할 지 고려하지 못한 결정으로 외교 주무장관으로서의 미숙함을 드러내 국무부 내부에서도 고립됐다는 것이다.
신문은 "틸러슨은 가장 성공적이지 못한 국무장관 중 한 명으로 사퇴하게 됐으며,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과의 관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라면서도 "그가 국무부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것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거대 기업의 최고경영자 출신이기에 관리 능력만큼은 뛰어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업무를 이끌 신뢰할 만한 팀을 구성하지도 못했고, 중요한 현안에 대해 지시할 능력도 없었으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거의 마비시켰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틸러슨과 함께 일했던 한 고위관료 출신의 말을 인용, "틸러슨 장관과 국무부 직원들의 관계는 최악이었다"면서 "국무부 사람들은 미국의 국익을 증진시키는 일이라면 악마하고도 일한다고 할 정도인데,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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