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낸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을 계기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의 정당성 논쟁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이사장이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검찰이 혐의를 입증할 증거도 없이 마녀사냥식 수사를 했다고 비판하자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이 전 중수부장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진술을 상세하게 공개하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임채진 "그칠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게 된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17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회장은 2007년 6월 말 100만 달러를 전달하기 전에 청와대 만찬에 초대돼 돈을 요구받았고, (돈을 전달한 후)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이 만찬에 초대받아 노 전 대통령 부부와 세 사람이 식사를 했는데 이때 권양숙 여사가 "아이들(노건호 씨와 노정연 씨) 집이라도 사줘야 하는데…"라는 식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박 전 회장은 이 얘기를 듣고 직원 130명을 동원해 100만 달러를 환전했고 이 돈을 측근을 시켜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검찰은 박 전 회장과 정승영 사장의 청와대 출입 기록, 달러 환전 기록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중수부장은 박 전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통화 기록은 "보존기간 1년이 지나 이미 폐기돼 확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전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 쪽에서 받은 걸 다 시인하면서도 대통령은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전날에도 "조사 당일 오후 5시께 미국의 핀센(FinCEN)이라는 기관에서 노 대통령의 딸 정연 씨가 미국에서 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일종의 단서가 우리 수사팀에 도착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 있으면 수사 기록을 공개하자"고 나서기도 했다. 그는 "15시간 여에 걸친 조사가 전부 영상으로 녹화돼 있는데 마음 같아서는 다큐멘터리를 틀 듯 다 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도 이 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사실관계는 말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족할 줄 알아야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게 된다'는 옛 말씀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이 전 중수부장과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문재인 "이인규 건방졌다" 주장에 이인규 "충분히 예의 갖췄다"
이 전 중수부장은 또 "당시 조사 전후에 노 대통령께 충분히 예의를 갖췄다"고 주장했다.
"이인규 중수부장은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는 문재인 이사장의 회고에 대한 반론이었다.
이 전 중수부장은 "당시 노 대통령을 처음 뵈었을 때도 내가 상석에 앉거나 태도를 건방지게 해서 조금이라도 언짢게 느낄 만한 상황은 전혀 없었다"며 "조사 전에 10분에서 15분 정도 함께 있으면서 차를 마셨는데 여러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는 검사로서의 할 일을 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런 반론에 민주당은 "참으로 고약하다"고 비판했다. 김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홍만표 수사기획관이 아침 저녁으로 공식 브리핑을 통해 피의사실을 공표했고, 중수부장 이하 검사들도 언론에 수사상황을 모두 흘려 놓고 '검사로서 일을 했다'는 주장은 궤변중의 궤변"이라고 지적헀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도 17일 "무례함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용섭 대변인은 "역사에 죄를 지은 사람이 공직을 떠난 지금에도 마치 큰일이나 한 것처럼 수사비화를 들먹이면서 고인을 또 한 번 욕보이고 있다"며 "이 전 중수부장은 돌아가신 분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라도 있다면 역사적 심판의 그날까지 자중자애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문재인 이사장은 자신의 책에서 "검찰이 박 전 회장과 대통령 간 통화 기록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며 검찰의 마녀사냥식 수사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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