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지난 3일 청와대 회동을 두고 '밀약설'이 나오는데 대해 양측 모두 손사래를 치고 있다. 이 밀약이라는 것의 내용은 충분히 예측가능한 것들이다.
<조선일보>는 17일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내년 총선 공천 원칙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양측이 지난 3일 회동에 앞서 사전접촉을 갖고 ▲기존의 친이·친박 비율에 구애받지 않는다 ▲양 계파가 따로 공천자를 추천하지 않고 처음부터 당 공식 기구에서 함께 협의한다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공정한 시스템을 통해 공천자를 정한다 등의 원칙에 합의했다는 것.
양측이 부인하고 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예측가능한 것들이다. 문제는 '밀약'이 아니라 밀약의 실현 가능성이라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와 친박 양측 모두 손사래
이 신문은 "청와대 측은 이와 관련해 1996년 15대 총선 때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등을 영입한 한나라당 공천이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박 전 대표 측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당시엔 이회창, 홍준표, 이재오, 김문수 등 현 정치판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정치신인으로 발탁돼 신한국당의 수도권 승리를 이끌었다.
게다가 박 전 대표의 향후 대선 준비 활동에 대해 이 대통령은 "본인이 판단하기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무엇이든 시기에 구애받지 말고 마음 편하게 하라"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 이 신문의 보도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회동 이전 정진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박형준 대통령 사회특보,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인 이학재 의원과 최경환 의원 등이 이같은 사전 논의를 진행했다는 것.
하지만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이나 이학재, 최경환 의원은 이같은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부 언론에 나온 공천 3대 원칙 관련 기사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당시 박 전 대표 측과 접촉했던) 정진석 전 정무수석과 박형준 사회특보도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했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공식 접촉 라인에서는 공천과 관련한 얘기가 오가지 않았고 대통령과 대통령실장에게도 그런 얘기는 전혀 보고되지 않았다"며 "공식라인에선 그런 얘기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정국 주도권 쥐고 기획 공천했던 1996년 재연 가능할까?
양측 모두 보도를 부인하고 있지만 박 전 대표가 유럽 특사 활동을 마친 지 한달여가 지나 청와대 회동이 이뤄진 점, 두 사람이 50분이 넘게 독대를 한 점 등을 미뤄보면 '덕담'만 오가진 않았을 가능성이 지배적이다.
두 사람은 지난 해 8월 회동에서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차기 정권 재창출을 위한 노력'이라는 골자의 '신사협정'을 맺은 후 현재까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 3일 회동에서는 신사협정의 구체화가 이뤄지지 않았겠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또 양측이 '공천 원칙'에 합의했다고 해도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1996년 총선과 내년은 여러모로 상황이 다르다. 1995년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참패한 김영삼 정부는 그해 말부터 1996년초까지 5.18 특별법 제정,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기소 등으로 정국을 완전히 전환시켰다. 1996년 총선은 수의를 입은 전두환, 노태우 공판이 한참 진행되는 가운데 실시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쥐었고 여권에 대한 장악력도 확고했다. 최형우, 서석재, 이원종 등 민주계 실세들이 당정청을 확고하게 틀어쥐고 있었다. 게다가 외곽에선 김현철 씨의 광화문팀이 철저한 여론조사와 기획을 통해 과감한 정치신인 발탁을 주도했다. '원조 좌파'인 이재오, 김문수나 '모래시계 검사'인 홍준표의 영입은 이같은 조건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이다.
국정장악력과 지지율이 같이 떨어지고 있는 청와대와 내년 대선이 궁극적 목표인 친박계의 '이인삼각'이 비슷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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