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등 각종 스캔들로 3명의 국세청장들이 차례로 낙마·구속된 뼈아픈 과거를 지우기 위해 노력해 왔다던 국세청이 또다시 수뇌부가 흔들리는 사태에 휘말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2013년 국세청장을 지낸 이현동 씨(62)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음해공작을 도운 대가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수천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31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전격 소환됐다. 다른 국세청 간부들도 수사선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전날 이현동 전 국세청장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곧바로 소환까지 할 정도로 이번 수사에 발빠른 모습을 보여 상당한 증거를 이미 확보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정원이 정치인에 대한 풍문을 뒷조사하는 것이 불법인 것과 마찬가지로 세정당국인 국세청이 국정원과 정치인 뒷조사에 협력한 것이 사실로 확인되면, 국세청의 자정노력도 일거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몰릴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풍문 뒷조사 협조하며 공작비 수수 의혹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송경호)는 국정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위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전 청장에게 수천만 원대의 공작비를 건네고 협조를 요청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국정원의 대북공작금 유용 사건을 수사하던 중 최종흡 전 국정원 3차장과 김승연 전 대북공작국장이 원세훈 전 원장 시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해 해외에서 떠돌고 있는 풍문성 비위정보를 수집·생산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가동한 정황을 포착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대북업무에 사용돼야 하는 대북공작금 10억여 원이 쓰인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이 이른바 '데이비슨 프로젝트'로 명명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음해공작을 도운 대가로 국정원으로부터 수천만 원의 대북공작금을 건네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데이비슨 프로젝트'는 김 전 대통령의 약칭인 'DJ'의 'D'를 딴 것으로 김 전 대통령이 수조 원의 비자금을 해외에 차명계좌로 보유하고 있다는 풍문을 조사하기 위해 수억 원 상당의 대북공작금을 썼지만 증거는 찾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국세청이 국정원과 이같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것을 확인하고 이 전 청장을 상대로 협조 경위와 구체적인 공작내용 등을 추궁하고 있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이 차장 시절(2009년 7월)부터 국정원으로부터 자금을 수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전 청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것으로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08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거쳐 이듬해 국세청 차장에 올랐고 2010년 8월부터 2013년 3월까지 국세청장을 지냈다.
한편, 최 전 차장과 김 전 국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았다. 이들의 구속 여부는 이날 밤 늦게 결정될 전망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