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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게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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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게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 된다"

[화제의 책] 김도현의 <장애학 함께 읽기>

미국 뉴잉글랜드 해안가 마서즈 비니어드 섬의 주민들은 '2개 국어'를 사용한다. 음성언어와 수화. 이 지역은 농(聾) 유전자가 두드러진 집단 내에서의 결혼이 반복됨에 따라, 대대로 농인 인구의 비율이 비교적 높아왔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자면 농인과 청인의 비율은 1:155 정도로, 수적으로는 농인이 '소수자'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농인은 결코 특별한 존재로 취급되지 않는다. 마서즈 비니어드는 음성언어와 수화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사용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농인은 결코 '사회·경제·정치적인 면에서는' 소수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 <장애학 함께 읽기> (김도현 지음, 그린비 펴냄). ⓒ그린비 제공
어딘가 몸이 불편해 보이고, 무언가 남들과 다른 것 같은 사람을 부를 때 흔히 사용하는 용어, 장애인. 그러나 장애는 과연 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것에서 비롯된 '개인의 문제'일까? 혹은 그렇기 때문에 '극복해야 할 대상'일까?

마사드 비니어드 섬의 사례는, 장애란 결코 개인의 문제도,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님을 보여준다. 즉, 한 사회가 농인들에게 일방적인 적응을 강요할 경우 그들은 '장애인'이 되지만, 음성 언어와 농 문화가 융합될 경우 그들은 결코 장애인으로서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 인권운동가 김도현의 신작 <장애학 함께 읽기>(김도현 지음, 그린비 펴냄)는 '사회경제적 관계의 산물'로서 장애 문제를 분석한다. 즉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며,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는 것.

휠체어를 타는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바로 저상 버스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은 사회이고, 역시 농인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수화를 사용하지 않는 사회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소개하는 '사회적 장애 이론'의 핵심 테제다.

'손상'을 '장애화'하는 사회

10여 년 동안 장애인 해방운동의 현장에서 활동해온 김도현은 사실상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사회에 장애의 사회적 측면에 주목한 본격적인 장애학 연구를 선보인다.

1970년대 영국에서 처음 태동한 장애학은 이미 외국에서는 하나의 학문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기껏해야 '재활'의 측면에서나 종종 언급되어왔을 뿐이다.

책의 1부에서 저자는 "왜 장애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개인화되고 의료화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사회적 장애 이론'을 만든 영국의 학자 마이클 올리버의 이론을 상세히 소개한다. 그는 이를 통해 여전히 장애를 '개인적 비극'이자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오랜 인식에 일침을 가한다.

"남성은 파란색을 좋아하고, 용감하고, 밖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하며, 여성은 빨간색을 좋아하고, 다소곳하고, 집안일을 잘해야 한다는 젠더적 구분은 섹스와 아무런 인과 관계를 갖지 않습니다. 즉, 가부장적 억압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손상과 장애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상은 손상일 뿐이며, 특정한 억압 관계 속에서만 '무언가 할 수 없는 상태'로서의 장애가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장애인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라기보다는,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 장애 이론'의 핵심은 장애를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관계의 산물로 보는 것으로, 이는 '손상'과 '장애'의 구분을 통해 쉽게 설명된다. 영국의 장애인 단체 '분리에저항하는신체장애인연합(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 UPIAS)'에 따르면, 손상(impairment)은 '사지의 일부나 전부가 부재한 것, 또는 사지·기관·몸의 작동에 불완전함을 지니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장애(disability)란 곧 '손상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 대해 아무런 고려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사회 활동으로부터 배제시키는 불이익이나 활동의 제한'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손상과 장애는 인과 관계의 연속선상에 놓일 수 없으며, '손상이 곧 장애'라는 인식은 폐기돼야 한다.

"2005년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 다리나 척수에 손상을 지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버스를 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도에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만들어지면서 계단이 없고 경사로가 장착된 저상 버스가 다니자 이러한 휠체어 이용 장애인도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장애인이 버스를 탈 수 없었던 것은 그 사람이 지닌 특정한 손상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버스 때문이었을까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그렇다면 장애인은?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 자본 권력은 생산량의 효율적 달성에 매진할 잘 훈육된 노동자층을 필요로 했다. 이에 사람들은 세 층위로 분리됐다. '일을 할 수 있는 자', '일을 할 수 있으나 하지 않으려는 자', 그리고 '일을 할 수 없는 자'. 인간의 노동력마저도 상품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장애인은 일을 할 수 없는 '불량품'처럼 여겨졌던 것.

저자는 인간의 노동력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에서 드러나는 '신성한 노동' 관념 역시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하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손상된 몸'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전통적 역사유물론의 노동관이 혁신돼야 하며, 진정으로 장애인이 해방될 수 있는 사회는 경제주의로부터 벗어난 사회, '비노동적인 삶'을 인정하는 사회라고 역설한다.

"노동력의 상품화에 기초한 개인주의 이데올로기는 사회 구성원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방식과 장애인의 위상 역시 크게 바꾸어 놓게 됩니다. 즉, 인간의 노동력마저 상품으로서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은 기준에 미달하는 여타의 손상된 상품처럼 간주됩니다. 다른 손상된 상품들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아 폐기되거나 상설 할인매장에서 헐값에 처분되는 것처럼, 장애인들 역시 무가치하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로서 취급받게 되는 것이지요."

'비동시대성'의 사회, 끊임없이 '장애'를 말해야 하는 이유

책의 2부는 저자가 장애 운동의 현장에서 느낀 여러 쟁점들과 함께 장애 운동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노동, 진보 정치와의 관계성에 대해 풀어낸다. 저자는 2000년대 이후 장애 운동이 여타의 사회 운동과 조금은 상이한 궤적을 밟아왔고, 이는 바로 장애인 대중의 삶에 각인돼 있는 '비동시대성'의 폭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2000년 이후 소위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틈새를 비집고 장애인 대중의 삶에 각인돼 있던 비동시대성이 폭발해 나왔습니다. 전 국토가 반나절 생활권에 접어들었다고 하는 시대에 1, 2급 중증 장애인의 절반이 한 달에 세 번도 외출을 하지 못하는 삶, 전체 국민 3명 중 1명이 고등교육을 받는 시대에 장애인 2명 중 1명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으로 살아가는 삶, 불안정 노동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전체 장애인의 60% 이상이 실질적인 실업 상태에 놓여 있는 불인정 노동(不認定 勞動)을 강요받는 삶, 도저히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라기 보기 어려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알량한 절차적 민주주의 사회는 막연히 'No'라고만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손상을 철저하게 '장애화'하는 사회, 여전히 장애 자체를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 저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 '장애인의 권리 확대'라는 접근법이 갖는 한계를 지적한다. 사회 전체의 분배 구조가 바뀌지 않고서는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는 언제까지나 정책 우선 순위의 하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는 장애인의 삶에 대한 개선과 변혁은 사회 전체의 진보와 연계해 고려해야 한다는 것, 즉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연대'를 통한 '사회구조적 변혁'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언제나 그렇듯, 몸으로 느끼는 절실함에 의해 추구된 지식의 밀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하며 <차별에 저항하라>,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등의 저작으로 장애 문제를 꾸준히 환기해 왔던 김도현은 이 책을 통해 장애인 해방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모색한다.

이 책은 또한 장애학에 대한 국내 최초의 대중적 이론서라는 점에서, '장애 해방'이라는 이슈를 그리되 그것을 단일 이슈에 한정시키지 않고 전 사회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닐 것이다.

시각 장애인들은 그린비 출판사 홈페이지(http://greenbee.co.kr)를 통해 책의 음성 낭독 파일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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